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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월호 | 작가 리뷰 ]

히말라야의 아이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는 소년 도예가/안미륵
  • 편집부
  • 등록 2007-11-09 17:28:34
  • 수정 2008-12-24 17: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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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아이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는 소년 도예가
안미륵

녹록치 않은 무더위의 열기가 8월의 끝자락께로 길게 늘어질 무렵. 지난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이화에서 인도 라다크 아이들의 수익금을 위한 안미륵(17)군의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국의 학교에서 만든 현대적인 작품들과 한국 집에 돌아와 혼자서 물레를 돌려 만든 동양적인 작품들을 모아 선보였다. 땅으로부터 좋은 흙을 도둑질한 것에 불과하다는 본인은 이 행복한 흙도둑질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미륵. 이름이 독특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미륵’은 ‘미래의 부처’라는 뜻이예요. 하지만 저와 부모님이 불교신자인 것은 아니고, 영적인 교감을 추구하시는 저의 아버지(시인 류시화·필명)가 어떤 영감을 받아 지으셨다고 들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흙을 접해 왔다고 들었다. 계기가 궁금하다. 부모님께 들은 다른 이야기는 없나
어렸을 때 다른 장난감들에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다섯 살 때 우연히 부모님께서 흙 한 덩어리를 구해다 주셨고(부모님 친구분이 도예가이셨습니다 그것이 제가 손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한 일의 시작이었어요. 그 흙으로 처음 만들었던 형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은 숟가락, 접시, 자동차 모형이었는데, 제 손으로 직접 어떤 모양을 만들었을 때의 그 기쁨은 이미 만들어진 장난감을 사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작은 공방에 다니면서 계속 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었고, 학교 미술시간에도 많은 것들을 만들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천에서 작업하고 계신 도예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분이 물레 돌리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어요. 제가 물레에 유독 관심을 보이자 부모님이 바로 물레를 구해다 주셨고 저도 이천에서 본대로 따라해봤더니 신기하게도 잘되는 거예요. 사실 물레 돌리는 법을 자세히 배운 건 아니지만 몇 번의 관찰을 통해 저 나름의 방법으로 익히게 된거죠. 물론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웃음)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두 점을 꼽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가장 공들여 만든 작품에 애정이 가는 게 아닐까요? 또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라면 더욱 애정이 가겠지요.
한 작품[사진02]은 유약에 황토를 섞어 저만의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색깔과 형태가 잘 어우러져 만족스러워요. 또 다른 한 작품[사진03]은 투각을 하느라 정말 마음을 쏟아 작업을 했는데, 금이 가지 않고 잘 구워져 나왔습니다. 이번 전시기간동안 이 두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사실 열 명도 넘었어요. 어떤 분은 제가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높은 금액을 주시겠다고 했지만 끝까지 팔지 않았습니다. 이 두 작품은 앞으로 제가 줄곧 간직할거예요.

한국의 흙과 미국의 흙 사용에 있어 그 성질과 표현, 물레를 돌릴 때의 느낌이 달랐을텐데 어떠한가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다양한 흙이 있어서 그 흙마다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미국에서 사용하는 흙은 조금 더 부드럽고, 물레를 돌리기가 약간 더 수월한 듯 해요. 흙보다는 유약의 차이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유약은 색이 더 다양하고 파스텔톤의 유약을 많이 선호하는 것 같아요.

작업과정의 버릇 또는 특징이 있나
특별한 버릇은 없지만, 주위사람들은 제가 작업할 때 너무 꼼꼼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고 해요.
 
자신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나 이유가 있나
미국의 학교에서는 동양적이고 심플한 작품보다는 학생들의 크리에이티브가 담긴 작품을 높이 평가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컨템포러리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방학 때 한국의 집에 와서는 찻잔이나 사발, 다완 같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형태의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두 가지 형태를 접목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인도를 여러번 여러곳을 다녔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였나
다섯 살 때 처음 부모님과 함께 히말라야를 가기 시작해서 거의 2년에 한번씩은 인도, 네팔을 여행했습니다. 히말라야 트래킹이 가장 힘들었는데, 아마도 그 경험이 저에게 인내심과 강한 의지를 심어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 바라나시에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그곳 사람들과 친해져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갠지스 강가에서 연도 날리고 보트도 타고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인도 짜이(일종의 밀크티) 만드는 법도 배웠구요. 작년 여름엔 북인도 라다크에 갔다가 고산병으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돼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여행 중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나
히말라야 트래킹할 때 탈진해서 짐꾼이 맨 바구니에 실려서 내려오던 일을 비롯해서 라다크에서 고산병으로 너무 고생한 일 등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아요.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만나지도 알지도 못했을 현지 사람들과 친구가 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건축전공으로 대학진학을 한다고 들었다. 도예전공을 택하지 않아 의외다
제가 수학과 화학을 좋아해 엔지니어링을 선택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기쁨도 중요하게 여겨 그 두 가지를 결합할 수 있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년 한 해 동안 80년 된 전통 가옥인 집을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어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건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죠. 하지만 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은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고, 또 그렇게 할 겁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도예가든 화가든
아직은 특별히 좋아하는 도예가가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의 작품인가에 상관없이 제 마음에 드는 형태나 작품들이 있으면 그것을 관심 갖고 보는 편입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a는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인데, 회화와 건축을 병행했고, 그가 쓴 <작은 집>이라는 책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또한 도예와 건축을 병행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나
저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또 방학 때면 한국의 집에 와서 지내기 때문에 두 세계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건축이든 도자기든, 아무래도 제가 경험하는 두 세계가 결합된 형태로 표현될 것 같습니다.

도예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글쎄요.... 저는 그냥 흙을 만지는 것, 그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우선적으로 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죠. 또한 물레 위의 흙이 스스로 원하는 형태를 저에게 말해줄 때가 있는데 특별한 흙으로부터 창조하게 되는 작업시작의 순간이 무척 신나요.

라다크 후원모임인 델와의 수익금 마련을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작년에 라다크에 갔을 때 그곳의 작은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델와’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델와delwa는 라다크어로 ‘인연’이라는 뜻으로 인도 라다크 아이들을 돕는 모임이예요. 저와 저의 주변 몇 사람이 모여서 만든 순수한 모임으로 어떤 종교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한 학생에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달러(2천 루피)를 지원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후원 모임을 넓혀 1백명의 학생을 후원하게 되길 바랍니다.
작년 한해 동안 6명을 후원했고, 지난달부터는 5명을 더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학생들과 후원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꼭 지키고 싶고,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저나 제 부모님 주변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도 6천 달러에 가까운 기금을 모았습니다. 작품을 사주신 분도 계시고, 작품이 일찍 다 팔렸기 때문에 기금만 내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후원금을 보내신 분들도 많으시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후원방법은 제 홈페이지www.delwa.org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작품활동 전개방향이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우선적으로 당분간 대학 원서 내는 일로 정신이 없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보통 10개 대학에 원서를 내거든요. 내년 봄에 대학이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또다시 도예 작업에 매달릴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 대해서는 저의 아버지께서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느라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 말라. 지금 행복한 일을 하라.”고 늘 말씀하시는데 이 말에 따를 생각입니다.

안미륵군은 지금까지 인도여행을 통해 축적해온 자신의 관찰과 사고를 보여주었다. 이는 손끝으로 감아올려 만든 작품에서 보다 풍부하게 드러난다. 그동안의 여행과 작업을 하는 동안 새로운 감수성과 영감, 탐구를 몸소 체험한 그는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담기에 가장 적절한 그릇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예작업에 관해 더욱 날카로워지기를 열망하는 안미륵군은 조형의 정수를 보여주려 하기보단 내면의 아름다움에 힘을 실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지금껏 맺어온 소중한 인연이 그의 앞날에 아로새겨지길 바란다.


안미륵 프로필
생년월일  | 1990년 1월 17일
혈액형 | A형 독남
미국 코넷티컷주Connecticut 폼프랫스쿨Pomfret School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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