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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월호 | 작가 리뷰 ]

반복된 무언의 몸짓/이훈Lee Hoon
  • 편집부
  • 등록 2007-11-07 16:59:32
  • 수정 2008-12-24 17: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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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무언의 몸짓/이훈Lee Hoon

글|사진  최석진 도예가

Washed
바닥은 벌써 흘려진 액체로 흥건하다. 천장 높이 물통에 연결된 가느다란 플라스틱 관에서 백토로 만든 브러시에 끊임없이 우유가 공급된다. 점토로 만들어 구운 솔을 손에 쥔 채 무릎을 굽히고, 유백색 액체로 바닥을 문질러 닦는다. 위치를 바꾸기 위해 발을 조금 움직일 뿐 두 시간여 고정된 그의 등이 힘겹다.

De;functionized / Dis;functionalized 
한 톤 가량의 흙으로 두꺼운 점토판을 만들었다. 실크 스크린 위로 팔을 반복해 움직여 판 위에 영상을 심었다. 두꺼운 판을 하나씩 들어 옮겨 그의 시야로 가져온 후 브러시에 우유를 묻혀 정성스럽게 닦아낸다. 바닥에 흘러내린 우유는 작은 강줄기가 되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젖은 흙 판 껍데기에 입혀진 사진은 천천히 사라지며, 기억이 지워진 흙 덩어리는 다시 제 위치로 옮겨진다.

om_M
노란색 아이싱(설탕과 색소를 넣은 쿠키 데코레이션)을 넓은 방, 바닥에 입혔다. 손으로 바느질한 조끼를 걸치고 한 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깊숙한 절을 하듯 머리를 숙여 바닥을 핥는다. 가끔 입을 헹구어내기 위해 일어나지만 곧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조끼에 설치된 비디오는 벽의 화면에 연결되어 혀의 움직임을 쫓고 있다. 서너 시간 후 붉은 혀와 하얀 조끼는 모두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입을 열고 있지만 무언이다.

Murmur, Murder and Mother (중얼거림, 살인 그리고 어머니)
벽에 걸린 재봉틀이 쉼 없이 움직인다. 그 옆 탯줄처럼 엉키어 있는 가느다란 선에서 우유가 분출한다. 몸에 길게 걸친 흰 가운은 오래된 관습 같이 제례를 기다리는 것 같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한 손은 바닥을 짚고 다른 한 손에 금속기기를 들어 수직으로 내려 무엇인가 찍는다. 반복된 행위로 관객은 이미 흰 종이 위에 찍혀질 다음 동작을 예측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덧 신체는 더 이상 팔의 행동을 수용할 수 없다. 몸 동작은 점점 둔화되어 간다. 바닥을 향한 그의 힘든 몸짓은 체념으로 다시 또 되풀이할 뿐이다.

이 훈(40)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감성과 직관을 사용하는 예술형태를 추구’하는 그는 관객에게 작업의 과정을 보여주는, ‘느낌을 주는 작업’에 흥미를 가지며 그의 이러한 작업은 퍼포먼스Performance형태의 행위로 표출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관객에게 끊임없는 의문을 던진다고 표현한다. 부안, 청자요의 청자 파편을 가져다 쪽이 맞지 않는 파편을 계속해서 맞추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하거나 몸에 슬립을 바르고 건조한 후 바닥에 떨어진 흙 조각을 땅에 묻고 일 년 후 그 흙을 다시 파서 전시 했다. 그는 “나는 나의 예술이 촉감과 경험을 통해 그것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 훈은 한국에서 7년간의 실험적 도예작업을 마감하고 미국의 알프레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그는 나체의 여성을 슬립에 넣어 몸 전체에 흙물을 바른 후 건조시킨다거나 냉장고를 통째로 가마에서 번조하는 등 파격적 실험의 과정을 거친다.
그의 행위에는 물질들이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예술은 물질과의 새로운 연관성의 산물이며 창조는 이전에 존재했던 물질의 재구성’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신체와 더불어 우유, 검은 잉크, 면도기, 플라스틱, 흰색 의복, 재봉틀 등과 같은 물질들은 다양한 의미를 운반한다. 그는 “물질은 이론과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자체의 단순하고 순수한 느낌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의 과정은 기본적 재질에서 물체적 상태나 개념적 상태 또 최종적으로 이 과정에 의해 형성된 창조적 의미로 일련의 은유적 상태의 운동을 통해 완성된다.”고 말한다. 알프레드에서 그의 스승인 시콜라는 “물질성이 이상하게 유혹적이다.”라고 말했다. 보통 한 개의 물질을 통하여 극과 극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수반하는데 즉, 우유는 모유이며 동시에 청소용이며 어머니, 모성, 모자의 관계들을 의미하며 단맛은 그에게 할머니, 원죄, 고생, 고난을 의미한다. 이 훈은 모든 물질은 정신을 소유하며 예술가는 물질에서 정신을 찾아내어 그것을 끄집어 내고 싶다고 한다.
리듬있게 말없이 반복되는 그의 행위는 도장 찍고, 세척하고, 핥음을 되풀이함으로써 점점 가혹해진다. 조용한 그의 공간은 ‘신체적 위기를 동반하는 위기의 공간’이며 이 위기는 몇 시간째 계속되는 고된 작업의 불편함에 의해 드러난다. 이에 대해 시콜라는 “그의 작업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즉 자가치료와 문화적 분석”이며 “단순하게 되풀이 되는 동작은 청중과 관객 사이의 교류를 통한 참회의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작품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반은 자신의 작업이고 나머지 반은 사회에 대한 의문을 던짐으로 완성한다고 말한다. “나는 상호 이해와 신체적, 영혼적 느낌을 발전시키는 변화, 재고려 그리고 분석의 반복인 과정을 통한 예술의 평범한 진실을 일깨우고 싶다.”, “나는 예술이라 정의하는 것을 찢어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인간다움과 물체 사이의 조정자가 되도록 인도하고 싶다.”
그는 퍼포먼스를 할 장소를 조심스럽게 선택한다. 가능한 여러 개의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장소의 색, 크기, 바닥의 재료 등은 그가 민감하게 살피는 요소들이다. 관객은 그의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무릎을 포개어 앉거나,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오랫동안 그의 움직임에 주시한다. 말없는 그의 몸짓은 그를 둘러싼 공간을 풍선처럼 팽창시킨다. 그가 대기 중으로 향한 소리 없는 언어는 어느덧 천천히 관객으로 스며든다.

“작업자는 유령이고,
            작업은 잊혀지지 않는다”
-린다 시코라Linda Sikora-

작가 이훈은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알프레드 대학교에서 도자 석사과정을 마쳤다. 개인전 및 그룹전, 미국내외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퍼포먼스 설치작가로 아티스트 창작 프로그램에 다수 참여해왔다. 서울산업대와 존슨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Grand Valley State University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 최석진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크랜불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를 졸업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전 11회를 가졌으며, 이화여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James Madison University (Harrisonburg, VA) 에 조교수(One year Appointment)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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