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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월호 | 특집 ]

도자오브제ceramic objet,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
  • 편집부
  • 등록 2008-03-05 16:23:58
  • 수정 2008-12-24 17: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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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오브제ceramic objet,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

우리 도예가 소위 현대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의 현대적 표현양상에 진입하기 시작한 지는 십 수 년에 불과하다. 흙을 매체로 현대의 포괄적 차원의 접근과 아울러 현대적 미의식에 동참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정착된 것은 미술사에 그다지 전례가 없던 일로 기록될 만하다. 전통적 입장에서 보면 도자예술은 20세기 미술의 역사에 있어 주연보다는 조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순수성이라는 명분 아래 미술이 산업의 영향력을 직접 대면하는 일은 피하고 거의 이념의 문제에만 집중하여 그 성장을 극대화 시킨데 비해 도예는 산업에서의 생산력과 생산양식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과 간섭을 받아 오면서 이념의 성장을 실질적으로 도모하기란 어려웠다는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금의 현대도예는 메머드급 행사개최와 다각적 사회지원을 기반으로 오늘날 예술로서 그것도 종래의 주변적이 아닌 대안적 예술로서 성숙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서 한국현대도예의 두드러진 양상으로 자리 잡은 도자오브제Ceramic objet의 의미를 이론적, 방법론적 시각으로 환기하고 새로운 표현양식을 창조하는 한중일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도자오브제의 미래를 가늠해보자.

 

오브제도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윤두현 독립큐레이터

도자오브제 이해와 접근                  최지만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교수

한중일 도자오브제의 뉴 제너레이션    이진숙 한향림갤러리 큐레이터

 

도자오브제Ceramic Objet,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
오브제도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글  윤두현 독립큐레이터, 정소영갤러리 객원디렉터

 

오브제의 도입은 곧 미술에 대한 근대적인 믿음, 나아가 예술 자체에 대한 근본적이며 도발적인 의문과 함께 현대미술의 새벽을 여는 큰 사건의 하나였다. 피카소Pablo Picasso는 오브제의 첫 출발을 알렸으며, 뒤샹Marcel Duchamp의 오브제는 예술 자체를 회의함으로써 개념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촉매제가 되었다. 오늘날의 미술에서 아주 자연스럽거나 혹은 진부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오브제는 적어도 그 시작에 있어서만큼은 도전이었으며, 개척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 도자예술에서의 오브제 개념 도입 역시 공예품으로써의 도자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새로운 논의점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본 글에서 필자는 도자오브제의 이런 점에 근거하여 이에 대한 미학적 논의를 시도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용어의 무게만큼이나 도자오브제에 대한 미학적 접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뿌리가 공예의 장이 아닌 미술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도자오브제를 공예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미술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전제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도자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면 그 어려움은 더욱 가중된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을 논의하기에 본 지면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오브제의 출현배경과 미학적 동기가 동시대 도자오브제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왔으며, 그 의미와 과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우선 여기서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개념의 정확한 의미이다. 사전적으로 정의된 오브제object의 의미는 물체, 물건 또는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을 지칭한다. 미술 안에서 오브제는 물질적 대상을 뜻하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1)하는 상당히 미묘한 의미의 복합성을 안고 있다. 대체로 이는 예술 안에서 오히려 물체, 대상이 품고 있는 기존의 의미를 전용하는 일차적인 차원을 넘어 아예 그 대상을 거부하고 대상 자체의 물질성이나, 정신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뒤샹은 예술과 오브제 자체를 동일화시켜 그의 ‘반예술 개념’을 실천하기도 했다. 현대 도예에서의 오브제 개념은 주로 195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의 볼커스Peter Voulkus 등에 의해 촉발된 추상표현주의적 개념으로부터 출발2)한다. 이후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중심 흐름과 궤를 함께하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현대도예의 두드러진 양상으로 자리 잡은 도자오브제는 주로 미국에서 전개된 추상표현주의나 미니멀리즘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모더니즘적 사유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펑크도자, 수퍼오브제, 사실주의적 도자 등 이후의 전개된 다채로운 양상들이 그와 함께 공존했다. 그리고 이는 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현대도예의 중심에 자리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그같은 양상은 미술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전개와 밀접한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진 미국과 달리 적절한 유보나 반성 없이 일방적으로 수용되어 결과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남기고 말았다. 즉 양상의 본질을 수용하기보다 결과의 모방에만 치우쳤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최근 미술의 전반적인 양상은 전위적 형식이 아니라 회화, 그것도 이미 시효만료 됐다고 생각했던 구상회화가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도예계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조형도자 분야는 날로 위축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으며, 오히려 전통도자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도자, 즉 공예적 도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왜 ‘도자오브제’에 대하여 논의해야 하고 또 그것의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말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앞으로 현대도예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같다. 즉 이야기의 초점은 오브제도자가 무엇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공예인 도자가 공예이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제 전방위적인 차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사실 앞서 오브제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어쩌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반전통, 탈장르 등이 오브제 미학의 본질적 개념임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기존의 어떤 믿음이나 경향에 대한 철저한 의문제기와 반성이 그것이다. 나아가 이는 예술 자체뿐 아니라 삶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결국 각각의 작품이 우리의 예술과 삶에 어떻게 소통될 수 있으며, 환원될 수 있을 것인가 뼈아프게 고민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그것은 출발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애초의 도자오브제 작업을 일관되게 지속하고 있는 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세대를 이어가며 다양하게 전개되고, 그에 따라 우리 고유의 조형언어를 획득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미술사란 어떤 면에서 반전의 역사다. 끊임없는 반작용으로 인하여 전진을 위한 원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삶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어떤 방향으로든 그렇게 가야한다는 정해진 방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이 자기 부정적 회의론에 빠지지 않기 위에서 칸트를 위시한 선각자들이 그랬듯이 예술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삶의 관점이 필요하다. 도예오브제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도예오브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삶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즉 우리의 삶 안에서 예술로서의 오브제 도예는 무엇인가로 말이다. 구체적으로 동시대의 삶의 양상을 면밀히 반성하고, 그에 대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또는 어떤 유쾌한 미적체험으로서 그들의 삶에 청량제가 되는 것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듯하다.

 

* 1) 윤난지 『미니멀아트에 나타난 오브제로서의 작품개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논문집 1988 참고.
  2) 남미경 『현대도자오브제의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17쪽.
* 3) 아서단토 저, 이성훈 및 김광우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368쪽.

 


도자오브제Ceramic Objet,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
도자오브제 이해와 접근
글·사진 최지만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교수


본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도자 오브제Objet’란 용어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도자 오브제란 용어는 필자도 학창 시절부터 자주 들어오던 말이었으나 그 근원에 대해선 깊이 생각지 않아왔다. 분명한 것은 본인의 미국 유학시절을 회상해 보면 미국사람들로부터 Objet와 상관관계를 갖는 도자 오브제Ceramic Object란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용어의 발음상 오브젝트가 아닌 오브제이기 때문에 불어 등 라틴어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것으로 추측되어 알아본 결과 불어 는 영어의 과 같은 의미로 우리말로는 ´물건, 물체, 것´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미술사에선 초현실주의자들이 란 말을 전용轉用하여 독특한 표현 개념을 부여하여 구체적인 예술의 방법으로 삼았는데 이는 예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건이나 그 한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어내어 절연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적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말한다.1) 소위 도자 오브제라 불리어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초현실주의에서의 오브제objet와 그 내용이 같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판단할 때 도자 오브제는 불어에서의 오브제와는 그 내용이 다른 것으로 사료된다.
일본으로 방향을 바꾸어 일본 근대 도예의 발전 단계를 살펴보면 1954년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스즈키 오사무鈴木 治등의 소데이샤走泥社 작가들에 의해 ´오브제 야키´라고 불리는 기능을 도외시한 도예가 창시되었는데 이는 쓰임이라는 기능을 버린 도자조형작품을 말한다.2) 우리나라에서 도자 오브제의 범주 안에 속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실질적 기능과 거리가 먼 작품들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우리가 흔히 쓰는 ‘도자 오브제’란 용어는 일본의 소데샤 그룹 등의 일본 공예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는 영어의 Ceramic Sculpture로 바꿀 수 있으며 우리말로는 도자조각, 조형도자 혹은 표현도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필자는 본 글에서 ‘도자 오브제’ 보다는 ‘조형도자’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겠다.


조형도자의 영역
학창시절 대학 2, 3학년의 어느 날 같은 학교의 조소과에 다니던 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던 장면이 생각난다. 지금은 뉴욕과 서울의 현대 미술계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 친구가 술 한 잔 마시더니 문득 “왜 요즘은 도예가 조소의 영역을 넘어 오냐”고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병사 마냥 따지고 들었다. 당시에도 많은 대학들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 도자 및 일본 조형도자의 영향으로 흔히 말하는 도조陶彫: Ceramic Sculpture에 대한 교육이 보편화 되있었고 필자가 주로 만들던 것들도 조형 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데 조소고 도예 같은 영역이 무슨 상관이냐”고 지고 싶지 않은 듯 경쟁심이 섞인 말투로 대답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소과 친구의 가장 최근에 개최한 개인전은 회화전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조형도자를 본인의 주된 작품으로 만드는 누군가는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본인의 지인들로부터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 도예과 학생이 그릇은 안 만들고 이해 못할 것들만 만드느냐”, “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도자기가 가장 발달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가 아닌 서양의 조각 같은 것만 만드느냐” 등등.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본인 각자가 깊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다만 필자의 경우는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흙, 유약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번조 과정을 거쳐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고  본인의 감정을 잘 이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인의 작품이 도예로 인식되기 보다는 미술의 한 분야로 이해되어 지기를 바란다.
지난 10년 사이 각 지자체 주최의 각종 미술 비엔날레,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 국내외의 아트페어, 아트옥션 등의 성행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미술계는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 외적인 성장만큼 내적으로도 성숙되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며 특히 조형도자 부문에 있어서 그 내용적 성장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다시 한 번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아트 페어나 아트 옥션은 분명 도예계에 국한돼 이루어지는 행사는 아니며 다만 각종 미술 중에 한 분야로써 조형 도자가 소개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 수도 회화나 사진 등 다른 장르에 비해 극소수이며 그다지 주목을 받고 있진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조형도자의 현주소      
한국 조형도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첫째, 한국의 조형도자 작가들의 생활상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들의 삶은 풍족한가? 생활 형편이 10년 전보다 많이 나아 졌는가? 대답 부터하자면 “그렇지 않다”이다. 사실상 비슷한 경력을 가진 생활 용기나 장식용 그릇을 만드는 작가들에 비하여 그 수입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조형 도자 작가들이 대학, 대학원에서 일련의 교육을 받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거나 도자공방을 운영하여 작품제작 및 가계를 꾸려나가며 간혹 팔리는 작품이 도움을 주는 정도이다. 때문에 많은 조형도자 작가들이 때때로 본인의 본 작품 외에 식기 등의 상품들을 만들어 생활하기도 한다.
둘째, 한국 도자조형 작품의 소비자는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조형도자 작품만을 주로 수집하는 콜렉터가 전무한 상황이다. 조형도자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모든 예술품 중 선택된 몇몇 작가의 도자작품을 몇 점을 사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외국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본인이 미국에 유학하고 졸업한 후 체류하고 있을 당시 조형도자 위주의 작품들만 수집하는 콜렉터의 집 10여 곳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전체 미국의 조형 도자 작품의 콜렉터 층은 꽤 두터운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당시 본인의 작품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기도 했지만 심심찮게 작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미국 사회의 조형도자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그것에 비해 한층 성숙한 것만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서울 인사동의 한 유명한 갤러리 오너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찾아온 필자에게 “미국에선 콜렉터가 있을법한 작품이지만 한국에선 나도 팔아 줄 자신이 없다.”라고 잘라 말한 것이 기억이 난다.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유사한 것으로 보여 진다. 본인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한 조형도자 위주의 그룹이 해마다 일본의 젊은 조형도자 작가들과 교류전을 갖는데 그 일본 작가들 대부분도 다른 직장을 갖고 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시간을 내 작품을 제작하곤 한다. 물론 이 그룹의 작가 대부분 삼십대여서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풍족한 시기는 아니지만 그들 자신이 이를 일반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에 미루어 생각 할 때 그들의 사정이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조형도자가 가야 할 길     
본고에서 한국 조형도자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미국에서 귀국한 후 2년 동안 체류했던 경기도의 한 미술작가 거주Artist in Residence 프로그램에서 작업 할 때 본인만이 십 여명 이상되는 모든 작가 중 유일한 도자를 주재료로 작업하던 작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도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미술계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꽤 유명한 작가들이 약속 시간을 정해 본인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자신들의 작품을 도자로 제작하는데 대한 해결점을 상담하고 조언을 구하곤 했었다. 왜 그들이 도자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 대답을 본인 스스로 내리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자란 재료가 매력적이며 다른 어떤 재료로도 대체 할 수 없으며 또한 고급 재료이기 때문이다. 흔히 세상에 흔한 게 흙이라고 하지만 그 흔한 흙을 보석처럼 만드는 기술은 그 가치를 따지기 힘들다. 청동이나 석조, 목조가 아닌 플라스틱 등의 합성수지가 점령한 현대미술의 현실에서 세라믹은 친환경적이면서도 너무나도 고귀한 재료이다. 흙은 원초적이면서도 더 없이 세련된 재료이다. 필자가 스스로 위안 삼았던 부분은 타 장르의 예술가들이 아무리 도자란 재료를 알고 관심을 갖는다해도 십 수년 혹은 수십 년간 수련해온 도자 작가들의 노하우와 감각을 따라잡기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다루며 각종 무기, 기계, 공예품을 만들었던 헤파이스토스Hephaestus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론
현대도예의 아버지라 칭송되던 미국의 피터 볼커스Peter Voulkos가 접시에 파격적인 구멍을 내어 도자의 용도와의 결별을 선언한지가 50년이 훨씬 지났다. 필자는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켄 프라이스Ken Price, 로버트 아네슨Robert Anesson, 준 가네코Jun Kaneko 등의 작품들을 아메리칸 세라믹스American Ceramics에서 볼 때 보다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나 아트 뉴스Art News에서 접할 때 마음이 보다 흐뭇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미술계가 장르의 붕괴를 선언한지도 벌써 반세기 다 되어간다. 많은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다른 장르의 장점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제프 쿤스Jeff Koons,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등의 세계적 대가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본인 작업에 세라믹을 재료로 도입하는 작가들은 한국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현대미술계의 큐레이터나 아트딜러들은 그들의 작품을 조형도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소통 언어의 한 종류로 구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자 조형 작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판단될까?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도자조형 작가들의 작품에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그 표현 방법과 테크닉에 몰두한다. 작품의 내용보다는 그 형태에 집중한다. 많은 도예가들이 현대미술의 비평Critic과 큐레이터들이 도예엔 관심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렇지 않다. 도자조형이 다른 예술보다 흥미롭거나 흥행성이 있거나 돈이 된다면 그들은 조형도자 작가들을 한시도 쉴 수 없도록 귀찮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외관적으론 조형도자가 장족의 발전을 했을지라도 그 내실은 그다지 탄탄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조형도자 작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끝마치고 <메이저 리그>로 그 경기장을 옮겨야 할 것이다.  

 

도자오브제Ceramic objet,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
한중일 도자오브제의 뉴 제너레이션
글  이진숙 한향림갤러리 큐레이터


오브제objet는 어떤 물체가 우연적이거나 필연적 효과에 따라 작품의 소재가 될 때 그 본래의 용도나 기능은 의미를 잃게 되고 새로운 물체성을 가지고 예술작품화 될 때 이 물체를 ‘오브제‘라 한다. 현대미술의 한 표현방법으로써 오브제objet의 사용은 입체파cubism 이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레디 메이드Ready-made가 등장하면서 표현의 새로운 길을 트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하였고 또한 예술 그 자체로써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도예 작가들이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얻고자 했던 조형미, 입체미 등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지는가. 신세대 도예가들은 오브제를 적극적인 표현방식으로 작업의 다양성을 꾀하는 동시에 물질로서의 오브제가 은유적 표현을 통하여 다의적인 개념으로 전환되는 것을 실험하였다. 필자는 이번 ‘한중일 도자오브제의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주제를 통해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신세대 도예가들의 다양한 오브제의 접근 방법들을 점검하고자 하는데 그 의의를 지닌다.
우선 재료 면에서나 기법 면에서 그들의 작업은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음을 지난 <한중일 도예교감전2007.9.12-18한국공예문화진흥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부단히 도자 고유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의식과, 도자의 기능과 형태를 벗어나면서까지 도자의 한계를 실험하려는 두가지 추세의 긴장관계가 미묘하게 상충하고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예술 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오브제들의 개념과 물질로써의 오브제에 내재되어있는 정신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고 한국, 중국, 일본 도예작가들의 작품에 있어서 선택된 오브제가 지니는 다의적인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유기체적 오브제objet에 의한 생성의 공간
현대미술은 다양한 양식들이 반복적이며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여러 사조들을 전개시켜 왔다. 더불어 새로운 기법과 재료에 뒤따른 놀라운 착상들은 다양한 표현 방식을 생겨나게 했으며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주지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움이란 작가의 문제의식과 일체를 이루는 새로움이어야 하고 작가 나름의 새로운 조형 언어의 시도이어야 한다. 사실 기능위주의 예술 영역에서 벗어나 순수예술을 지향하려는 경향은 단지 도자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작가 <가토우 토모나리-올라가는 형상>은 대량생산되는 기계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쉬운 수공의 가치를 자연적인 형태의 오브제로 만들었다. 높이 164cm의 등신대 사이즈로 아래에서 위로 겹쳐 쌓는 구조는 단순함과 동시에 뒤틀린 구조가 특징이다. 이렇게 흙을 쌓아올려 성형하는 방법은 단순한 기器형태의 구조에서 벗어나 복잡한 구조의 유기체적 오브제 형태로 완성되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타마키 리사Tamaki RISA/1882년 일본출생/다마미술대학교 석사

작품 「어머니_The Mother」에서 작가는 흙으로 만든 유기적인 형태는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생명체의 신비에 대한 궁금증 등을 자신의 조형언어로 풀고자 한다. 작은 원기둥 모양으로 구워진 여러 개의 도자기 피스들의 유기적 형태는 역동의 공간과 유기체적 오브제의 표현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의 자세로 보다 자유롭고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리우 랑 칭Lang Qing LIU/1979년 중국출생/중국도자학교 석사

「산의 숨결」은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자연의 오브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작가에게 있어 산이라는 오브제는 우선 숨 쉬는 생명, 사랑의 본질, 위엄 있고 순수한 산, 구성의 순수성 등의 4가지를 함축한 입체물로 표현된다. 즉 생명의 실존적 부조리 상황과 거기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생명의 이미지, 마띠에르matiere에 의한 도자 이미지는 삶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기 위한 오브제objet
창작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 의해 작업을 시작한다 하여도 작가에게 있어서 무슨 내용을 어떠한 기법을 통하여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항상 새로이 대두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그 내용과 기법은 작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해졌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는 새로운 기법에의 탐구에 의해 도자는 이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조각, 영상예술, 연극 더 나아가 과학기술의 영역에까지 새로운 장치들로 접근한다. 이러한 양상은 그만큼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내용 또한 다양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현실과 연관된 주제, 개인의 감정, 무의식, 상상력 등을 채택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차오왕Wang CHAO/1981년/중국출생/북동미술대학교 조소과 학사

「편안한 여인」은 신체를 재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서사를 위해 변형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는 조형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체라는 것이 단순히 서사를 위해 잠시 차용한 구조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가 끌어들이는 신체는 시간과 공간을 응축하고 있는 세계 그 자체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몸을 표현하되 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빌려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지에 천Chen JIE/1979년 중국 출생 센트럴미술학교 조소과 석사

작품 「임신_Pregnancy」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임신한 원숭이를 의인화한 것으로 원숭이는 원시인을 연상시키고 임신은 섹스의 정수를 의미한다. 이 작품의 의도는 사람들에게 태초에 창조된 남성과 여성간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오오하라 레이라Ohara reira 일본출생

「여탕」은 본인의 콤플렉스인 다리를 소재로 하여 제작된 것이다. 작가의 심정이나 감성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경향으로 전통을 재해석하여 제작을 하는 스타일과 다르게 작품의 질, 즉 내용에 의해 작가의 이미지를 결정하게 한다. 이러한 도자의 소재가 가지고 있는 질감과 자신의 이미지와의 연관성들은 오브제를 통해 간결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조합되어지며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조형적 대상으로 삼아 현실이나 상황 자체를 오브제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문장을 이루듯이 오브제들을 서로 조합하여 메시지를 생성해 내는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기 위한 오브제objet
상징적 표현은 개인의 감정, 무의식, 상상력 등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의 세계, 사고로 인식하는 세계, 감각적으로 느끼는 세계 등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여 실재를 파악하려는 인간의 욕구에 의한 것이다. 이때 오브제는 엉뚱한 아이디어와 예기치 못한 소재들끼리의 결합으로 보는 사람에게 웃음Funny을 주는 오브제로 종종 등장한다.
위엔 러후이Lehui YUAN/1978년 중국출생
경덕진도자학교 도자디자인전공 석사

「푸른 꿈_The Blue Dream」 여성의 신체를 극대화한 작업으로 드라마틱한 구성을 위해 인체를 구조화한다. 현대 산업사회는 인간의 소박하고 순수한 꿈을 파괴시키면서, 그런 꿈을 천천히 괴로운 그림자로 덮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돈과 섹스, 사랑과 유혹으로 가득한 사회 속에서 인간을 붕괴  시키고 파멸시키는 윤리와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정희Na Jeong Hee/1980년 한국출생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석사

「흙으로 만든 아이_Child of Clay」는 지극히 개인적 감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이는 생명, 탄생,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엎드려 간절히 구하면서도, 강한 눈빛은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작품이 사물의 존재를 넘어, 작품 자체가 관람자와의 소통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감성을 이끌어 내는 공존의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작품이 사물의 존재를 넘어, 작품자체가 관람자와의 소통에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박은성Park Eun Sung/1982년 한국출생
국립군산대학교 산업도예과 학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도예과 석사

「Red girl(자화상)」과 「느끼다」는 사춘기 소녀에 비친 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모티브가 되는 것은 소녀의 표정과 팬티이다. 소녀의 표정은 미묘한 심리를 반영하며, 빨갛게 물든 소녀의 머리를 통해 상상이 넘치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작가는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든 그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상을 통해 섹슈얼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조각적 특성과 형태의 순수성과 잔인함, 표현의 강렬함은 자의식의 반영이라는 자화상의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사회적인 불안의 요소는 개인의 내면으로 전달되면서 왜곡의 특성으로 변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진실Son Jin Sil/1982년 한국출생/홍익대학교/미술대학 도예과 학사, 동대학원 도예과 석사

 「I_m right」은 상상력 무의식,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예를 들면 강렬한 원색 또는 어둡고 침울한 색채, 두터운 질감, 과장된 제스처 등을 통해 모더니즘의 절제와 침묵과 상반되는 감수성과 직관의 표출로 대치된다. 이제 형태들은 평면성을 위반하고 화면 밖으로 돌출하고 있으며 결코 공존할 수 없었던 제스처와 나아가 구상적인 모티프들이 한 화면에 기이하게 병치되어 오브제를 재해석한다.

 

다의적 개념으로써의 오브제objet
20세기 다원주의 양상이 대두되면서 현대미술은 새로운 사회, 문화적 동향의 흐름 속에 그 개념조차 바뀌어 가고 있을 만큼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다. 도예가들은 적극적인 표현방식으로서 오브제를 작품에 도입하여 작업의 다양성을 꾀하는 동시에 물질로서의 오브제가 은유적 표현을 통하여 다의적인 개념으로 전환되는 것을 실험하였다. 따라서 작품에 도입된 오브제들의 개념과 물질로서의 오브제에 내제되어 있는 정신적의미를 찾아보며 작품 제작과정에서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은 오브제 차용에 있어 그 물질이 가지는 속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아오키 캔Aoi Ken

「2개의 입방체(2001, COMPOSITION)」는 평면과 입체로 구성되어진 다량의 오브제들을 나열하여 ‘한 사물에 대한 이미지 재현의 방법 안에서 어떠한 의미작용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아오키 캔의 주된 관심사는 작품의 의미작용과 구조이다. 흙의 특성을 통해  창작의지를 엿볼 수 있는 오브제의 다의성, 반복성을 흙이라는 소재의 특성과 번조에 의한 변화를 통해 오브제의 속성을 짐작케 한다.
마사토 야마시타Masato Yamashita
1981년 일본출생오사카교육대학교 석사

「피아노 연주2_Pianoforte op.2」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器 라는 사물이 갖는 보편적인 형태를 새롭게 파악하여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이것은 구조적 형태들을 반복, 결합이라는 활용을 통해 ´보아왔던 것´에서 ´보여지는 것´으로의 오브제로서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조형물을 제시하는데 주목한다. 자기로 만든 얇은 봉을 여러 개 세운 조각들 사이의 빈공간은 바로 관람자의 몫이며 관람자가 신체를 움직여 돌아다니며 경험하는 장으로써의 공간이다. 이와같은 단일한 물체들을 관람자가 함께 존재하는 환경속에 위치시키며, 이제 관심의 변수들, 빛, 공간, 그리고 관람자의 신체를 포함하는 전체 상황으로 옮겨지게 된다.


기호Sign화 된 오브제objet
현대는 첨단복제의 시대로 이미지와 상상력이 복제되어 그 본질이 왜곡되기도 하며, 산업과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형식적이며 순간적, 감각적인 삶을 무의식중에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기하학적 형태의 예술과 조형적 재료로써의 기호는 오브제에서의 작품 표현을 위해 조형요소 중 변화, 반복, 대비, 색채, 운동감을 중심으로 디지털 문명에서 보여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박정홍Park Jung Hong/1979년 한국출생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도예전공, 동대학원 석사과정

「16개의 컵」은 ‘조용한 변화’ 이전의 작업으로 기호체계를 사용한 최초의 작업이다. 컵의 안쪽 바닥에 상감을 한 후, 컵을 기울이는 일반적인 사용행위를 통해 장식이 드러나도록 했다. 한 컵에 하나의 글자가 상감되어 있으며 ‘어쨌거나 오늘도 난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는 16개의 글자로 된 문장을 만들었다. 「50개의 컵」은 워홀의 작품 「Marilyn Diptych(2면화)」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된 색은 선상감으로 처리되어 마치 기호처럼 반복된다. 작가는 50개의 컵을 반으로 나누어 색면과 흑백면을 표현하였고, 나무와 경첩으로 된 렉을 이용하여 컵을 설치했다. 언어를 도입하여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짠, 꽥, 꿍, 썅’ 등 의성어나 비속어를 이용해서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선 장식’ 이면에 감춰진 의미가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와 부조화를 의도하기 위해 사용한 색과, 언어에서 오는 경쾌함과 가벼움은 앤디워홀의 작업과 연결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축주의적인 특성은 작품을 단일한 전체로 제시함으로써 부분들의 구성체가 아닌 단일한 사물로서의 작품개념을 강화한다. 이들 작품은 매끈한 표면처리를 통하여 자연주의적 잔재를 배제함으로써 구상성을 상쇄시키며, 내용을 제거한 물리적 속성의 강조를 통해 3차원성을 드러낸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이미지를 응용한 일상적 오브제Objet
대량 생산된 하나의 공업제품이 일상적인 맥락으로부터 가능한 한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탈되어 본래의 기능을 철저히 상실하게 될 경우 이러한 오브제를 레디 메이드Ready-Made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일상의 무수히 주어지는 사물과 사건 등에 대한 지각과정의  축적된 경험은 습관적인 지각방식을 형성한다.
흙이 지닌 물질적 특성과 다양한 기술의 도입은 새로운 조형과 형태로서의 가능성을 통해 새로운 창출을 가능케 하였다. 흙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형상의 오브제Objet 중 예부터 우리의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보아온 형상들은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용기 중의 하나로써 유기적인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시각적으로는 주위의흥미를 끄는 대상이 된다. 산업문화의 산물인 일상용품을 도입함으로써 예술과 일상, 삶과의 간격을 좁히고 이 사물들은 미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철빈Lee Chul Bin/1977년 한국출생
경희대학교 도예학과 동대학원 도예교육전공

도자오브제에 있어 새로운 재료의 선택과 그 재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표면 질감을 응용해 의미상으로는 일상적 사물의 오브제에 의한 재해석과 작품의 기면에 나타나는 텍스쳐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작품이다.

지금까지 도자예술에서 가지는 즉물적卽物的 오브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확장된 범위의 형태적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다. ´현대미술은 이미 끝났다´라는 예언이 되풀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미술은 점차 새로운 표현 방식의 확대와 내용의 변화로 현실과 예술 두 양극 사이를 적극적으로 연결 시켜주고 있다. 도예를 전공하고 지속적으로 도예의 범주 안에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전통의 가치와 그 계승은 형식적, 방법적 실험 사이에서 조율되고 변모하며 새로운 형태로 보여진다. 이들은 자칫 진부하고 고루하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도예를 위트와 유머가 가득한 재미난 오브제로 만듦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앞서 언급한 작가들 이외에도 많은 젊은 작가의 도예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젊은 세대가 생산하는 도예는 전통의 범주를 넘어서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적이라고 불리는 다른 장르의 미술이 주는 만족스러운 또 다른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손색이 없다. 앞으로 진보적인 태도와 독창성을 바탕으로 도자오브제의 ‘유쾌한 예술로의 변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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