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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월호 | 나의 작업세계 ]

그릇과 나의 인생/도천 천한봉 선생 도예인생 60년 삶의 이야기
  • 천한봉 도예가
  • 등록 2008-12-24 16:35:40
  • 수정 2024-08-09 16: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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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한봉
  • 그릇과 나의 인생

그릇과 나의 인생

글 천한봉 도예가

올해로 도자기를 만든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한 가지 일을 60년 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회한과 반추 그리고 행복을 느끼게도 한다. 그릇을 빚는다는 일은 인생을 빚는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릇을 한 점 만드는 데 60번의 손길이 간다하여 환갑을 지낸 그릇이라고 말하는데 나의 도자기 인생도 환갑이 되었다. 나는 그릇을 만들었지만 진정 나를 만든 것은 그릇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런 ‘나의 그릇’을 나의 인생과 반추하여 전시회(2007. 12. 5~11 예술의 전당)를 갖게 되었다.
60년 동안 만든 그릇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인생의 이야기와 함께 전하고자 한다. 70년대 전까지는 먹고살기 위한 생활 용기를 많이 만들었다. 사발, 종지, 화분, 요강… 그리고 7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차도구에 전념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만만치 않겠지만 나 또한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도자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시와 함께 책도 선보인다. 말 그대로 『그릇과 나의 인생』이란 화두로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본 것이다.

‘그릇을 만나다’
열네 살에 내가 만난 그릇은 먹고 살기 위한 그릇이었다. 무엇을 만드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하더라도 돈이 되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국에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1년도 안 돼 세상을 떠나고 열네 살에 가장이 되었다.
‘사점가마’라는 요장에 나가 일을 하면서 내가 받는 품삯은 하루에 보리쌀 한 되였는데 사기대장이 되면 이틀에 쌀 한가마니였다. 나는 사기대장이 되기 위해 낮에는 열심히 잡일을 하고 밤에는 도둑고양이처럼 작업장에 들어가 물레를 돌렸다. 한 달 가까이 밤을 새워 연습을 하니 흙이 반듯하게 올라가고 제법 종지 하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잡일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집에서 싸온 꽁보리밥에 고추장이 전부였는데 대장들은 하얀 쌀밥에 꽁치 반찬 같은 귀한 음식이 나오곤 했다. 저 쌀밥을 원 없이 먹어보기 위해서라도 사기대장이 되어야 했다.
어느 날 기회를 엿보다가 대장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나의 실력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기 짓는 기술이 뭐 대단하다고 누구는 꽁보리밥만 먹고 누구는 쌀밥에 꽁치 반찬을 먹습니까?” 이 말에 대장들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이 놈아 그럼 네가 도자기를 한번 만들어 볼래? 만약 만들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굴었으면 당장 쫓겨날 줄 알아라” 하고 말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까짓 거 만들지 못 만들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레를 힘껏 돌려 종지 하나를 만들어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대장 어르신이 “이 놈은 천재다! 흙 만지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어찌 이리 잘 만드노. 내일부터 당장 들어와서 일 하래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날부터 요장 안에 들어가 일도 하게 됐고 그토록 먹고 싶었던 쌀밥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그릇을 만나고 18세에 인정받는 기술자가 되어 여러 요장을 돌면서 대장으로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요강 120개를 만들 때 250개를 만들면서 두 배 일하면 두 배 더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눈 팔지 않고 도자기에 묻혀 살았다.

‘서로를 만들다’
장인은 그릇을 만들고 그릇은 장인을 만든다. 여러 요장을 거쳐 1972년에는 드디어 나의 독립된 요장 문경요를 열게 된다. 요강이나 화분 등을 만들면서 힘든 생활을 살아오던 중 일본의 사쿠라가와 스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기회였다. 나는 찻그릇을 알게 되었고 지금껏 우리의 찻그릇을 재현하며 도예의 길을 걸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재현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하루에 수백 개씩 만들고 깨고를 반복하고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물레를 돌렸다. 수십 번 가마의 문이 열리고 닫혔을 쯤 사쿠라가와 스님의 “아 당신은 이제 살았소. 정말 수고 많았소.” 이 말 한마디에 나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의 전시가 이어지고 다완을 재현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쏟는다. 이때는 이미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자에몬이도’를 만났을 때의 감동과 다짐은 나의 다완 재현에 큰 힘이 되었다. “저 그릇은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었는데 일본에 와서 국보가 되었다. 자연스럽고도 깊은 그릇, 반드시 내가 재현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그것에만 매진하였다.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일본에서는 ‘고려 다완’을 가장 잘 재현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고 국내에서는 명장이라는 이름도 얻는다.
장인으로 산다는 일…. 난 장인의 삶이 좋다. 나는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나를 만드는 일이다.

‘그릇은 말한다’
나에게 흙을 만진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그릇을 빚어왔는가? 또 내 그릇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늘 자문을 한다. 나의 그릇은 세월이 빚었고 또 그만큼 가벼워지기도 한다. 평생을 초발심의 마음으로 그릇을 만들었고 기본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대접받지 못하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요강과 화분, 잡기를 만들었던 30년은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귀중한 기본을 다질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 기본이 찻사발 30년 세월에 잘 삭은 거름이 되어 작품을 완숙하게 하였다.

나는 흙이 좋다. 흙이 지닌 본질적인 생명력이 좋고, 세상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 좋다. 누구에게라도 흙을 만지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그릇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 자연의 언어를 대신하는 꾸밈이 없는 본래의 모습. ‘꾸밈’은 애초의 목적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다. 또 찻그릇은 찻그릇으로써의 용도에 알맞아야 아름다운 것이다. 그릇의 꾸밈도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자연성이 들어가야 꾸밈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장식이 자연스럽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스러움은 의도하면 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 삶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한다. 늘 초심의 마음으로 정진하는 일 내가 평생 도자기를 해 온 화두이기도 하다.
“명품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도자기를 하는 사람은 명품을 원하고 생각할 뿐이지 쉽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찻그릇의 기준은 차인들이 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차인들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그것은 명품이 아닌 것이다. 명품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과 차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손때도 묻고 찻물도 들어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일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명품인 것이다.”

인생의 이야기 외에도 그동안 도자기를 하면서 비법이라면 비법이랄 수 있는 나만의 작업 공정을 실었다. 흙부터 유약제조 또는 성형하고 불때기까지의 과정을 작업일지로 정리를 했다. 전통적인 방식이 후대에도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그동안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도천 장작가마 축요법’ 즉 망뎅이 가마 짓기는 내가 특허를 받기도 한 가마축조법이다. 옛날식 가마를 써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수 십 번 가마를 지어 보면서 다른 망뎅이 가마와는 다른 형태인 공 칸을 넣음으로써 연료절약, 시간단축, 그리고 작품의 실패를 줄일 수가 있었다. 책에는 가마 축조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또한 ‘그릇과 언어’를 통해 도자기의 본딧말에 대한 정리를 했다. 내가 처음 도자기에 입문하고 지금껏 써온 도자기의 본딧말이 점점 현대적인 도예용어로 바뀌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 적이 많았다. 내 대를 떠나면 선배 사기장들이 썼던 본딧말들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서였다.

이번 전시는 책 출간과 함께 나의 도자기 60년을 회고하는 자리이다. 그동안 나의 수족이 되어 주고 또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제자들. ‘도천가회陶泉家會’와 함께 전시를 하면서 더 뜻 깊은 회고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 2007년 12월호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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