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분청감상
- 허상욱·도핀 스카베르Dauphine Scalbert
글 홍다혜 통인화랑 큐레이터
지난 10월 첫번째 주와 마지막 주 서울 통인화랑에서 허상욱 분청사기전과 프랑스 여성도예가 도핀 스카베르의 도예전이 있었다. 분청의 전통 장식기법인 박지(무늬 이외의 화장토를 긁어내 태토의 어두운 색과 분장된 백색을 대비시켜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를 주로 사용한 허상욱의 분청사기와 한국에서 도자기를 배우고 돌아가 유럽인의 감성으로 풀어낸 분청스타일을 선보인 도핀 스카베르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분청기법 위에 안료로 채색을 하거나 장식이 가미되어가는 추세에 허상욱의 작품은 흙과 화장토의 색채 대비만으로 장식되어져 있다. 색깔로써의 화려함은 아니지만, 백색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색감과 태토의 색채 대비를 극대화 시키거나 혹은 순화시켜 어떠한 안료의 색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회화적 느낌을 표현한다. 화장토를 기면에 여러 번 덧바를 때의 속도감과 두께감, 긁어낼 때 표현되는 질감도 돋보인다. 장군병에 꽉 차게 들어가 힘차게 피어있는 모란문과 아이가 그린 듯 단순화된 꽃무늬는 분청문양 고유의 대담함과 자연물에 대한 추상적 표현이 잘 드러나 있다. 평면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각기器나 합, 접시에는 면을 분할하고, 박지와 조화(무늬를 선으로 긁어 표현하는 기법)를 적절히 배치하여 회화적 느낌을 더했다.
프랑스 여성작가 도핀 스카베르는 도예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영국 대표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책을 읽으며 한국의 도자기가 일본에 비해 더 순수하고 우수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4년간 한국에서 체류하며 도자기를 공부를 하였고, 그 이후 콜롬비아와 프랑스 등지에서 강의와 작업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프랑스 도자기에 비해 한국의 단순한 선과 여백의 미에 매력을 느낀 그녀는 분청 기법 중에서도 인화문, 상감기법 등을 모두 습득했지만, 결국 자신의 작품은 덤벙과 귀얄기법 등 가장 단순한 기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화장토에 기물을 ‘덤벙’ 담그는 작업이 쉽게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그녀는 작업 과정 중 항아리를 화장토에 담그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형태의 생명력을 주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광물이 많이 섞인 흙을 사용하는데, 가장 좋은 형태의 기물들을 장작가마 맨 앞자리에 놓아 자연적으로 생기는 변화무쌍한 색감표현을 입혀낸다. 화장토가 손에 닿는 감촉을 맛있는 크림같다고 표현하는 그녀는 자연에서 얻은 점토, 유약, 가마를 위해 장작을 태우는 일 등 모든 작업과정이 자연에 대한 놀라움과 즐거움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우리 옛 분청이 그러하듯이 담백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두 작가는 흙과 화장토의 색채대비와 단단하면서도 생명력 있는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다. 온갖 도자 재료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화장토의 매력에 흠뻑 사로잡힌 두 작가. 스스로 유한有限한 재료를 선택한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가며 발전적이고 다양한 작업을 펼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