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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0월호 | 전시리뷰 ]

제 4회 권순익 초대전 -우화 속의 우화
  • 편집부
  • 등록 2003-07-12 15:58:22
  • 수정 2018-02-20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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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권순익 초대전 2002. 9. 11 ~ 9. 24 드림갤러리

우화(寓畵)속의 우화(寓話) 글/박정수 갤러리가이드 편집장, 예술학

 옛 어른들은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음양을 빌어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을 삶이라고 한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라고 하는 것은 음양이 서로 교차하지 않아 아직 사물이 생겨나지 않은 것을 일컫는다. 사물이 생겨나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며, 없다는 것은 있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삶에 빗대어 말하는 데 있어서는 이보다 더 치밀한 것은 없을런지도 모른다. 여기에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비견해 낼 때 역시 삶이라는 미지의 생활공간에 보다 명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해석해 봄직하다. 북한산 자락에서 그림과 도자를 통해 삶의 근간을 탐닉하는 권순익은 자신의 삶에 대한 근원 탐구와 맞물려 ‘생활’ 혹은 ‘삶’이라는 형이상학적 체계의 시원(始原)에 명쾌한 답을 던지고자 노력한다. 좀더 철학적 의미로 진지하게 돌아보면 “생활에 반영되는 것이 경제적 이유로 인해 생존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면 삶 자체가 무위허무하는 것이며, 예술이 자신만의 것으로만 존재한다면 차츰 더 생활에서 멀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이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작용한다는 것도 또 작용하지 않는 다는 것도 결국은 ‘모두’의 것이며 예술이라는 이름도 작가 자신만의 자족(自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권순익 자신에 대한 예술의 근원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여유’와 ‘돌아볼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일설을 던진다.

다른 사물에 비견시켜 교훈이나 지켜야할 덕목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인 우화(寓話)를 우화(寓畵)로 풀어내어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관람자들에게 조용한 강변을 하고 있다. 그는 전통도자의 문양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한국인의 시선에 익숙하면서 정감어린 이미지들에 ‘연년여의(年年如意)’라는 명제를 주었다. 이 말은 도자문양에서 흔히 불려지는 길상적 의미로써 부귀와 다손, 가정의 행복 등을 빌어 주는 일종의 부적과도 같이 뜻대로 되어짐을 기원하는 작가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단청 문양을 활용한 작품들에 대해 현대적인 분노나 짜증, 화남에서 잠시의 여유를 바라는 의미로서 ‘소요(逍遙)’를 주창한다. 사전적 의미로써 갖는 ‘자유롭고 한적하게 거니는 일’에서 좀더 광의적으로 해석하여 시간에 대해 여유를 가진 삶을 기원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전기와 관련해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도자와 회화와의 결합에 있다. 이름 없는 흙에서 출발해 이름이 있는 조형물로 조성해내는 것은 만물의 출발점을 결함이 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흙과 불을 통한 조형물위에 담겨지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한번 관람자의 미감을 자극한다. 분청이 가진 담담함과 소담스런 작가정신이 어우러져 색다른 감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 더욱 순수해지는 심성과 강열한 창조의 힘을 호소하는 예술가의 참 맛을 확인한다. 그려내어진 붓질의 흔적을 따르다 보면 삶에 지치고 고단한 현대인의 피안처를 느끼게 하고 한적한 걸음에서 느끼는 삶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이것은 권순익이 가진 예술관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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