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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월호 | 뉴스단신 ]

시골에서의 공방창업
  • 편집부
  • 등록 2007-08-29 14:44:55
  • 수정 2018-01-22 17: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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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공방창업

이 글은 지난호(2007년 7월호) 특집인 <도예공방 만들기 노하우 공개>를 읽고
애독자인 도예가 오인탁씨가 투고해 주셨습니다.

글 오인탁 도예가, 공주도요 운영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서 하룻밤을 새워본 경험이 있다면 한번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도예공방을 차리고자 한다면 이런 곳에 공방이 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의 걱정도 막상 이런 오지에서 공방을 차려 과연 생활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일 것이다. 필자의 스튜디오는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으므로, 도시와 다른 각도에서 취할 수 있는 나름의 장점을 공방을 창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도예공방을 만들기 위한 노하우에는 사실 정해진 모범답안은 없다. 마치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정해진 규칙이 없듯이... 그러나 월간도예 7월호에서 언급하였듯이 기초적 작업능력과 공방운영의 현장체험을 어느 정도 경험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마음의 자세가 어느 정도 되어 있으면 그 다음으로 공방의 장소를 정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지난 호에서는 도시에서의 공방의 위치를 정하기 위하여 자금과 예산, 교통, 접근성, 역세권 등을 고려사항으로 들었다.
위와 같은 공방의 위치 결정은 단순히 수강생을 보다 쉽게 확보하여 도자기 성형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창업하는 경우이다. 한번 자리를 정하면 쉽게 이전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위치선정을 고민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골에서의 공방창업은 위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시골에서의 공방운영은 위에서 말한 고려 상황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시골의 공방이 매력적인 이유
공방의 위치는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작품창작의 방향과 활동영역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리적 위치가 가지는 특성도 무의미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어떠한 지리적 위치에 오랫동안 존재함으로서 얻게 되는 독특한 정보는 그것을 알게 되는 소수에 의해서 독점할 수 있는 권리도 아울러 가질 수 있다. 독창적 정보는 바로 작품에서 남과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게 된다. 시골에서 창작활동을 하려는 작가에게 가장 큰 매력의 하나가 바로 차별성이다. 즉, 작품의 차별화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의 이유 중 하나는 자기만의 흙과 유약을 사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흙과 불과 유약을 통하여 도자기의 양태가 결정되므로 흙과 유약을 도재상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대다수 작가들이 서로 차별화를 구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골에서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도자기에 응용할 수 있는 흙이나 유약의 재료 등을 한 두가지 찾을 수 있고 이러한 마을 주변을 잘 이용하면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활용할 수가 있으므로 자연스레 다른 작가와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작품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기만의 흙과 유약의 성분을 살고 있는 주변의 야산에서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좋은 장소이다.
시골을 이러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독점할 수 있는 섬과 같은 장소로 생각한다면, 창작에 몰두하고자 하는 예술인에게 가장 적은 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는 적지이다.
시골에서의 도예공방 창업은 이 업을 생활수단으로 삼거나 창작활동의 결과로 명예도 얻고, 자신의 길을 가고 싶은 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권하고 싶다.

시골의 공방장소를 정하는 방법
­연고지를 잘 활용하라
시골에 연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곳의 인맥이나 지형지물을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그곳에서부터 주변지역으로 넓혀가면서 창업의 장소를 물색한다. 주변의 지인이나 공인중개사무소, 특히 마을 이장님을 찾아가 묻고 또 물으며 찾다보면 무료로 살 수 있는 옛집도 의외로 많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그런 집은 수리비가 많이 드는 경우가 많지만 마을에서는 빈집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환영하므로 마을사람들과 위화감도 없이 쉽게 친해질 수가 있다. 또한 경치 좋고 마당 넓은 옛집들도 대부분 주인이 객지에 살고 있고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가 저렴하므로 조금만 손을 보면 운치 있는 작업장을 가질 수 있다.
시골집은 임대할 경우 도시에 비하여 월세도 없고 전세도 5백만원에서 천만원 정도면 웬만한 곳은 된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이정도면 거의 부담 없이 작업장을 꾸밀 수가 있다. 또한 시골의 경우 땅과 건물이 따로 등기된 즉 주인이 다른 경우의 집이 많다. 이러한 경우, 건물만 매입한다면 백만원에서 2천만원 정도면 구입도 할 수 있다. 건물에 대한 등기된 권리가 있으므로 일정한 토지세만 납부하면(1년에 10만원 정도) 영원히 자기 집처럼 살 수가 있다.

필자의 작업장은 이 부근 마을에서 가장 큰 옛 기와집인데 터가 2,500평방미터나 된다. 담장이 옛날 흙돌담으로 되어있어 봄, 가을, 겨울에 보면 그 형태가 너무 정겹다. (이번 장마에 두 군데가 무너져 바로 세울 일이 걱정이지만...) 친구들이나 손님들이 와서 뒤뜰에서 자란 야채와 함께 밤에 마당에서 술 한 잔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본채에는 갤러리와 차실, 침실 등이 있고, 마당한편에 작업실이 있고, 반대편에 가스 가마 1대와 기름+가스+장작을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단가마가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자
시골에 연고가 없는 분들은 인터넷에서 시골을 소개하는 까페나 동호회를 통하거나, 각 지역 군청에서 빈집정보를 얻거나,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폐교를 문의하여 여럿이 폐교를 도자기 체험 장소와 작업장 및 갤러리로 멋지게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 또한 현재의 작업장에 둥지를 틀기 전에 전국의 폐교를 비롯 좋다는 곳을 수소문해 나만의 터를 찾기 위해 많이 돌아다닌 것이 도움이 되었다.

주변에 반드시 접근성이
좋은 산을 끼고 있어야 한다.
산은 나만의 흙이나 유약 등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찾아 쓰기에 꼭 필요한 장소이므로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도시가 유지되어온 유서 깊은 곳에는 거의 대부분 도자기를 만들었던 흔적이나 유적지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곳에는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흙이나 유약 등의 재료를 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너무 인적이 드물거나 접근성이 어려운 곳은 초보자일 경우 적응치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작업에 피해가 없는 한, 마을사람들과 되도록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다.
필자의 작업장이 있는 마을의 뒷산은 우산봉인데 꽤나 높다. 산속 깊은 곳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있으며, 산길을 걷다보면 미발굴된 조선시대 백자도요지가 방치돼 있어 발길에 밟힐 정도로 커다란 사기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백자태토를 비롯해 약토, 마사토 등 다양한 태토를 찾아서 실험중이다.
시골 옛집을 공방으로 개조할 때 주의할 점
­어떤 형식의 공방을 운영할 것인가
공방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따라 집을 개조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운영자의 경험이나 성격, 취향, 고객층을 고려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아래의 3가지로 요약해 정리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도시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옛 시골 그 느낌을 체험코자 하므로 시골의 있는 모습을 파괴하지 말고 되도록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자. 즉 시골 옛집을 최소한도로 고쳐서 사용한다고 생각하자.
필자의 작업장도 비 새는 정도만 수리하고 화장실만 수세식으로 바꾸었을 뿐 제비집이나 부엌의 불을 땐 흔적으로 묻은 검댕도 그대로 두었다. 장작을 사용하여 난방을 하는 방은 정말 인기가 좋다. 본인의 전용 침실이기고 하고 서재이기도 한 이곳은 말 그대로 황토방이니 별도로 서양식으로 꾸며서 홈스테이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수강생이나 단체수강생을 위한 체험장 운영의 경우
일일 수강생이나, 학교, 유치원, 회사 등의 단체를 수용할 경우 그에 알맞게 작업장 시설을 해야 한다. 홈스테이를 병행할 경우도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시골이라고 수강생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변 도예인들의 경우를 보면 작품보다 체험장으로 꾸며가는 경우가 더 많다. 도시보다 경쟁도 없고, 무엇보다 도시와 같은 교육적 체험장소가 주변에 없으므로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의 단체 체험이 도시보다 훨씬 많이 이루어진다. 체험위주로 운영할 경우, 마켓팅이 중요한 요소이다. 회원관리 및 지역사회의 단체에 홍보도 지속적으로 하고 인터넷으로 홈페이지도 운영해야 한다.
요즈음은 도시생활을 하다 정년을 넘기고 시골에서 귀농하여 살고 있는 분들도 늘어가므로 근처 마을에 거주한 이런 분들을 초대해 차를 대접하면서 취미생활을 권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또한 근처 가까운 도시와 연계하여 수강이나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유치하는 것도 좋다.
­도예체험장과 본인의 창작활동을 병행할 경우
이 경우가 가장 힘이 드는 경우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방법이 좋을 것이라고 쉽게 판단하지만, 사실 고도의 자기 절제가 없을 경우 수강생이 없는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고 자기 작업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수강생이나 체험으로 공방이 운영되고 생활까지 된다면 대다수 마음이 해이해져 창작에 전념하지 못한다. 지인들 중에 어떤 분은 요일을 정하고 창작에 전념하기 위하여 수강생이 오는 날과 시간을 구별하여 운영하기도 하지만 역시 일이나 손님이 정해진 시간에만 오질 않으므로 그 시간을 엄수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경우는 새벽에 일어나 오전동안 자기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방문객을 받은 분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방문객으로 10년 넘도록 자기 작업다운 작업을 못한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유념토록 한다.

 

­창작활동 전용 작업장으로 만들 경우
모든 도예인들이 꿈꾸는 이상적 공방일 것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길일 것이다. 가진 재산으로 공방을 차리고 꾸려갈 수만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작품만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면 처음 공방을 창업하려는 이들에겐 일종의 모험에 도전하는 것이 될 듯도 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비축된 재산으로 버티지만 그동안에 작품을 판매할 마땅한 수단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는 분들 중에는 이러한 사정으로 공사장에서 일급을 받아 공방을 꾸며가는 분도 있기는 하지만, 생각만 해도 참으로 고난한 일이지 않겠는가? 이 땅의 젊은 도예인들 중에 처음부터 현실에 도전하다시피 바로 창작활동에 뛰어드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은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가 있다. 취미로 시작을 했건 도예전문 과정을 마친 학생이든지 이런 방식으로 공방을 시작하고픈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에서나 창작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시골생활도 창작활동도 계속하기가 어렵다.
바로, 고독과 친구처럼 지내고 고독을 즐길 수 없으면 본인의 창작활동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독은 바로 창작의 샘물과 같다.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넌센스가 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고독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시골의 생활이 단조롭고 갑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꾸로 시골에서 보면 도시의 삶은 쓸데없이 바쁘고 복잡하고 번거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골에 적응하면 도시가 번잡한 곳이 되고, 도시에 적응해 살다보면 시골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뿐이다. 서로가 가진 장점을 적절히 취하여 생활하는 것이 현명한 생활 태도이다. 특히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오는 사람들이면 명심해야 한다.
귀농을 권하는 책에서 보면 좋은 내용이 많으니 한번쯤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이곳 시골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이 들고 말았다. 지금은 서울에 가면 오히려 답답하고 무료해 며칠 버티지 못한다. 시골에 들어오면서 많은 것을 버리고 왔는데, 그중에 가장 큰 것이 TV와 인터넷, 핸드폰, 신문이다. 작업장에서 유일한 문명의 소식통이 라디오이고 전화가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이다. 많은 것을 버리니 많은 시간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이렇게 얻은 시간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간의 연못에서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제 이렇게 얻은 시간은 내 창작의 모티브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끝으로 피카소의 글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성공이 대중 속에 있지 않고 자유와 고독 속에 있음을 알았다. 부와 명성을 원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의 자유를 꿈꾸었다. 그는 늘 고독 없이는 어떤 예술도 창조될 수 없다.’

필자 오인탁은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8년간 작업해오다 지난 2006년 봄 충청북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로 내려가 공주도요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제1회 테이블웨어전과 2006년 유약연구모임 기획 <춘향전>, 2007년 티월드페스티발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 큰 나무아래 자리한 요장
담쟁이넝쿨로 아늑한 작업공간
한 시골공방의 장작가마
복잡한 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에서 도자기를 체험하고자 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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