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에몽 이도는 천하제일의 다완으로 일컬어진다....이것은 조선의 밥공기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이 예사로 사용하던 그릇이다. 너무나도 조잡한 것이다. 전형적인 잡기다. 형편없이 싼 기물이다. 만든자는 아무렇게나 만들었다. ...저 평범한 그릇이 어떻게 아름답다는 인정을 받았을까? 거기에 차인들의 놀라운 창작이 있었다. 밥공기는 조선인들이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대명물은 차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이도가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그 고향이다.” - 야나기 무네요시 (일본 민예운동가)
한때 조선 예술 미학의 대가로 불리웠던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사발 키자에몽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우리 도예인들을 비롯한 공예계, 미술계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대학에서조차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 한국 사기장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런가보다 하는 식의 태도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맞받아치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었다.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신정희요’를 운영하고 있는 신한균 도예가(49). “국내 도예가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조선 사발에 대해서 국내에서 오히려 더 모른다.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거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같은 일본의 얘기를 그대로 믿어버린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바로 잡아야 한다.”... 그는 책 두 권을 통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자기 역사를 일으킨 조선 사기장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복원해 내고 그 의미를 되찾고자한다.
『신의 그릇』
지난 4월 30일 『신의 그릇』이 출간되었다. 2005년 『우리 사발 이야기』, 2008년 『고려다완高麗茶碗』(谷晃 공저, 淡交社)과 본어판 『이도다완의 수수께끼井戶茶碗の謎』バジリコ를 출간한 바 있는 작가의 역사소설이다. 소설을 위한 글이 아니라 도자기를 위한 소설을 빚었다는 작가는 십여년간 한국과 일본의 미술관, 도자기 생산지, 가마터를 답사하며 사기장들의 애환을 발품추적 해왔다. 몸무게가 15kg이나 빠지는 노력을 가하며 2년간 집필한 결과물인 것이다.
임진왜란시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 이야기
어지러운 말발굽 소리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는 임진왜란 일본의 조선침략 당시 주인공 신석의 집에 왜군이 쳐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기장인 주인공은 왜군 감시 아래 주문받은 그릇들을 아버지와 빚는다. 왜장은 황도(이도다완)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황도는 신성한 제기이기 때문에 빚어 주지 않으려한다. 이후 주인공 신석은 조선에서 철수하는 왜군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간다. 일본에서 사무라이라는 직책을 받고 한 마을의 수장이 된 신석은 노예시장에서 팔려나가는 조선인들을 구해와 함께 생활하며 고려촌으로 마을 이름을 바꾼다. 또한 조선에서 끌려온 사기장 이삼평, 종전과 함께 왜장이 요구하는 백자를 만들어내 일본 도자기가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에 부와 명예가 더해졌지만 신석은 죽기 전 황도를 꼭 빚어내고자 한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으로 넘어온 황도는 다도茶道에서 귀히 여기는 찻사발이다.
일본에서 어렵게 이도다완(황도)을 만져 본 신석은 조선 흙으로만 제작이 가능함을 알고 조선에 가려고 하지만 주군 나베시마번 다이묘는 귀국을 허락치 않는다. 왜국에서 신석은 삶과 죽음을 오가는 암투, 일본 여인 마꼬와의 사랑, 떠돌이 무사 로닝들과의 싸움을 경험한다. 부산 왜관요의 책임자가 되어 40년 만에 귀국한 신석은 다도용 황도를 만들어 주고 해방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그릇을 빚던 양산 법기리에서 조상을 위한 황도를 빚는다. 그리고 황도를 번조하던 중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일본에서 사무라이 도공이 된 조선 사기장 중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다.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조선 사기장의 바램을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실현한다. 일본에 빼앗긴 도자기를 한국인이 제대로 알고 평가하기를 기대하며 주인공의 귀환으로 그날이 올 것을 꿈꾼다.
황도(이도다완)의 비밀
소설에서 도자기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귀하게 여긴 이도다완(황도)은 진주 지방에서 제사 때 밥올리는 제기용도로 만든 멧사발이었다. 황도가 제기임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뒤 무덤을 파헤치면서까지 사발 찾기에 혈안이 되지만 끝내 무덤에서 찾지 못한다. 제기로서 쓰인 황도는 깨어서 묻기 때문이다. 주인공 신석은 황도제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바치지만 그것을 일본인에게 주지 않기 위해 평생 고민을 해야 했다.
드라마제작과 일본출판도 앞두고 있어
『신의 그릇』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드라마 제작 논의가 한창이다. 출간 후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드라마 제작제의를 받고 있으며 일년반 안에 드라마 제작을 기획 중에 있다. 신한균 도예가는 이에 대해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도예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꼭 알게 되길 바랍니다. 또한 <신의 그릇>은 조선 도자기 역사이자 양산사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드라마 세트장도 양산에 설치됐으면 좋겠습니다.” 고 전했다.
조선 사기장...
그분들은 비천한 사기장이 아니었다. 많게는 천명, 적게는 백명의 사기장을 거느린 리더였고 지략가였다. 글을 쓰기로 했다...그러나 도예가는 그릇으로 말하지 글로 말하지 않는다고 누간가가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펜을 놓았다. 10여년간 같이 했던 조선 사기장들의 행적을 한동안 서랍속에 넣어 두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넋은 나로 하여금 기어코 글을 쓰게 만들었다...2006년 봄, 다시 펜을 잡았다.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2007년 6월 아버님이 저세상으로 가셨다. 아버님의 영혼과 함께 다시 글을 빚었다. 글에 아버님의 장인정신을 넣으려고 애썼다. 2008년 3월 드디어 글이 완성되었다. 그릇들을 시집보내듯이 이제 내 글을 독자들께 시집보낼 차례다. -도예가 신한균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7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