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전신연 미국리포터
지난 10월 12일 필자가 강의하는 타우슨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볼티모어 클레이 워크Baltimore Clayworks에서 월간도예 8월호의 SOFA New York 기사에서 잠깐 소개했던 리차드 노킨Richard Notkin이 아티스트 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았다.
볼티모어 클레이 워크는 1980년도에 설립된 비영리 도자아트센터로 다양한 행사들의 주관, 도자 전시회 개최 등을 통하여 도자예술의 발달, 증진을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여러 도자관련 수업을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13명의 레지던스 아티스트 스튜디오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05년도에는 볼티모어에서 주최한 NCECA 컨퍼런스의 지역 스폰서를 맡기도 했다.
아티스트 톡은 현재 열리고 있는
리차드 노킨은 심사평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필자는 리차드 노킨의 슬라이드 톡에서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치밀함과 작업에 임하는 그의 진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48년 10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서 태어나 40여년을 작업해 온 그는 캔 퍼거슨Ken Ferguson의 지도 아래 캔자스시티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학사학위를 1970년에 받았고, 로버트 아네슨Robert Arneson이 교수로 있었던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 1973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미국 세라믹 아트의 메카인 아치 브레이 파운데이션에서도 운영위원으로서 오랫동안 일했고 여러 굵직한 상들과 장학기금을 받았다.
그는 타일 벽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현시대의 정치, 사회, 환경 등에서의 중요한 이슈를 작품에서 다룬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조각적으로 재해석된 핵폭발, 전쟁 무기, 폐허 등 약간은 살풍경한 이미지들을 찾을 수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스미소니안 아트 뮤지엄, 런던 빅토리아 아트 뮤지엄, 시가라키 도자문화 공원 등을 위시하여 수많은 개인, 공공 기관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필자는 리차드 노킨을 만났을 때, 최근 작품 세계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고맙게도 이메일을 통해서 여러 작품의 사진과 설명을 추가로 보내주었다. 그 중에서 타일 벽화 중에서 가장 최근인, 2006년에 제작된 「All Nations Have Their Moment of Foolishness (모든 국가에는 무분별한 바보스러운 시기가 있다)」라는 작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이 벽화에는 회색 톤의 범위 안에서 환원과 산화 번조가 연속적으로 반복해 이루어져 불규칙적인 색의 변화가 연출되는 것을 얻기위해 톱밥으로 채운 내화갑에서 번조 한 344개의 타일들이 사용되었다. 3인치가 조금 안 되는 각각의 작은 타일은 폭탄 세례를 맞은 박살난 도시, 피카소 작품 게르니카의 중앙에 있는 울부짖는 철마, 이라크 전쟁의 천으로 얼굴이 가려진 죄수들의 모습, 그의 과거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했던 인간의 나약함을 다룬 이미지들이 포함하고 있다. 부조를 구성하기 위해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타일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타일들을 골라 격자무늬로 나뉘어진 사진을 따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수채물감 안료로 귀, 턱뼈, 입, 콧구멍, 눈 주변과 재킷 등의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강조한다. 이 기법은 컴퓨터를 이용해 모자이크 사진을 만드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이 작품은 가까이서 접하면 작은 타일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을 감상할 수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죠지 부시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타일 중에 몇 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따온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는 전쟁 대통령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만큼 본인 스스로는 독실한 기독교인라고 공언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어쨌든 타일이 지니는 각각의 이미지, 작품의 제목을 생각해 보면 리차드 노킨이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하루에 보통 10~12시간을 몬타나주의 헬레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해 온 그는 요즘, 워크샵을 열고 미국 전역의 학교나 아트센터 등에 초청돼 자신의 독특한 티팟 몰드 작업과 타일 조각 등에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와 작가의 변을 통해 ‘예술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개념적으로, 그리고 미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하게 역설한다. 그는 또한 프란시스 고야가 나폴레옹의 시민학살을 고발한 판화 시리즈, 피카소의 게르니카,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등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듯이, 예술이 세계를 발전시키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이해한 뒤에 다시 보는 그의 작품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듯 했다.
글의 말미에 그의 마지막 변을 옮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