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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9월호 | 특집 ]

청자는 현대도자상차림과 어울리는 것인가?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4:08:27
  • 수정 2018-02-19 16: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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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도자와 현대도자상차림의 접목 가능성 진단

청자는 현대도자상차림과 어울리는 것인가?

글/사진 김판기 도예가

우아하고 격조 있는 청자 그릇의 미래

우리의 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평가받는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고려청자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색채와 형태, 예술성 등은 우리 도자문화의 자랑거리이다. 조선시대 이후 백자에 밀려 명맥이 끊겼던 청자는 근대에 와서 다시 복원되었고, 현재 많은 작가들이 청자를 제작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청자가 지닌 훌륭한 예술적 장점들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한국의 청자를 대중화하고 세계화시켜 나가야 할 시기이다. 그것이 오늘날 청자를 제작하는 작가들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청자를 우리의 생활에 접목시켜 우수한 생활자기로서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까. 청자의 역사성과·전통성·예술성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우리 시대의 예술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다양한 개성과 창의적인 도예가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실험하고 예술 혼을 불어넣을 때 청자의 꿈이 실현되리라 믿는다. 우리 청자의 시작은 통일신라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신라시대까지 우리의 그릇문화는 저화도 토기나 경질의 질그릇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 비해 청자는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나며 그릇의 강도가 높은 매력적인 그릇이었다. 따라서 당시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수입된 송대 청자를 접하게 되면서 청자에 대한 수요의 증가는 물론 자체 생산 욕구가 일어나게 되었다.

토기나 질그릇을 만드는 기술에 비해 월등히 발전된 기술인 자기 생산이 바로 그러한 배경에 의해 이루어지고 고려시대에 꽃을 피우게 된다. 고려인들은 청자기술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여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고려 특유의 독자적인 청자세계를 구축했다. 청자의 발색 등 예술적인 면에서 오히려 중국청자를 능가하는 청자를 생산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여준 예라 하겠다. 고려 청자의 가장 큰 특징은 비취옥(翡翠玉)같은 신비한 색깔과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상감(象嵌)기법의 응용 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비색에는 고려인들의 자주적인 긍지가 담겨 있다. 그것은 고려 고유의 빛깔이며, 흙을 빚어 옥을 만든다는 혼의 결정체와도 같은 것이다. 중국의 청자 빛과 한국 청자 빛을 비교해보면, 중국의 청자는 유약을 두텁게 발라 투명도가 떨어지는 반면에 우리 청자는 정선된 유약을 두텁지 않게 적당히 시유하여 투명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고려 청자는 맑고 그윽하고 깊은 맛을 내게된다. 거기에는 한국인의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고, 미학적 기질이 담겨 있다. 태토에서 자연적으로 발색하는 빛깔이 청자유와 함께 어울려 같은 빛깔이 되도록 비례를 맞춘 고려 장인의 슬기는 신비스럽다. 청자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오감(五感)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보아야 청자의 진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으로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도자문화는 귀족사회의 취향이 반영되어 장식이 호화로우며,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반면에 우리 도자는 속살을 훤히 내비치는 모습이다. 자연의 성정을 인공적으로 장악하지 않으며, 절제된 감성의 표현, 간결하면서 지적인 표현을 보인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생각해볼 때,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현재를 개선하며, 옛것을 멸시하지 않는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마음으로 청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우수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야말로 21세기에 고려청자의 영광을 다시금 부활시킬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9세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12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청자는 몽고의 침입과 사회 경제의 혼란 속에서 서서히 순수성과 정교미가 떨어지면서 쇠퇴하고, 고려 왕국의 쇠망과 운명을 같이 하여 분청사기와 백자의 시대인 조선왕조로 이어진다. 그로부터 수 백년 후 일제 치하에 일본인의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과 소장열기 등의 영향으로 청자 재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으나, 해방 이후 급작스럽게 밀려드는 서구문명에 밀려 다시금 청자에 대한 관심이 잊혀지게 된다.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모습, 즉 청자의 문화를 돌아보기 시작하여, 청자 재현에 뜻을 가진 이들에 의해 청자의 생산이 경기도 이천(利川)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하였다. 청자에 대한 인기는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주요 수요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의 주문은 고려청자를 그대로 모방한 재현품이었다.

따라서 고려청자를 열망했던 일본인들의 취향에 따라 옛것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려청자와 유사하게 제작하고자 하는 노력은 고려청자에 대한 완전한 연구 분석에 도움이 되기는 하였지만 현대 청자로서의 독자적인 모습을 이루어내지는 못 하였다. 당시의 청자는 주로 재현품으로서 관상용이거나 선물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청자 그릇(식기) 등을 제작하는 여유를 갖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간간이 재래식 성형방법으로 단일 품목인 접시나 찻잔, 다구 등이 소량생산 되다가 근래에 이르러 산업자기 생산 방법인 틀을 이용한 성형기술의 도입으로 일반 식기류와 혼례(예단)용 청자 그릇들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백자류와 함께 맑고 고운 비색 청자 그릇에도 점차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져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구입된 대부분의 청자들이 사용하기보다는 장식장에 진열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백자와 청자를 비교한다면 청자는 표면균열이 있고 백자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표면 균열로 인해 균열 속에 때가 끼는 현상을 피할 수 없고 강도가 약해 이가 빠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함으로써 생활자기로서는 백자에 비해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자가 지닌 장점도 있다.

청자의 색은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물기에 젖어 있을 때와 건조되어 있을 때 각기 다른 느낌을 주는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백자가 생활자기로서의 강도와 청결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청자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상차림을 제공할 수 있다. 생활의 향기를 제공해주는 훌륭한 생활용기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우후청전(雨後靑天)’색이니 ‘청여천명여경(靑如天明如鏡)’이니 하는 온갖 형용사로도 모자라는 신비의 비색 청자의 녹청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는 색이다. 또한 사용 중에 저분이나 수저의 부딛침 소리가 없어 손님 접대에 제격이다. 특히 격조 있는 상차림에 잘 어울린다. 그밖에도 청자의 미학적 특징을 잘 활용하면 훨씬 다양한 청자상차림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청자의 활용도가 적다는 점은 풀어야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청자만큼은 한국에서 제작된 것이 세계 제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고려청자라는 우수한 도자 전통을 지닌 후손이기에 가능성이 충분하다. 기법에 제약되지 않고,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새롭고 현대적 감각의 세련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은 우리 청자를 사랑하는 도예가의 직무라고 생각된다. 요즘 퓨전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음식문화에도 마찬가지로 퓨전이 유행한다. 음식문화의 퓨전화는 식기류의 퓨전화를 가져왔다.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서로 합쳐지듯, 식기의 모양도 동서양이 서로 상대의 스타일을 차용하여 퓨전 스타일을 창조한다. 우리의 청자도 기존의 전통적인 기형에서 벗어나 현대적 음식문화에 맞는 모양으로 다양해져야 한다. 청자의 경우에는 청자가 지닌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내구성을 높인 무균열의 청자 소지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양이나 장식 등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여 예술적이고 혼이 깃든 작품성 있는 그릇들이 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새로운 시도들이 쌓여서 새로운 청자 전통을 세워나가길 기대해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자 상차림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인 (5첩, 7첩)의 나열된 상차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진1>의 청자 디너세트는 전통 문양인 상감 당초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였으며, 형태는 퓨전 스타일의 현대적 분위기를 내고 있다. 스테이크와 샐러드, 커피와 스프 그릇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디너세트는 청자가 지닌 전통적 미를 간직하면서 현대의 음식문화에 맞게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전체적으로 중후한 분위를 띄면서도 단아하고 간결한 청자그릇의 이러한 상차림을 통해 오히려 음식의 시각적 효과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청자의 우아한 색깔, 컵, 잔, 접시, 주전자 등 여러 가지 용기의 조화로운 배열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보다 백자나 분청같은 다른 자기류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2>의 상차림은 앞접시와 진사잔으로 이루어진 상차림이다.

흑상감을 박지하여 만든 진사잔들은 두가지 색으로 쌍을 이루고 있고, 젠스타일의 받침을 가지고 있다. 이 상차림의 특징은 사각과 원의 조화, 청자색과 진사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중후한 분위기이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친근감을 주고 화려한 듯하면서 우아한, 청자 특유의 맛을 살리고자 한 작품이다. 분명 청자는 백자나 분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자색이 주는 뉘앙스를 잘 살리고, 청자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색채와 형태, 문양 등을 개발하여 디자인한다면, 청자 상차림은 현대인에게 맞는, 현대의 음식문화에 맞는 스타일을 개발한다면 청자 상차림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고려청자(고유섭), 고려청자(정양모), 한국전통도자전(최 건), 박물관 대학 필자약력 58년 전북 순창 生 98년 일본 녹아도 여명관 한일도자기교류전 2000년 제28회 동아공예대전 대상 (동아일보사) 2001년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입선 2001년 제1회 강진청자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01년 한국전통도자전 참여작가 단체전 30여회, 동아공예동우회 회원 현, 경기도 이천 지강도요 운영 <사진1> 청자 디너세트 <사진2> 앞접시와 진사잔 상차림 청자도자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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