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산수문접시」 높이 3.3cm(구경 29.0cm),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홍근 기증, 동원21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청화소상팔경문팔각연적白磁靑畵瀟湘八景文八角硯滴」(보물 제1329호)은 1936년에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주최한 고故 모리 고이치森悟一 소장품 경매 약 200점에 포함되어 있던 작품이다. 모리 고이치는 저축은행(제일은행 전신) 행장이었던 사람으로, 그의 소장품 중에는 뛰어난 백자가 많았는데 간송 전형필이 당시 기와집 20채 값을 주고 구매했다는 일화로 더 유명한 「백자청화철채동채국화문병」(국보 294호)이 대표적이다. 당시 손꼽히는 고미술 수장가였던 모리 고이치는 생전에는 이를 한 번도 팔거나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조선백자에 대한 감식안이 높았다고 전해져 경매에 출품된 백자의 수준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백자청화팔각연적」은 높이가 12.6cm에 달하는 대형 연적으로, 각이 진 측면에 시문된 마치 8폭 병풍과 같은 형태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장식돼있으며 수구水口가 부착된 면에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동정추월洞庭秋月– 장한강동거張翰江東去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양자강 중류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일대의 여덟 경치를 일컫는 것인데, 팔경 중 연적에 써진 것은 ‘동정호의 가을 달洞庭秋月’ 뿐이며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묻다松下問童子’와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다張翰江東去’는 고사故事에 해당한다. 두 고사는 모두 당대唐代의 한시漢詩인데 전자는 가도賈島(779-843)의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尋隱者不遇’이며 후자는 이백李白(701-762)의 ‘강동으로 떠나는 장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에 포함된 구절이다.
특히 소상팔경 중 ‘동정추월洞庭秋月’과 이백의 시 ‘강동으로 떠나는 장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의 내용은 오사카동양도자박물관에 소장된 다른 사각연적에도 시문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조선 후기에 반복적으로 장식된 가을 저녁의 호숫가 혹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돛단배와 달이 그려진 산수문이 은자隱者와 관련된 당시唐詩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장한의 고사는 조선 후기 문집에서 관련된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가을을 배경으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한의 모습은 소상팔경에 관한 한시의 수용 과정에서 원포귀범 등과 결합하여 하나의 관용어구로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가을 저녁 달과 떠 가는 돛단배
가을-저녁-물가-돛단배-달 장면의 대표격으로 널리 사랑받은 동정호의 가을 달洞庭秋月장면은 조선전기부터 그려졌지만,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는 소상팔경도의 범본範本을 구축한 화가는 조선시대 소상팔경도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겸재 정선謙齋鄭敾(1676-1759)이라고 할 수 있다.3) 겸재의 소상팔경에서 동정추월洞庭秋月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우측 하단에 치우친 악양루岳陽樓와 중경의 여백을 차지한 동정호 위의 배, 좌측 상단에 원경의 산 및 그 위에 떠 있는 달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도상은 『당시화보唐詩畵報』 등에 수록된 산수인물도나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의 악양루도岳陽樓圖 등 당시 수입된 중국화보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4) 겸재의 그림은 이후 현재 심사정玄齋沈師正(1707-1769)이나 긍재 김득신兢齋金得臣(1754-1822)의 소상팔경도 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겸재 이후 소상팔경도는 다양한 주제와 함께 결합되어 그려졌는데, 주제를 단독으로 그리지 않고 두 개의 주제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전통은 조선 후기 이전에도 있었으며 당시에 관련된 시의도詩意圖의 유행과 맞물려 더욱 많이 제작되었다.5) 소상팔경도와 함께, 혹은 소상팔경 속에 옛 고사 이야기가 담긴 시의도를 그려 넣은 작품은 민화 소상팔경도 병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김세종 소장 「소상팔경도 8폭 병풍」에는 당시 널리 알려진 당시의 내용과 소상팔경의 일부가 섞여있는데, 낙일청산落日靑山– 한사모종寒寺暮鐘– 평사낙안平沙落雁– 남양초당南陽草堂–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원포귀범遠浦敀帆 – 소상야우瀟湘夜雨– 향행화촌向杏花村이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소상팔경도에 포함시키는 한사모종을 고려하면 소상팔경도 4폭과 시의도 4폭이 병렬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이 소상팔경도를 그린 화가는 글자를 잘 모르는지 원포귀범에서 귀歸 대신 박敀 자를 적었는데, 이는 다른 민화 소상팔경도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소상팔경도 10폭 병풍에는 앞의 병풍과 동일하게 당시唐詩 중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와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이 화제畵題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백의 다른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구절인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긴 강이 걸려있구나遙看瀑布掛長川’를 묘사한 장면에 ‘긴 강長川’ 대신 ‘긴 하늘長天’로 잘못 적고 있다. 글자도 모르는 화가가 당시의 이야기를 알고 그림으로 표현까지 한 부분에서 조선 후기 당시의 내용이 얼마나 널리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산수山水에 담긴 은자隱者를 읊다 민화 소상팔경도에 그려진 당시唐詩 속 옛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낙일청산落日靑山은 이백李白의 시 ‘친구를 보내며送友人’에 나오는 구절로 지는 해落日를 청산靑山으로 떠나보내는 옛 벗의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6) 남양초당南陽草堂은 제갈량의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삼국지연의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장면에서 흔히 등장하는데, 동자에게 집안에 주인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는 앞서 언급했던 가도賈島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자연과 벗하며 산속에서 은일隱逸하는 신선과 같은 삶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향행화촌向杏花村은 두목杜牧(803-852)의 시 ‘청명淸明’에서 따온 구절로 살구꽃 핀 마을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행화촌杏花村, 즉 주막이자 술집 찾는 나그네의 풍류를 떠올리게 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