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mato Yasuo야마토 야스오
노老도공의 신新예술조형 의지
글+사진 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1933년 출생, 야마구치山口현립대학 대학원 국제문화학연구과 수료. 현재, 야마구치현 지정 무형문화재 하기야키 보유자 및 야마구치현립대학 강사. 사회활동으로는 일본공예회이사, 일본공예회 야마구치 지부 간사장 역임. 주요 작품들은 카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바르셀로나민족박물관, 미국 클리브랜드미술관, 호놀룰루미술관, 야마구치현립미술관, 대영박물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등지에 소장.
얼마 전 일본 하기미술관의 학예과장인 친구의 소개에 의해 6월 12일 홍익대학교에서 특강을 한 작가의 약력이다.
이상의 경력들을 보면 야마토 야스오는 올해 75세의 도예가로서 원로의 반열에 둘 수 있는 작가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오랜 연륜과 경험이 당연히 축적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자료들을 보았을 때 그 짐작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생각과 태도였다. 도예가로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30년 이상 작품을 해야 하기 때문에 72세에 대학원에 진학하였다는 것은 경이로운 사실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나이를 잊게 했을까 하는 의문은 작가의 특강을 들으면서 하나씩 이해가 되었다.
야마토 야스오는 장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부터 가업을 도우며 성장하였다. 찻잔과 밥공기 등을 매일 300여 개씩 만들면서 장인으로서의 기본을 다져가던 중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에게 감명을 받고 순수미술을 동경하면서 상당한 심리적 갈등을 겪었고 그 결과 가출을 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했다.
야마토 야스오의 중학생 시절이라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전 즉 1940년대 후반에 해당한다. 이때는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현대도예가 막 시작단계에 접어들 시기였다. 따라서 야마토가 작품의 방향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도예의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집을 나온 야마토는 이후 교토의 절에서 생활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기반을 쌓아가기 시작하였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계기를 찾게 되었다. 일전日展1)소속의 유명작가 문하에서 새로운 도예의 길을 가던 그는 일전의 스타일에 맞는 조각적 경향의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 아래서 그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공모전의 스타일과 심사위원의 눈을 의식하는 제작태도였다. 새로운 번민에 직면한 야마토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찾고 솔직하게 흙과 마주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표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일전을 탈퇴하고 일본전통공예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지금까지는 참신한 형태를 만들고 싶다는 디자인적인 의식이 매우 강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인간이 있고 흙이라는 소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조형의식에 어울리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흙과 나 사이의 조화와 대립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완성한 작품의 형태라고 하는 이미지가 처음에는 막연하였고 그 형태에 안일하게 장식을 하는 것에 따라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흙을 선택하고, 그 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 여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흙과 대화하면서 조형을 하고 있습니다.
흙을 조형하고 건조시키고, 초벌 후에 유약을 바르고 재벌을 합니다. 이른바 소재+기술+프로세스(과정)=작품이라는 방정식이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흙에서부터 도자 작품이 되는 과정 하나하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다른 장르와 구별될 수 있는 도예라고 하는 예술이 지닌 본질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야마토는 도예가 다른 조형예술과 구별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을 일찍부터 자각하였으며 그것의 구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통적인 양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야마토 야스오의 작품들은 크게 다섯가지로 구분되며 다완과 도벽작품을 제외한 것들은 자신이 창안하였거나 전통적으로 전래되는 기법에 의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 흥미로운 것은 다완에 대한 태도이다. 지금도 그가 제작하는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 다완은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다도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야마토는 그러한 상황을 답습하거나 극단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많은 작가들이 다완의 백미라고 하는 이도다완을 포함한 전승적 양식의 모방에 비중을 두고 있는 반면 야마토는 지금까지 없었던 다완제작에 진력하고 있다. 작가적 감정과 미의식 그리고 자신이 관조하는 삶과 정신들을 사용자가 느낄 수 있는 다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조합한 화장토에 의한 큼직한 균열이 있는 다완들은 역동적인 이미지의 표출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의 경향은 작가 자신도 강조한 바 있는 소위 예술지상주의에 입각한 도벽 작품이다. 야마구치현내의 몇 몇 건물에 설치한 도벽들은 일본 내의 다양한 도벽들 가운데서도 하기야키 즉 지역적 특색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질태토에 의한 약간 거친 질감과 담백하면서 온화한 색상, 미니멀한 구성 등은 기교나 기법에 의존하지 않고 점토 특유의 맛을 충실하게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작품들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호노오하쿠炎箔라고 이름 붙여진 기법은 그를 야마구치현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진한 농도의 소금물을 표면에 발라 짙은 갈색의 발색을 유도하는 기법이다. 소금물의 농도와 겹쳐 칠한 횟수에 따라 표면의 색은 다양하게 조절되며 미묘한 색감의 장식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야마토는 소금물이 칠해진 부위보다 그 사이의 틈을 더욱 중시한다. 소금물이 칠해진 사각형을 약간 비틀어 배열하면 그 사이에는 마치 빛이 새어 나온 것 같은 밝은 색의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들과 갈색 사각형의 경계는 때로는 동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완벽한 경계에 의해 구분되면서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호노오하쿠 외에 바람의 문양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작품들은 기법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두꺼운 흙판을 자름줄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잘라내면 양 가장자리에 예기치 않은 곡면들이 나타난다. 이 면들은 마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한 모래언덕의 문양처럼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선들을 보여준다. 야마토는 이러한 문양들을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작품의 형태에 부합하는 리드미컬한 질료적 특성을 구현하고 있다.
마지막 하나는 화장토에 의한 장식기법이다. 일종의 흘리기 기법으로 둥근 병이나 발 등의 어깨에 하기점토를 일부 혼합한 화장토를 두께와 양을 조절해 흘리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표면을 감싸는 문양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야마토 야스오의 작품을 일본의 현대도예에서 독보적이라거나 선구자적이라는 통속적인 미사여구로 간단하게 정의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그가 살아온 작가로서의 역정과 작품에 대한 에너지 그리고 75세라는 비교적 고령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쳐 가는 의지가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일본미술전람회의 약칭으로 1907년에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국전에 해당한다.
「예체銳體」 1959년, 일전 입선작
「백유하기다완」 2004년 작
「분청하기다완」 2006년 작
「도벽」 1978년 작
「호노오하쿠사각합」 1982년 작
「바람문양화기」 1998년 작
「바람문양화기」 1998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