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고장을 생각하면 이천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사실 도자기가 가장 대성했던, 그리고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은 단연 양구 방산이라 할 수 있다. 양구의 방산 백토는 흰 떡가루처럼 품질이 뛰어나 350여 년간 조정에 공납된 흙이었다. 또한 방산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임금이 사용하는 어용자기御用磁器를 굽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 분원’에 자기의 원료인 백토를 연간 510석(1석=144㎏·20말)씩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공납한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질 좋은 백토가 생산되고 있는 방산은 현재 이천의 90%에 달하는 도자 공방에서 백자를 빚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최대 백토 생산지이며 풍부한 원토를 가진 지역이다. 이런 방산의 흙을 테마로 하여 열린 <방산 흙으로 빚은 풍경> 전(2008.8.13~8.19)은 제5회 정두섭 개인전으로 방산의 원토를 이용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전시였다.
작가 정두섭은 강릉대 산업공예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2002,2003), 서울 현대도예 공모전 우수상(2001), 신 미술대전 최우수상(1998)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방산의 작은 폐교에 작업장을 차린 후부터 방산의 도예가로서 활동을 해왔고 2년 전 ‘방산자기 박물관’ 개관과 함께 방산 지역의 작가이자 관장으로서 박물관 운영을 맡고 있다. 사실 방산에서 작업장을 차리기 전까지는 양구 방산의 흙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정두섭은 방산자기박물관의 운영을 시작한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500여 년 동안 왕실에 공납되었던 양구 방산의 백토를 보다 깊이 연구하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방산의 원토를 채취해 거친 상태의 태토에 큰 가감없이 형태를 잡아낸 그의 작품은 1260도의 고온에서 번조되어 독특한 방산 백자의 멋을 담고 있다.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작업과정으로 원토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려냄으로써 원재료에서 발산되는 미적 표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매끄러운 백토를 생산하려면 원토의 약 80%가 소실되는 방산 백토는 마치 시멘트처럼 돌과 사질이 마구잡이로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정두섭은 거친 원토의 질감을 살리며 항아리를 제작하기 위해서 하나의 항아리를 만들어 낼 때마다 3겹의 목장갑을 껴야만 했으며, 물레작업 중 손이 다치기 십상이었기에 다시 새로운 살이 돋아날 때까지 작업을 미뤄두어야 했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기 힘든 작업을 진행하며 새롭게 시도한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열정적인 마음과 투박한 성격이 닮아 있다. 빠르게 올려진 항아리 입구의 면과 흡사 아낙네의 아랫 저고리를 연상케 하는 펑퍼짐한 도자기의 형태가 바로 그러하다. 그의 화려한 수상경력이 보여주듯 타고난 그의 조형 감각도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항아리의 밑면과 물레로 빚어낸 흔적이 보이는 항아리의 안쪽 면, 그리고 도자기 입구의 아래 부분은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또한, 마치 계곡의 물줄기나 화산의 흔적과 같이 보이는 외벽과 도드라지게 표현된 원석을 박은 흔적들은 이전의 조형 작업과 같이 의도되지 않게 빚어낸 것과 같은 우연적 효과를 낸다. 이런 요소들은 한데 모여 한편의 풍경을 보는 듯한 흥취를 자아낸다. 풍경 내의 잔잔함과 극적으로 완성된 느낌들은 작가 정두섭이 느끼는 방산의 풍경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전시 이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작가 정두섭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최근에 가진 꿈이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부부 내외가 작업실로 쓰고 있는 방산의 폐교에 있는 자신과 지인들의 도예작품 150점을 모두 모아 언젠가 자신이 직접 운영하고 디자인하게 될 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로 선보여 많은 이들이 도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한다. 이 대답은 작가 스스로의 의무감과 열정이 앞서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양구 방산 백자의 아름다움과 방산 흙의 역사성을, 또한 그것이 지닌 은은한 매력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작가는 도예가이기 이전에 사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인 동시에 한국의 도예를 사랑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학예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그에게 있어 작업은 삶과 같다. 적어도 필자가 지켜본 작가 정두섭의 모습은 도예가의 아우라가 완연한 사람이다. 그에게 작업은 그저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마냥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대체로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그런 생활이 진정 삶이 되어 버리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도자기로 관심의 눈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자칫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시각을 넓혀 한국의 흙과 역사성, 또한 전통도예와 현대도예의 간극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도예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 정두섭은 마치 마구 던져버린 듯한 흙덩어리의 둥그렇고 질펀한 형태에서 흙의 질감을 그대로 뽑아낸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그 독특한 기법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또한, 보다 넓은 시야로 한국의 도예의 역사성과 그 중요성을 작품을 통해 피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세상에는 깨고 싶지 않은 결말을 가진 드라마나 러브스토리 혹은 신화 같은 것들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이상주의적ideal 성향을 띠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바라본 작가 정두섭의 삶의 방향은 전형적인 도예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직 도예를 사랑하고 많은 이들에게 도예를 알리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그의 소박하고 투박한 도자기 작업과 진정한 도예가로서의 일상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런 그의 열정적인 삶을 닮아가길 희망해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9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