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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월호 | 뉴스단신 ]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주변재료 연구(1)
  • 편집부
  • 등록 2007-11-07 18:03:51
  • 수정 2008-12-24 17: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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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 연구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주변재료 연구(1)
글·사진 이재황 도예가/정학예사

도예가가 계룡산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우선 계룡산은 명산으로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오랜 도자 생산지로써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계룡산에서 지방색이 독특한 조선조 철화분청사기가 대량 생산되어 한국 도자사에 큰 획을 그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더불어 일본도조 이삼평공의 현장비가 있어 매년 일본 큐슈지방의 소학생과 도자 연관자들이 수백명씩 다녀가는 곳이다.
계룡산도예촌 설립시, 창립회원으로 이곳에 자리하게 된 필자는 개인작업장을 마련하는 동시에 철화분청사기의 매력에 심취하게 되었다. 추상적인 회화성과 심미성을 갖춘 철화분청사기는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의 작품이 지금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동일한 것의 다른 시대 현상」으로 표출되며 현대에서도 동감된다. 
우선, 이곳에 정착하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도자재료에 대한 궁금함과 탐구정신이었다. 그것은 분명 과거의 재료에 대한 확신과 원료를 채굴하기에 좋은 입지인 이 지역 거주자로서의 선택된 행운일 것이다. 그 동안 계룡산 주변 도자 재료를 찾아 과학기계로 비슷한 성분의 원료를 채굴하고 실험하여 같이 비교해 놓았다. 참고로 옛 재료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우니 추정해 주길 바란다.

철화분청사기의 재료적 특성
 「계룡산분청」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철화분청사기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대량 생산되었으며 짙은 회흑색 태토로 성형된 기물에, 귀얄로 막걸리색 분장토를 2/3정도 바르고 자연철로 먹쑥색의 추상적이고 민예적인 그림을 그렸다. 세부적으로는 철분이 많은 태토를 채굴하여 숙성과정을 통해 직접 사용하여 거칠고 기공율이 많은 태토로 성형을 하였다. 그 위에 분토골에서 생산된 미백색 분장토를 바른 후, 자연철로 그림을 그리고, 초벌 번조하여 유약을 시유해 4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품질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조선조 동학동에 생산되어진 기물이 ‘중품’으로 기록되어져 있으며 간혹, 관사명물이 출토되므로 상부에 납품 된 것으로 발표되었다(강경숙). 정확한 편년은 1450년~1536년의 묘지명이 출토되어 있다. 1992년-1993년 발굴시, 봉통이 자연암석으로 이루어진 5-1호 새로운 가마가 발굴 되었다.

계룡산 주변지역의 도자재료 현황
 「철화분청사기」는 고려「상감청자」와 조선「청화백자」와 더불어 한국도자의 3색色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작방법이 기록되지 않아 지금은 모두 단절된 상태이다.
도자기의 기술에 대한 문헌이 드문 것은 동서양의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공정의 이 기술은 다른 산업기술들과 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기술보유자들에게 비밀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기본적인 원인은 기술 자체가 중요시되지 않은 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경신) . 계룡산요의 구성은 윗사기골과 분토골, 동학동으로 이어진 ▲지점으로 서로 메아리가 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비온 후, 운무에 둘러져 있는 계룡산 장군봉의 비경은 이들로 하여금 예술적 기지와 호연지기를 키웠을  발로였을 것이다.
아래의 주변재료 지도에는 이 지역의 살면서 오랜 동안 채굴과 자료를 기록하였다. 이를 개인적인 실험과 주변의 문화재 연구소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자료화한 것이다. 추후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데이터를 첨가할 예정이다.

SEM-EDXEnergy Dispersive X-ray Micro Analyzer가 장착된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후방산란전자영상BEI 방법으로 철화분청사기의 조직 및 번조에 의해 변질된 광물을 관찰하였다. 이 방법은 원자번호가 높을수록 밝게 보이고 낮을수록 어둡게 보여 조직을 구성하는 광물의 분포를 관찰하기에 좋은 영상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도자기는 성분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특정한 부분을 정량분석해도 균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면분석을 하였다(문은정).

태토 
계룡산은 서북부에 편마암과 장석화강암, 남부와 동북부에 복운모 화강암, 학봉리를 중심으로 홍색장석 화강암이 분포되어 있어 주로 화강암을 모암母岩으로 하는 지질적인 특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점토층이 쌓이지 못한다. 따라서 도자기의 태토는 대량 생산을 할 정도의 양은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근 부근에 있는 용담리에 많은 양의 점토를 구할 수 있었으며 이 지역 사람들 또한 학봉리 가마의 태토는 이 곳에서 굴착한 것으로 전하고 있었다. 철화분청사기에 사용되었던 도토는 거칠고 철분이 많아 검붉고 짙은 자색을 나타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터운 백토 분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료의 저품질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계룡 사기장들의 예술적인 감성에 의해 2/3정도의 백토분장에 어울리는 추상적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기물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한층 돋보이는 개성으로 승화하는 원천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용담리 점토
용담리 점토의 화학성분은 다음 표와 같다. 주성분인 SiO2가 68.2%, Al2O3가 15.4%이다. Fe2O3가 5.52%로 철분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알칼리 성분인 K2O와 Na2O가 각각 2.53%, 0.95% 함유되어 있다.

X-선 회절 분석결과 주 광물 조성은 α-Quartz이며 Kaolin, Feldspar, Muscovite가 함유되어 있다.
용담리 점토를 전기로에서 1250℃로 산화 번조한 시편의 번조 수축율은 10.5%였으며 겉보기 기공율은 1.0%, 흡수율은 0.4%로 소결이 잘된 상태이고 백색도(케트법)는 11.1로 비교적 낮은 편이며, 색도측정결과 Grayish reddish brown이었다.

분장토
분토골에 널려 있는 암석은 백색을 띄고 있고 풍화작용을 일으켜 쉽게 부서지며 채굴된 산의 능선은 암벽을 양쪽 사이에 두고 깊게 파여져 있다. 분토골의 분장흙은 흙줄기의 맥脈으로 되어 있는데 찾기가 어려웠지만 동네 주민의 협조하에 한줄기 찾아낼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이 차량을 동원해 대부분을 채굴해 갔다고 증언하였다. 백색광물이 풍화작용으로 흙이 되는데 채굴시 그 과정을 잘 볼 수 있었다. 분장토는 하얀분토 중에서도 유난히 순백도가 높은 흰색을 채굴해야 하며 우유빛 분토보다 한층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계룡산의 태토와 분장토, 기타 도자재료에 대하여 간단히 서술하였다. 추후 유약과 안료에 대하여 다시 서술하기로 한다. 어려웠던 점은 개인이 자료화하기는 많은 시간과 여건이 필요했다는 것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계룡산에서의 재료 채굴은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현재 철화분청사기 사적지인 333호를 방치하여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홀히 하고 있다. 도예인의 한사람으로서 빠른 시일내에 복원되었으면 한다.                                                                *본 자료는 동산도기박물관의 협조에 의한다. 
 <다음호에 계속>

 

 

<본 사이트에는 많은 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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