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8. ~25. 2. 2. 유리섬박물관
물질에서 유출한 동시대 미술의
사물성과 시각언어의 다채로움
예술가의 정신이 형태가 되려면 물질la mariere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정신이 결여된 물질은 단지 자연의 질료에 불과하다. 물질은 고유의 형상, 색채, 질감, 밀도, 결을 가지고 있다. 물질이 예술의 언어가 되려면 예술가의 정신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예술가의 활동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활동은 물질에 자의적인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안에 이미 있는 형태의 생을 보고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오감으로 감각 불가능한 추상을 물질로 구체적인 형태, 현상으로 소명하는 과정이 작업이다. 발상의 단계에서 작가의 상상은 중력, 열, 빛, 전기의 양태와 변화를 지배하는 물리와 관계없이 전개되기 마련이라 객관적 현실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의 정신과 물질을 일치하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이해, 연구와 기술의 궁리가 필요하다. 아이디어 스케치, 드로잉, 모델링, 재료 탐색과 실험, 기술개발 등이 정신과 물질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탐지하는 과정이다.
작가가 물질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물질이 작가의 사고를 변화시키고 영감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혀 가공하지 않은 물질 혹은 어떤 특수한 처리로 물질이 변화하는 효과가 창작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인위적인 수단과 제조법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물질은 고유의 색채와 결 그리고 시각적 촉각성, 빛의 반응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은 창작보다 발견과 의미 부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현의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물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같은 형상이라도 물성, 이미지가 다르면 다른 의미로 읽는다. 다양한 재료, 매체가 현대미술의 물질이 되고 수용되는 만큼 재료나 수법으로 순수미술과 공예의 범주를 나눌 수도, 필요도 없다.
대부도 유리섬박물관이 기획한 《현대미술– 오브제》전은 도자, 유리, 자개를 시도하는 6 명의 작가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 모아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물성의 세계와 시각 언어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광물계 혹은 생태계에 각자 태생의 근과 물성이 다른 재료들을 각자의 수단으로 가공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도자, 유리, 자개, 캔버스 위 아크릴릭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지만 6명 작가들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성과 빛이라는 시각적 효과, 비물질적 요소를 공유한다.
빛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재료에 따라 좌지 우지된다. 부드럽고 매끈한 표면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리듯 미끄러지기도 하고 입도가 거칠고 굴곡진 표면에서 빛이 꺾이고 스며들고 사라지기도 한다. 재료의 투명도(빛 투과율)에 따라 빛을 많이 혹은 조금 관통 하고 반사하기도 하여 다채로운 광택의 스펙트럼과 시각효과가 생성된다. 같은 재료라도 재료의 기법, 변형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 여기에 작가의 시도가 더해져 서로 뒤섞이고 의도치 않게 충돌하는 물질의 변성, 시각 언어화를 보는 것은 이 전시의 중요한 의의이자 목적이다.
강형자는 도자로 판타지 소설 속 동화에서 출연할 법한 인체, 동물 등이 등장하는 우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왔다. 네버랜드에서 아이의 상태로 영원히 머물 피터팬처럼 강형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의 페르소나들에게 환상적 감정, 상상이 충만하게 넘쳐흐르는 유아기적 세계를 투영한다. 작가의 우화는 미성숙이 충만한 세계다. 문명화되고 성숙한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때로 유치하기도 한 ‘페르 디두르케Ferdydurke’1)적 세계와 닮아있다. 보기와 달리 합리적이지도 않고 충동적이며 때로 위선적이고 모순적이기까지 한 내면의 어린아이는 어른의 퇴행regression일까? 아니면 실존적 자아의 마주함일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이, 동식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화려한 색채로 묘사했던 전작과 달리 몸의 구체성을 생략하고 청색 기조 모노톤으로 채색한 캐릭터로 표현의 변화를 주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에 적응하고 성숙하며 어쩔 수 없이 발달 시켜온 어른들의 방어기제, 그 속에 웅크린 무의식 속 작은 어린아이를 재현하기 위해 이리저리 재료, 형태, 색, 질감, 크기를 바꾸어 서사와 이미지를 구체화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다.
강형자 「조우」 30×23×183cm | 석기질 태토, 백동, 사각 쇠파이프 | 2022
강희경의 유리 회화 「자연에 살다 Live in Nature」는 폐유리 혹은 지인들을 통해 얻은 판유리에 그린 회화 시도다. 판유리를 통과한 빛이 벽에 드리울 그림자 환영을 유도 하기 위해 만든 거치대 혹은 액자 프레임 역시 폐가구 등에서 얻은 목재를 활용한다. 재료만 보면 전 세계 기후 위기와 팬데믹 등 환경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생태학적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구현하는 생태 미술Eco Art 차원으로 오인할 만하다. 그러나 강희경의 유리 회화는 재활용으로 환경보호 메시지를 제시하고 촉구하는 예술운동의 차원이기보다, 작가가 동경하는 자연 친화적 삶에 대한 관조의 기록 혹은 자기 고백적인 일기에 더 가깝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뒤덮인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가까이 살며 동식물과의 공생이 주 는 삶의 평온과 위로, 안정을 추구하는 자의 일상의 기록이 다. 새것보다는 외면받고 버려진 재료, 희뿌연 해지고 상처 난 폐유리를 고르는 마음은 작가가 마을 사람들, 식물,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의 공생하는 삶을 위해 한 인간이 행하는 예술적 행위가 소모적이거나 가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찾은 재료,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적 행위가 폐유리에 그린 강희경의 회화다.
강희경 「자연에 살다」 35×25cm | 유리에 그림, 퓨징 | 2024
사진. 유리섬박물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