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장이들이 모여 흙 가지고 노는 곳
창아트 옹기점 정희창 작가
글. 박진영 객원에디터 사진. 이은 스튜디오
지금은 옹기하면 장을 보관하는 독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스틸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일상에서 가장 널리 쓰인 기器였다. 각종 음식은 물론이고 옷 같은 생활용품과 분뇨까지 담았고 굴뚝과 기와로도만들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과 잿물로 만든 옹기는 서민들이 부담 없이 요리조리 쓸 수 있는 일상 필수품이었다. 옹기가 예전의 자리를 되찾기는 힘들겠지만 지금의 생활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히도록 궁리하고 애쓰는 정희창 옹기작가를 만났다.
정희창 작가의 작업실은 전라남도 장성에, 지금은 문을 닫은 학교의 건물 한 동에 자리하고 있다. 키 높은 풀과 코스모스로 뒤덮인 옛 운동장 한쪽에 크고 작은 옹기들이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먼저 작업실 탐방. 정희창 작가와 제자들이 물레 차는 자리와 흙을 토련하는 방을 지나 시유하기 전에 건조하고 조각 등의 작업을 하는 방, 큰 가마가 있는 바깥 공간, 그고 나무 작업과 금속 작업을 하는 방을 차례로 건너면 건물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입구로 돌아온다. 도자는 물론 나무와 금속 작업까지 모두 할 수 있는 멀티 작업장이다. 잠시 거쳐가려다가 이곳에 자리잡은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그 전에는 광주에서 옹기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미대 다닐 때 도자기를 배우고 7년을 하다가 우연히 오향종 선생님 옹기 작업장에 놀러갔는데 그곳에서 신세계를 본 거죠. 선생님이 옹 기 만드시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3일을 못 잤어요. 그 기술을 배워 내 작업에 응용해 보자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옹기를 만들다 보니 투박한 모습에 가려진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청자, 백자 보다 더 세련된 선이 보였어요. 그래서 좀더 해보자 한 것이 지금까지 20년 넘게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장에는 작가를 포함해서 7명이 작업한다. 작가의 후배와 제자들인데 한 작업장에서 삼십대 남짓의 젊은 작가 여러 명이 옹기를 만드는 모습은 보기 드물고, 그런 만큼 귀하다. “젊은 사람들이 옹기 만들려고 자리잡은 곳이 거의 없어요. 옹기는 지금까지 장인들이 만들어 왔어요. 백자나 청자처럼 대학에서 연구하고 교육한 경우가 거의 없었죠. 그러다 보니 다른 도자 분야는 장인들과 대학 전공자가 같이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발전하는데 옹기는 그러지를 못했어요. 평생을 옹기만 만들어온 분들은 기술은 뛰어나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젊은 사람들은 다르지요. 그러니 우리 같은 작업장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옹기가 더 많이 쓰여야 하는데…” 친환경적인 재료로 만들고 표면에 미세한 기공이 있어 숨쉬는 옹기의 우수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런데 백자나 분청 그릇에 비해 많이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옹기가 투박하고 무겁고 색이 어두워서 음식을 담아도 돋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조선시대에 만든 옹기를 보면 얇고 가벼웠어요. 옹기가 투박하고 무거워진 것은 제 생각에 6.25 전쟁 이후인 것 같아요. 그 시절에는 옹기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고 옹기를 만드는 대장이 개수대로 돈을 받았으니까 한정된 시간에 많이 만들려고 기벽을 두껍게 만든 것 같아요. 똑같은 크기로 기벽을 얇게 만들면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힘들거든요. 그리고 옹기에 음식을 담으면 백자 못지 않게, 아니 더 맛있어 보입니다.”
옹기로 만든 화로와 조명, 욕조
지금은 아무래도 옹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이나 술 담그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교류하는데 이 분야 외에도 옹기가 다양하게 쓰이도록 새로운 용도를 계속 개발하고 제안한다. 정희창 작가와 제자들이 요즘 집중하는 작업은 목포의 한 음식점에서 사용될 식기와 집기 제작이다. 작은 물컵, 접시부터 고기 굽는 화로와 스툴, 야외용 조명까지 다 옹기로 제작하고 있다. 그 중에서 1미터가 넘는 야외 조명이 특이하다. 예전에 비바람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옹기로 만든 굴뚝을 사용하는데 이제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굴뚝’에 작은 구멍 여러 개를 뚫어 빛이 새어 나오는 조명으로 만든 것이다.
정희창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물레를 차며 연가를 만드는데 높은 기벽이 순식간에 착착 올라간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옹기를 만들 때 흙을 가래떡처럼 빚어 쌓아올리는데 전라남도에서는 긴 직사각판 모양으로 쌓아올린다. 이런 기법을 ‘쳇바퀴 타래미’ 기법(판장 기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판으로 기벽을 쌓아올리면 큰 기물을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전라남도에서만 유일하게 판장 기법을 사용합니다. 그 연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보통 흙과 땔감을 그 원인으로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영산강 유역에서 판장 기법을 사용했어요. 90년대에 나주에서 발견된 고분에서 대형 옹관(옹기로 만든 관)이 발견됐는데 2미 터가 넘는 것도 있어요. 판장 기법으로 만든 거에요.” 얼마 전에는 옹기로 욕조를 만들었다. 옛날에도 드물기는해도 옹기로 목욕통을 만들었는데 요즘의 미감과 쓰임새에 맞게 성인 한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야외 욕조를 만든 것이다. “보통 FRP나 아크릴로 만든 욕조는 따뜻 한 물을 담아도 몸이 닿으면 차가운데 옹기 욕조는 뜨뜻 하고 좋아요. 원적외선도 방출하고 야외에서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