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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월호 | 칼럼/학술 ]

[소소담화36] 감춰진 존재 : 공예계의 협력자들
  • 홍지수 공예평론, 미술학박사, 크래프트믹스 대표
  • 등록 2025-01-03 11: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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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모리스가 1970년 휘트니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로버트 모리스: 최근작 Robert Morris: Recent Works》는 현장에서 콘크리트, 목재, 강철을 쏟아붓고 완성했다. 작품 길이가 29m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여 휘트니 역사 이래 가장 큰 설치 작업으로 꼽는다. 조립하는데 열흘, 삼십 명의 지게차, 크레인 운전사, 건축 공학자 등 모리스를 돕는 많은 인력과 기계가 동원되었다. 

이 전시는 오프닝을 기점으로 전시를 공개하지 않고 작품 제작 및 설치 과정을 관객에게 공개해 과정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세스아트를 표방했다. 이 전시는 예상과 달리 전시 준비 과정을 노출한 것보다 뜻밖의 사건 즉, 설치 중 인력 한 명이 깔리는 사고가 나서 공개가 중단되어 이슈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미술노동자연합 주도 파업이 일어났고 모리스 역시 예술의 행위를 노동으로 다시 보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는 이 전시 이후 프로세스아트는 물론 후기 미니멀리즘과도 멀어졌다.


지금 현대미술의 장은 갈수록 스펙터클한 설치미술, 공공미술이 대세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대형 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할 때, 보조 인력 없이 작가 홀로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리스처럼 미술관 현장에서 단기간 상주하여 작품을 제작한 후 전시를 열거나1) 비행기 격납고와 같은 팩토리형 대형 작업실에서 작가가 감독을 맡고 중장비나 다수의 보조 인력을 투입하는 작업방식은 현대미술계 블록버스터급 전시의 관행이 된 지 오래다. 마치 중세 장인들의 길드 체계처럼 1970년대 세라, 로버트 스미스슨 등이 펼친 대형 미술 프로젝트에는 전문기술자들부터 수습생까지 다양한 인력이 투입되는 것이 당연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면 전시를 위해 투입된 인력의 상해나 사고, 작업 중 투입 인력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평등성이 예술가의 명성이나 성과에 가려 가리기에 급급하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화가 주디 시카 고Judy Chicago, (1939 )의 대표작 「디너파티 The Dinner Part」 (1974~1979)는 가부장적인 미술 제도에 반하여 여성들의 바느질, 자수, 공예를 전면에 등장시켜 경멸당한 여성의 몸, 남성 예술가들이 독점하거나 왜곡한 여성의 몸을 재조명한 여성미술의 역작이다. 우리는 주디 시카고의 프로젝트로 기억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도예가, 섬유 예술가, 자수 공예가 등의 수많은 참여자의 자발적 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다. 결국 대규모 설치 작업의 과정과 성과를 주디 시카고가 독차지하고 은폐를 묵인했다는 여성계의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것을 하나의 ‘과제work’를 이루기 위해 공동체적 양상을 띤 미술 실천이 아무런 갈등이나 불화 없이 진행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작은 균열과 틈 정도로 치부하고 논할 수도 있다. 미술계의 남성중심적 권위의 부림에서 탈피 할 것을 종용하는 여성들을 기념하는,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에 의한 공동체 설치이자 전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 여자들의 노고와 노동에 대한 은폐는 아쉽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미술계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대지미술 등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소위 공장제 제작 그리고 탈숙련화로의 이행에 대해 매료된 경향이 있었다. 미술은 창작이 아닌 노동으로 그리고 미술인 그리고 제작자/기술자 사이의 협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착수된 것도 이때부터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작업지시서와 함께 아예 외부 공장에 맡겨 제작하기 시작했다. 일부 상주하여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전 과정의 미학적 통제를 해야 한다는 저자성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감독자로서 정체성을 고수하는 작가들도 생겨났다. 소위 작품제작은 타인 혹은 기계에게 시키더라도 작가가 사인하면 예술이 되는 것인지 회의적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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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암미술관이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1980~)의 《더스트》전에 작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 신작 회화 20점을 전시한다. 이외에 작가가 상주하며 리움의 고미술을 보고 파생해 그린 파스텔 벽화 5점을 전시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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