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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월호 | 작가 리뷰 ]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전
  • 편집부
  • 등록 2020-11-05 12:09:03
  • 수정 2020-11-11 09: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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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마음을 보듬다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전
글. 정다인
동다헌 2대

아주 먼 옛날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비와 번개의 이야기를 토기에 그려넣었다. 비는 은혜로움이요, 번개는 두려움이니 아무 곳에나 이를 그려 넣지 못하고 다만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릇이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였다. 그릇 이전의 생이란 두 손 가득 쥔 열매와 고기라도 눈 한 번 깜 빡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릇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생존이 삶이 되고, 인생의 길이와 넓이가 모두 늘어나고 깊어졌다. 사람들은 신의 비밀이 담긴 이 발명품을 빚어내는 자들을 두려워 했다. 그들은 신의 비밀을 엿듣고 땅 위에 이를 구현하는 신비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이 그려 넣는 비와 번개무늬는 단순히 하늘을 향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바라는 인간의 바램을 넘어 신 그 자체를 의미했다. 하늘 신과 지옥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토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넘쳐흘렀을 것이다.
바야흐로 도예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무엇으로 그릇 만드는 일을 예藝라 할 수 있을까. 상징은 희미해지고, 관례는 여전한데, 기술은 멈춰 있다. 대동소이한 작업의 연속 속에서 예술로 빛나게 하는 생각과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보듬이’는 이러한 고민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평강平江 정동주 선생이 보듬이를 창안했을 적, 물레를 돌려본 적 없던 이 미학자의 생 각을 현실로 다듬어 줄 용기 있는 작가가 필요했다. 보듬이는 우송 김대희와 연파 신현철의 손에서 시작했지만 그에게는 전통과 유려함 모두를 아우르는 것 너머의 작업도 필요했다. 젊은 작가 수천手天 심재용의 십 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심재용의 작업은 그릇의 기원와 오늘 사이를 연결하는 일이다. ‘손빚음’이란 세상에 없던 단어다. 보듬이라는 말과 뜻이 세상에 없던 것에서 출발하듯, 정동주 선생은 심재용에게 손빚음이라는 새롭고 고유한 말과 뜻을 선물했다. 먼 옛날의 작업에서 오늘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시작은 모두 ‘손手’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다만 물레와 기계의 힘을 빌리는 과정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기꺼이 돌아가려는 태도에는 옛 그릇에 원시적인 힘과 고유의 미감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일그러진 파형破形의 맛을 넘어서는 굴곡지고 예측 불가능한 일렁임이 있다. 핀칭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녹아드는 추상의 그림자가 스며있다. 최소한의 유약으로 번들거림이 없고, 안료를 쓰지 않고 흙 만으로 만들어내는 색채에는 원시성과 현대성 사이에서 비비적대는 유희가 있다. 상징은 도드라지고 이야기는 구체적이다. 그는 일상을 담는다. 오늘 우리 사회를 떠도는 항간의 이슈도 있지만 저 먼 옛날 비와 번개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오늘날 아무 것도 아닌 자연현상이 되어버린 시대의 무미건조하고 우울한 여름의 ‘풍경天’도 있다. 모든 부분에서 옛 것이고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다. 굽의 역사를 벗어던진 보듬이는 우리나라의 온전히 새로운 현대미술 이다. 또한 전형, 전통, 답습에 길들여진 찻 그릇 사이에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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