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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6월호 | 전시리뷰 ]

이기석 도예인생 40년 회고전 5. 1 ~ 5. 7
  • 편집부
  • 등록 2003-03-18 18:02:25
  • 수정 2018-02-14 1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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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석 도예인생 40년 회고전 5. 1 ~ 5. 7 서울 동덕아트갤러리 /

5. 11 ~ 5. 17부산국제신문사 전시실

법고창신(法古創新), 현대 불교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한…

글/최태만 미술평론가, 서울산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배움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필자가 외람되이 능파(能波) 이기석(李起碩) 교수의 작품에 대해 품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인연의 도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불교에서는 결과를 낳은 직접원인을 인(因,hetu)이라 하고, 주변에서 그것을 가능하도록 돕는 것을 연(緣,pratyaya)이라고 하니, 인연이란 원인과 조건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남도 인연이요,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도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연기(人生緣起)야말로 모든 사물에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의 이론적 근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한 직장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인연이요, 필자가 미술비평이란 일에 종사하다보니 그의 작품을 비평할 수 있게 되어 이 또한 큰 인연임에 분명하다. 불경에 이르기를 “인과 연을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나(佛性)를 보리라"고 했으므로 인연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역사는 물론 보다 고차원적인 불이(不二), 중도(中道)의 철학과 진리를 함축한 개념인 것이다. 이기석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지난 2000년 5월에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인연이었고, 연령이나 지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앎에의 정진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필자를 감동시킨 것도 인연의 도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과 연이 켜켜이 쌓여 이제 그의 예술세계 40년의 한 매듭을 묶는 작품을 친견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연의 한 과정이자 결과이다. 지난 회고전의 도록에 수록한 글을 쓰면서 그가 1995년에 수원의 효원공원에 설치한 <심청전>을 보고 애초에 회화를 전공했던 그의 색채감각, 공간구성, 서술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조형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팔상도(八相圖)>와 <심우도(尋牛圖)>를 보니 독실한 신자로서 그의 신앙이 작용한 때문인지 그 조형의 탁월함의 경지가 보다 성숙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 불교미술에 필요한 도상(圖像)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인즉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교미술은 주로 스님이나 장인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만큼 현대미술과는 무관한 종교예술로만 취급되었고 더러 불교에 관심을 가진 몇몇 작가들이 시도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처지였다. 이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교사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도자벽화를 제작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불자(佛者)로서의 소명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겠으나 한편으로 서구미술의 수용만을 현대미술의 유일한 방향인 양 호도해온 우리나라 미술의 흐름에 대한 반성의 결과임에 분명하다.

 <팔상도>와 <심우도>를 보면 원근법적 공간표현, 인물의 명암처리에 있어서 서구적인 방법을 수용하고 있으나 인물, 의습(衣褶), 산천경물(山川景物)의 표현 등은 전통회화의 그것을 보다 단순하게 처리하여 현대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故創新)의 정신에 바탕을 두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여유를 잃지 않은 작가 특유의개방성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팔상도>란 현세에 태어나가 위해 도솔천을 떠나 흰 코끼리를 타고 가필라국으로 향하고 있는 풍경을 묘사한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설법한 후 ‘제행무상 불방일정진(諸行無常 不放逸精進)´을 당부하고 열반에 드는 장면을 그린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이르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일컫는데 신비로우면서 존엄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경전에서 전하고 잇는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면서도 공간이 옹색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로 비유하여 10개의 장면으로 그린 선화(禪畵)인 <심우도>는 사찰의 법당 벽화를 통해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작가는 재료의 내구성이 높고 발색의 효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장엄(莊嚴)에 어울리는 도자벽화로 작품의 완성도를 격상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종교회화로서 갖추어야 할 내용에 충실하되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신앙심만으로도 이룩할 수 없거니와 그가 40여 년 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예술세계가 맺은 결실이요, 늘 연구하는 자세로 재료와 기법의 개발은 물론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헌신해온 결과이니 작가에게는 보람을, 보는 사람에게는 예술의 깊은 경지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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