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있는 푸른 날개짓/정호진 Jeong Ho Jin
청자는 흙으로 빚어내는 보석이다. 생명력이 있고 하늘과 바다와 산의 ‘푸름’을 담고 있다. 즉 자연을 그릇으로 빚어낸 것이 바로 청자이며 그 형태와 빛깔은 매우 뛰어나다. 본래 천하제일의 찻그릇이라 불리던 그릇이 청자였다. 지금은 백자나 분청, 이도다완 그릇만큼 많이 사용되지 않지만 다시 새롭게 인식되고 사랑받아 마땅한 그릇이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작가 정호진(39)은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 조소실에서 점토를 만지는 그 순간 매력에 빠졌고 단국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며 흙과 인연을 맺었다. 전통적인 작업을 통한 정체성 확립에 열중해 있던 그는 분청 작업을 하며 그 원류가 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 청자의 우아한 몸과 그 빛깔에 반해 청자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작업과 실험이 반복되면서 그는 작업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청자 원료에 관한 것 뿐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기도 했다.
2005년 5월. 청자로 유명한 전라남도 강진과 모교의 자매결연으로 강진도예연구소가 개소되었고 그곳 연구원으로 지원해 정호진은 강진으로부터 천년전 선조들의 노하우와 자연의 우수한 원료들을 선물 받고 있다. 곳곳에 숨겨진 귀한 선물 꾸러미들을 열어보며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꿈을 조금씩 발견해 내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과거 오랜 시간동안 한 개인이 아닌 수많은 장인들에 의해 준비된 선물은 도예가 정호진에게 값지고 귀하기만 하다. 과거 청자의 비밀을 발견해 내는 것은 작가에게 미래의 꿈과 동일한 의미이다.
정호진이 빚어내는 청자의 선은 결코 가볍지 않은 기품있는 날개짓을 한다. 전체적으로는 쳐지지 않은 엉덩이와 위로는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형태로 고급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법 중 특히 청자의 색을 잘 보여주고 유약의 두께에 따른 색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는 음각과 양각, 양인각 기법을 매력적으로 잘 표현해 낸다. 현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전통기법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그는 즐겁고 재밌다. 지난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세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이러한 청자의 깊고 푸르른 매력을 한껏 뿜어내었다.
현상이나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흙과 도자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작업의 화두로 삼는다. 공예의 본질인 쓰임에 대한 디자인을 옛 사기장들이 이룬 역사의 걸작들을 통해 마음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그에겐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흙이란 정호진 자신이며 또한 ‘우리’의 의미이다. 작업을 통해 흙으로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것으로 우리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 그것이 작가의 바램이다. 많은 이들이 청자를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현대생활과 멀게 여긴다. 하지만 청자를 사랑하는 도예가 정호진은 전통에만 국한된 멀리 있는 청자를 지금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다시 초청하고자 한다. 천년전 이 땅에 맺어진 푸른열매가 너무나 오래간 품고 있던 조그만 씨앗. 한 젊은 도예가의 열정에 싹을 틔우고 잘 자라나 다시 한번 푸르른 열매를 맺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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