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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월호 | 작가 리뷰 ]

Art is Process
  • 편집부
  • 등록 2015-09-03 17:51:56
  • 수정 2018-01-02 1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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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민 Lee Chan-Min

Art is Process

이찬민 Lee Cha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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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운 한국도자재단 큐레이터

 

작가에게 작품은 자신을 투영하는 매개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은 사회적인 현상과 정치적인 이슈,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역사를 서사하곤 한다. 더불어 작가 고유의 특징이 드러나는 개인적 양식은 그의 내면의 역사와 가치관을 비춘다. 그런데, 예술이 그것의 창조자와 분리되어 이해되거나 감상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유명한 예술작품은 알아도 그것을 만든 작가의 인생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거기에서 예술의 이해는 즉각적인 감각이 도맡아 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현상은 유행처럼 번져나가게 되었고, 그것이 인간에게 좀 더 많은 예술을 향유할 자격을 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끈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해야만 하는 점은 하나의 작품에는 이 시대를 담는 역사와 함께 그것을 창조한 자, ,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도 저자를 배제한 책이란 있을 수 없다.

 

 

01 작가인물사진

02 예술은 과정이다도자, 5×25×35cm,2015

 

나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과

 

전시장이찬민 <불완전완전>2015. 7. 1~ 7.31이천세계도자센터 전면에 새겨진 이 문장은 전시가 말하는 바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이 짤막한 문장이 가진 힘은 거대하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이 오래된 관념은 여전히 예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 작가는 아주 용감하게 말한다. “예술이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고백의 기록들이다.” _ 이찬민라고 말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개인에게 예술이란 그러한 것이다. 예술은 종종 켜켜이 쌓인 외부의 가치판단으로 인하여 왜곡되고, 사람들은 예술의 실체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단정 짓곤 한다. 허나 근원은 언제나 내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를 자신의 작품의 주체이게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작가의 글과 함께 전시된 깨진 두상조형은 마치 이 전시의 예고편과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처음으로 흙과 드로잉을 접목하여 제작한 프로토타입의 작업으로 그의 전시를 채운 작품 스타일을 예고해 줌과 동시에, 자신의 작업과 전시의 시작을 알려주는 일종의 복선으로 기능한다. 이 프로토 작업 외에도 그의 작품은 대부분 드로잉과 그 드로잉을 기반으로 만든 형상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그의 작업이 결과물로써가 아니라 과정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드로잉으로부터

에필로그를 지나 전시관에 들어서면 정갈히 배치된 드로잉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가는 흙을 접하기 이전부터 드로잉을 해왔고, 그 수많은 드로잉 작품 중 2013년도에 제작한 에스키스 드로잉 몇 점과 최근의 작업을 전시하였다. 그는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감정을 담백하게 담은 작품만을 골라 전시하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관람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감정이 온전히 순수하지 않다면 보는 사람 또한 순수한 감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03 애환, drawing on the paper, 29.7×21.0cm, 2013

04 갈망drawing on the paper, 29.7×21.0cm, 2013

 

도캐비 - ‘도쾌비道快碑 : 진리를 탐구하고 즐기는 비석

전시관 내부 중앙 홀은 도캐비 연작(자화상)과 특정대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에게 도캐비는 도깨비를 경상남도 방언으로 발음한 도캐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쾌비道快碑 : 진리를 탐구하고 즐기는 비석라는 개인적인 의미의 자화상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도깨비는 착한 이에게는 상을, 악한 이에게는 짓궂은 장난을 하여 권선징악을 실천하는 윤리적 존재였다. 이렇듯 민간에게 친근하고도 해학적인 존재인 도깨비의 이미지를 차용한 그의 작업은 이 시대의 빠른 문명발달과 더불어 침잠하고 있는 윤리의식을 촉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 도캐비道快碑연작은 현재의 사회에 속하고, 그 사회를 지켜보는 작가의 자화상이자, 현 시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고의 자화상인 것이다.

 

 

도캐비道快碑 연작

05 비탄도자, 1200, 산화소성, 45×45×90cm, 2014

06 환희도자,1200, 산화소성, 45×45×90cm, 2014

07 애환도자, 1250, 산화소성, 40×40×85cm, 2013

08 절망도자, 1250산화소성, 60×55×100cm, 2013

 

 

도깨비를 주제로 제작한 그의 회화작품과 형상작품들은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를 상기시킨다. 이는 그가 자신의 감정을 작품의 형상적인 부분에 쏟아 부었다는 것을 예상하게 한다. 감정이 작품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던 표현주의나 낭만주의 예술의 경우 거기에 속한 대부분의 예술가가 정서적 결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작품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찬민 작가 또한 스테로이드를 끼고 살아야 할 만큼 신체적으로도 병약하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대에는 조울증 판정을 받아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되었다. 그런 그의 병증이 가라앉게 된 것은 그가 흙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 그는 형태를 정하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을 흙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거기서 작가는 형언하지 못할 해방감을 맛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옥죄던 병증을 극복해 온 그에게 작업은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속하게 해 주었던 하나의 치유과정이었던 셈이다. 거대하고, 울퉁불퉁하며, 마치 잡아먹힐 듯한 공포감을 주는 도캐비 연작은 이러한 그의 상태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그의 허무, 멜랑콜리, 죽음, 그리고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를 오랜 시간 괴롭힌 병증이 사회, 윤리적 결핍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병증이 그에게 전화회복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병증으로 인해 침잠하고 있던 내면을 흙을 통해 치유하였고, 그때부터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일종의 자발적 정서적 전이를 생활화하게 된다. ‘절망이라고 이름 붙여진 고개 숙인 인간형상의 작품은 절망을 마주한 인간의 처참한 상태를 연상케 하는데, 작품에 내포된 의미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발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절망을 통해 희망을 갈망할 기회를 가지게 됨을 오랫동안 경험해왔고, 그래서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으며, 결국에는 과거를 어느 정도 극복하여 보다 균형적인 삶을 유지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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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예술은 과정이다, 비디오, 00:05:15, 2015

 

 

2015627일 토요일 오후 2

 

우리의 삶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 불완전함의 과정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극복할 때 서서히 완전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 사고현장 설치작품

 

전시를 이틀 앞둔 2015627일 토요일 오후 2, 전시를 위해 작품을 운송하던 중 운송차량이 급작스런 사고를 당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작가가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의 절반 이상이 파손되었다. 이로 인해 전시를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120평의 전시장을 채우기에는 작품의 수량이 턱없이 부족한 사정이었다. 결국, 주최측에서는 전시를 미룰 것을 권유하였지만, 작가는 이 끔찍한 사고를 전시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사고현장을 고스란히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시장 한 귀퉁이를 채운 부셔져버린 운송차량의 범퍼와 작품들, 그리고 벽에 걸린 사고현장사진은 당시의 상황과 형상화된 불완전함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전시 오프닝 이틀 전의 순간까지 담아 120평의 공간에 담아냈다. 이 일련의 설치작품들은 일그러지고 변형되고 파괴된 미생적인 순간들을 은유할뿐더러, 그러한 불완전함을 부정하지 않고 편견 없이 수용함으로써 완전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느끼게도 해 준다.

 

함축적으로 말하자면, 이 전시는 이찬민이라는 작가의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향한 15년 동안의 첨예한 작업과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 것인지 그리고 관람객에게는 어떤 순간으로 남을지, 그리고 이 전시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이지만, 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이찬민이라는 작가가 한 땀 한 땀 써내려간 15년의 기록이 많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기를 바라는 바이다.

 

 

 

작가 이찬민은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후 박사과정 중이다. <한국 일상생활 속의 공예전>(일본 나고야 Finger Forum갤러리), <한중일 국제미술사전>(중국 Rosebud아트센터), <아시아현대도예전>(대만, 김해) 등 다양한 국내외 전시에 참여해왔으며 작품은 한국도자재단과 부산 극동방송에 소장돼 있다. 현재,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 중이며 동아대와 오륜대 한국순교자 박물관 등에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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