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거도자의 기틀마련과 역대 대만도자비엔날레 현황
대만 북구에 위치한 잉거Yingge는 200여 년 전부터 양질의 토양 덕에 도자산업의 중요한 도시로 부각되었지만, 1990년대 들어 큰 변화를 겪었다. 도예 창작자들이 스튜디오를 설립하 면서 전통의 맥을 유지하던 도자기 관련 산업과 체계가 점차 힘을 잃고, 그 빈자리를 오브제적 작품 성향이 채워나갔다. 특히 2000년 대만 최초 박물관인 신베이시 잉거도자기박물관 이 개관해 도자기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수행했다. 2001년 한국에서는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세계도자기엑스포2001경기도’ 행사에서 ‘제1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성공리에 마무리하였다. 2003년에는 ‘제2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가 개최되었는데, 필자는 대만 관계자들이 조사차 한국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한다. 잉거도자기박물관은 2001년부터 문화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작품을 공모하는 형식으로 비엔날레를 준비했다. 2004년 제1회 ‘대만도자 비엔날레’가 열린 이후, 위탁에서 보조금 지원으로 바뀌면서 잉거도자박물관이 제2회(2008) 대만도자비엔날레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그즈음 일본 국제도자기페스티벌미노 (1986)가 시행하던 국제도자기전 미노공모전을 포함,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은 비엔날레를 통한 선의의 경쟁으로 접어들었다.
대만도자비엔날레의 특이한 점은 2010년 해외 큐레이터를 공모·선정해 전시를 기획하는 ‘주제별 큐레이션’ 형식을 도입해 4년에 한 번씩 작품공모전과 교체하면서 진행한다는 것이 다. 공모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도자문화에 대한 담론을 주제별로 나눠 문화적 토론을 심화하겠다는 의미다. 당연히 국제세미나, 워크숍도 함께 진행된다. 따라서 주제별 큐레이 터 형식이 적용되는 연도에는 작품공모형식이 진행되지 않는다.
2024대만도자비엔날레의 특징
2024대만도자비엔날레는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참가국은 아시아 58.6%, 유럽 25%, 미국 12.5% 순이며, 참가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중국(167명), 대만(158명), 미국(64명), 일본(60명), 한국과 영국(23명) 순이다. 입선자를 국가별로 분석하면 중국(20명), 일본(10명), 대만(6명), 영국(4명), 네덜란드(3명) 순이다. [표 1]에서 보듯, 참가자 수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올해에는 창립 이래 가장 많은 작품이 응모했다. 국적과 정체성, 연령과 무관하게 3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도예가가 지원했다. 평균연령은 43.7세로 중견 이상 작가들이 대거 응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66개국에서 827 명(1216점)이 응모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노르웨이 출신인 Torbjørn Kvasbø IAC 전 회장, Kaneko Kenji 일본 이바라키현도자미술관 관장, Liou Chen-chou 국립대만예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명예 교수, Ava Hsueh 국립타이난예술대학 예술창작이론 박사 과정 명예교수, 도예가 Deng Hui-fen, Susan Beiner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허베르거 디자인미술연구소 교수, 임미선 2024경기도자비엔날레 예술감독 등 7명의 심사위원을 구성, 1차 온라인 심사(2023.10)와 2차 실물심사(2024.4 월말)를 진행했다. 치열한 토론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 된 74개(대상 1, 금상 1, 은상 1, 동상 1, 특별상 9, 심사위원상 7, 입선 54)의 작품은 잉거도자박물관에서 2024.10.4.- 2025.4.6.까지 전시된다. 준비기간까지 포함하면 전시 기간이 1년이 훌쩍 넘는다. 주최측이 행사에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주요 트렌드 및 키워드를 통한 작품분석
이번 비엔날레는 대중과 소통하는 공간 역할뿐 아니라, 도자 예술의 풍부한 창의성과 비전을 잘 보여주는 국제 비엔날레로 평가받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매체의 특수성을 살린 기술 력, 소재 적용 능력, 제작 능력, 그리고 작품의 독창성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그릇, 자기점토 특유의 얇고 섬세한 측면을 강조한 형태, 유기적인 곡선의 작품 등 매체 특성을 살린 작품들이 조각에서 설치까지 폭넓게 선정됐다. 또한 자연, 환경, 물질성 등 현대사회의 문화·사회적 이슈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선정됐다.
수상작 중 백색 자기토를 사용한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기질 점토의 특성을 잘 살린 얇은 판 모양의 유기적인 곡선과 날카로운 형태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자기질 점토로 형태를 제작한 후 유약을 바르지 않고 연마해 특유의 백색도를 높인 작품, 마치 부드러운 천과 같은 표현으로 극도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작품 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많아졌다. 이런 흐름은 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 진흥원)에서 진행해 온 역대 공예트랜드페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현대 도예가들이 자기질 점토를 선호하고 조형적 언어로 구사하는 트렌드가 주류처럼 인식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또 다른 특징은 해양생물을 포함한 동물, 자연, 그리고 인간 형상을 한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대상작과 은상작 역시 자연을 매개로 스토리텔링한 작품이다. 특히 응모작품 약 1,200여 개 중 90여 개는 인간 형상을, 40여 개는 동물 형상을 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 가운데 입상작을 중심으로 몇 가지 공통된 주제로 나눠서 살펴보자.
(1) 자연과의 공생을 주제로 다룬 작품
이 작품군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에 대한 통찰을 풀어낸다. 인간의 위치는 어디에 있으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Melis Buyruk 「Bearded Dragon’s Habitat」 120×10×120cm | 자기토, 나무틀
특별상을 수상한 Melis Buyruk(터키) 작가의 「Bearded Dragon’s Habitat」는 자기토를 최대한 얇게 또는 가늘게 늘려서 제작된 작품이다. 꽃잎 모양으로 얇게 빚어 겹겹이 쌓은 봉오리 형상, 백사장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은 작고 둥근 알갱이들, 고슴도치 털처럼 짧고 얇은 선들이 한데 뭉쳐져 가로 120cm, 세로 120cm 정사각형 틀 속에 빼곡히 놓여 있다. 그 속에 마치 숨바꼭질 하듯 숨은 한 마리 흰 수염 도마뱀 형상. 작가는 식물과 동물 조각이 마치 인간의 신체 부위와 결합된 듯한 생물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무한 루프 되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이다. 생명 흐름의 엔트로피가 긍정 에너지로 수용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Cho Wei(대만)는 자연 속 파도의 움직임을 작품에 담아냈다. 파도가 바람에 출렁이듯 5개의 형상 각각이 개별로 움직이면서 눈앞에 자연을 마주한 것 같은 인상 을 준다. 이 작품은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으로도 제작됐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해양 쓰레기나 미세플라스틱, 수온 상승과 같은 현상 없이 평온했던 먼 과거 자연의 소리를 목도 했다. 다만, 영상도 함께 전시됐더라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Michael Rice(아일랜드) 작가는 자연의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산호 화석 이름인 「Axosmilia」를 작품명으로 차용했다. 석기질 점토와 페이퍼 클레이를 사용해 완성도 높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해변 기슭 풍경, 비행기 창문 너머 공중 풍경 같은 유사 코드는 자연 곳곳에 숨어서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작가만의 이런 배열에 대한 시도는 인공이 완전히 배제된 정제된 자연을 보여준다. 작은 블록들이 끝없이 증식한다.
(2) 인물과 동물에 대한 표현
인물이나 동물 형상을 한 작품이 가장 많았다. 단순한 이야기부터 깊이 있는 내용까지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다뤄졌다. (그림 4)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Lee Shin-Chih(말레이시아) 작가의 작품이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파괴되는 지구 (mother nature),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공지능을 가진 수호자 소녀가 숱한 생명을 보호하고 지구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그림 4) Lin Shin-Chih 「True Colors No.2」 54×52×72cm | 석기토
Helmie Brugman(네덜란드)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르네상스의 거대한 힘을 어린아이에게만 국한시켰다. 축소된 아이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 속에서 ‘이상적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전달하려 한다. 꽁꽁 묶인 몸뚱이, 파편화된 다리는 힘과 권력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작가는 존재의 이상화와 유연성에 대한 의문을 허공에다 대고 쏟아 내고 있다.
Helmie Brugman 「David ⅩⅣ」 40×35×135cm | 석기질 점토, 텍스타일, 목재, 나무고정틀
(그림 6)은 하이힐 모양과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코뿔소의 이미지를 결합한 요정신발이다. Lee Shin-hwa(말레이시아) 작가에게 밝은 색상은 좋았던 순간의 반영이다. 작품에 녹아 있는 신화 속 동물은 현실과 융합된 인공물을 창조하는 생명체를 결핍의 전달체로 활용하고 있다.
(그림 6) Lee Shin-hwa 「Fairy Shoes」 43×19×38cm |
반투명 자기토, 금형압착, 상회/하회용 유약
Zhao Lin(중국) 작가는 진화 과정에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달해 다른 종의 진화 종결자 역할을 하는 인간을 표현했다. 침팬지와 인간은 약 98%의 놀라운 유전적 유사성을 공유한다. 또한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는 생물학적 본성에 기인한 것이다. 작가가 접근하려는 종착지는 인간과 자연계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인간 본성의 본질이다.
(3)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유선형 작품
유선형 작품들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특히 눈에 띈다. 자기질 점토의 차갑고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인다.
네덜란드 출신 Paula Bastiaansen 작가의 작품은 날렵한 움직임이 돋보인다. 날카로운 선의 유려한 움직임은 매서운 바람의 소용돌이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균형미이고, 균형잡기에서 자기질 점토의 특성이 한껏 드러난다. Kino Satoshi(일본)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감을 담아 냈다. 물레기법과 백자토를 사용하여 제작하는데, 번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작품의 일부처럼 보인다. 가마 속에서 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품 하부에 작품과 동일한 두께의 벽을 쌓아 형태를 지지했고, 번조가 끝난 후 작가는 지지했던 벽을 망치로 조심스럽게 부쉈다. 이런 과정 끝에 추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이질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