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花器와 다기茶器가 30여점 전시된 전시장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장이다.(9.2~9.8 서울 인사동 갤러리 A&S, 11.19~11.29 경기도 평택 베아트센터) 장작 가마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분청자기는 자아에 대한 근대적 탐구와 만난다. 그러나 이춘택의 구도적 자아는 근대적 주체 중심주의와도 다른 현대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현대적이라 함은, 그의 많은 작품들이 형식적인 면에서 탈 중심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꼭 맞춰져야할 도기의 입구는 대부분 엇겨나 있고, 그림 같은 이미지가 새겨지기 좋은 판 성형기법으로 만들어진 도기 표면에는 명확한 형태가 아닌 흔적들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끝없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방황의 연속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삶, 또는 예술의 길을 찾아가는 작가의 암중모색이라는 내용이 형식화 된 것이다. 도기 언저리에 입체화되어 있거나 표면에 새겨져 있는 작은 새는 ‘길 없는 길’에서 길을 찾는 작가에 대한 은유이다. 작품 「자유롭게 날자」처럼 시리즈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새의 여러 가지 자세를 인생에 대한 태도와 연결 짓는다. 가령 ‘그 자리에 눌러 앉은 새’, ‘길을 찾아 떠나는 새’, ‘떠나가다 길이 막혀서 날려고 준비하는 새’ 등이 그것이다. 작품 「길 없는 길-날다 I」는 첩첩 산중에서 새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을 비유한다. 자유롭게 나는 새의 이미지에는 작가의 희망이 투사되어 있다. 엇겨진 도기 입구는 도자기 하면 언뜻 떠오르는 날렵하고 섬세한 이미지와 거리가 먼, 울퉁불퉁하고 투박한 몸체와 어울리는 형식이기도 하지만, 끝없는 길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띠가 엇겨진 모습으로 조형화된 길은, 무한 반복이라는 안전하지만 암울한 방식을 피해간다. 무한반복이란 기계적 일상이나 관념적인 원형(모델)을 염두에 둔 초월적 태도를 연상시키는 것이며, 미세한 차이와 무한을 지향하는 예술의 길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길을 찾는 여정이 사계절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작품 「봄날은 간다」시리즈는 엇겨진 입구아래 몸통에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이 또 다른 문양을 이룬다. 그것은 덧없이 흘러간 좋은 시절에 대한 형상화이다. 「여름날의 이야기」시리즈는 폭포수나 꽉 찬 입새들, 군상들이 연상되는 무늬들(압인문)이 특징이다. 봄이 흐릿한 기억이나 흔적으로 남아있다면, 여름은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압인문은 흙 판을 소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새겨진 문양 위에 흰색 화장토를 덧입히기를 반복함으로서 만들어진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09.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