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작가가 고안한 도자 가구들.그의 스튜디오에는 도자의 쓰임을확장하는 시도로 가득하다.
-1700년대 낡은 철제 케이스를 열어보니 내벽이 온통 도자다. 1914년 미국의
치과 의자는 도자기를 만나 의미심장한 오브제로 변모하고 카레를 담아먹던
접시, 뭉툭한 치즈도마는 도자만을 위한 액자가 된다. 작가 신상호에게 수집되어
해체된 후, 다시 조립된 오브제들은 도자와 융합하여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
한다.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은 ‘수집’에 대한 집착으로 번져간다. 늘 앞선 시각을
제시해야 하는 예술가 특유의 강박과 불안은 오히려 옛것을 끌어모음으로써 작가
자신이 손 뻗지 못한 미지의 어떤 곳에 다다른다. 그것은 3~4백 년 전의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며 국경을 넘나들고,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에서 작가를 유혹한다.
새로움의 바탕, 수집
들판에 한가하게 누워 영감과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공허한 사유의 시대는 끝났다. 아날로그의 종말과 디지털의 대두로 인류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날카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빠른 흐름 속에서 예술가는 늘 현실에 부딪혀야만 한다. 그때 발생하는 스파크, 영감이 되고 가능성이 되는 그 실마리를 찾아 신상호 작가는 늘 부지런하다. 그는 아직도 주말이면 새벽 4시에 출발해 낡은 트럭을 몰고 청계천 풍물시장을 찾는다. 수집이란 ‘삶’이라 명료하게 대답하는 그는 작품이 될 물건들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는 가상의 목적을 잡고 수집에 들어간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길게는 5~6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원하는 물건들이 간단하게 모아지지는 않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 ‘저걸 가져다 이렇게 바꿀까 저렇게 바꿀까?’하면 벌써 반은 만들어져있는 셈이니 이 또한 수집의 매력이다. 작가가 도자와 다양한 수집품들을 융합하는 것에는 나름의 사명이 담겨있다. 도예가 미술시장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조각을 하든지 평면을 하든지, 미술 전반으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좋은 작가와 평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정신은 무조건 새로워져야만 해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미지와 생각들로 흥미와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작가들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답습은 새로움을 만들어내지 못해요.”
생존의 필수조건, 변화
대학교 2학년, 그는 도자로 벌어먹고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때의 그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지금의 작가 신상호가 있다. 전쟁 후 열악한 환경에서 도예라는 전공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통의 중요성에 깊이 빠진 적도 있고, 또 무조건적인 전통의 답습을 부정하기도 했다. 항상 폐과 1순위에 도예과가 꼽히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언젠가는 도예가 미술계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으로 도예계를 견예하고 있다.
약 10년 주기로 변화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전통도자와 도자조형, 원시미술, 건축, 그리고 설치미술까지 다방면을 아우른다. 작가는 최근에 단색화로서의 도예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혹자는 단색화에 대한 모방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이를 도전이라 생각한다. 흙이라는 매체도 이런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비교를 할 수 있으니 이제 비교우위가 생겨날 것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회화보다 공간 안팎을 넘나드는 도예의 강점이 도드라진다. 백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색을 간직하는 도자들은 충분히 아름답다. 또 타일 고유의 성격에서 벗어나 탈부착을 용이하게 하면서 활용에 대한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다양한 도판들이 감싸고 있는 가구들도 이런 방대한 활용도의 측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흙이라는 매체가 갖는 불가침의 영역을 찾아내 살리고 발전시켜내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도예의 영역을 넓히는 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하듯 살았어요. 어떻게 지금 일흔이라는 나이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으려고, 완전한 치열함 속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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