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성남작가조명전Ⅴ
서수영 《HERITAGE CODE: 헤리티지 코드》
11. 1. ~12. 22.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서수영(b.1972-)은 동시대 통용되는 ‘한국미’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한국미술사를 직조하는 최고의 미감이 담긴 우리의 ‘국보國寶’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현대미술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는 중견 한국화가이다. 지난 30년간 한국화가로서 일관된 화업을 쌓아온 서수영은, 한국 전통회화의 견고한 방법론을 토대로 화폭 위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오며 주목받았다.
최근 서수영은 조선시대 백자와 회화를 오마주hommage하는 작업을 통해, 한국미를 구성하는 미학적 원류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고고한 백색 미감 속 문인정신文人精神이 깃든 백자는 우리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한국미의 총체라고 평가받는다. 서수영의 작업은 단순한 상고주의尙古主義에 입각한 것이 아닌 예술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동시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의 국보를 현대미술로 오마주하는 서수영의 작업은, 단순한 완물상지玩物喪志의 차원이 아닌, 그 속에 담긴 문인들의 감식안鑑識眼과 문인정신의 가치를 함께 계승하고자 함이다. 한국적 미학의 확립과 더불어 문인 정신의 본질을 함께 이어갈 때 진정한 한국미의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서수영의 작품을 통해 문인의 시선과 미감은 동시대 미학적 변용을 거쳐 구체화 된다. 조선의 백자는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과 미감이 집약되어 탄생 된 시대적 산물이라는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 한국은 10세기 후반에 시작된 고려 백자의 전통을 바탕으로 중국의 기술을 수용 하여, 15세기 조선 초기에 이미 경질백자硬質白磁를 생산하는 기술력을 갖추게 되었다. 유럽의 경우 1710년 독일 마이센Meissen에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 1719가 백자 제작에 성공했다. 조선의 백자는 유럽 보다 약 200년이나 앞서갔던 당대 최고의 첨단 기술이었다.
조선의 백자를 조망하는 것은,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지향했던 가치와 이상향, 정신세계를 살펴보는 일 이기도 하다. 조선백자는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과 최상의 미감이 집약된 결정체이다. 서수영은 청화백자를 애호했던 문인정신과 감식안을 동시대에도 계승하고 이어가야 할 한국미로 평가하며 이를 한지 부조 위에 화려하게 그려냈다. 서수영의 작업은 근대기 타자화된 시각에서 정립된 ‘한국미의 준거틀’을 탈피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한국미의 화려함과 정교함에 주목한 서수영의 작업 주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주장한 한국미에 대한 해석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미를 ‘비애의 미’로 바라보며 동양적 민예론의 맥락에서 해석했지만, 이는 고도의 식민사관과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설계된 한계를 지닌 이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선백자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 공예는 ‘소박함·고졸함·질박함' 등과 같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었고, 한국미를 특정 짓는 레이어로 학습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 급격한 서구화 및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전통 미감을 논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부정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국미의 본질을 탐구하는 치열한 활동들이 학계·예술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Heritage Code 5」 163×132cm | 수제장지에 금박24k, 합금박, 석채, 먹 | 2024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 역사서 『삼국사기 三國史記』를 편찬한 고려 중기의 역사학자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를 말하며, 한국미에 대한 최초의 미학적 정의를 내렸다. 고려불화에서 조선의 청화백자에 이르기까지, 서수영의 작업 주제는 한국미에 대 한 특질을 ‘격조 높은 화려함’에서 찾으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화이불치’의 미감과 맞닿아 있다.
서수영의 작업은 주제적인 측면 외에 양식적 측면에서도 한국미를 구성하는 전통적인 요소와 물성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지紙 ·필筆 ·묵墨으로 상징되는 전통 문인화의 구성 요소를 바탕으로 하면서, 전통 석채石彩를 활용해 오방색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채색하여 생동감을 더했다. 또한 백자 표면의 빙렬氷裂은 섬세한 금채로, 백자를 품고 있는 산수화의 묘사는 물성이 도드라지는 화려한 금박으로 정교하게 표현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Heritage Code 6」 163×132cm | 수제장지에 금박24k, 합금박, 석채, 먹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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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수영(b.1972-)은 서울 출생으로,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 전공 및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동덕여대 예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2024년 성남큐브미술관 개인전 외에 Galerie Visconti(프랑스), 한국미술관, 영은미술관을 비롯한 4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영은미술관, 한국미술관 등 여러 기관과 기업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