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영숙 아트플랫폼 세인 아트 디렉터
오늘날의 예술작품은 재료와 내용에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현대미술이 ‘감상하는 미’의 대상에서 ‘생각하는 의미’로 대체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현대미술은 고대에서 르네상스 미술에서까지 이어져온 모방Mimesis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사고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 김지아나의 이번 작품은 현대도예를 확장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점으로부터 점으로> (2007.1.10~3.05 서울 White Gallery)는 점으로 드로잉한 조형작품전이다. 작가가 선택한 점은 볼Bowl의 형태이다. 작가만의 물감이 된 반구형半球形의 볼이 한 획이 되고 한 점이 되어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다. 볼을 가까이 살펴보면 사발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크기는 작은 밥 공기 정도이며 슬립캐스팅Slip Casting기법으로 투명성이 뛰어난 얇은 자기로 제작하였다. 또한 캐스팅 작업 시 아랫부분은 몰드로 제작되어 동일한 형태를 갖지만 윗부분에 해당하는 전은 소지가 흘러내린 상태를 다듬지 않음으로써 각각의 볼이 비정형적 형태를 유지하게 하였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작가는 “부분 캐스팅방법과 가마에서 번조되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와 개별성을 지닌 하나의 개체로 태어난다” 고 말하고 있다.
볼이라는 담는 형태인 용기의 특성에 대해서는 “점blow안에 나 또한 우리의 생각, 시간, 기억, 추억 등을 담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는 작가의 글에서 오브제인 볼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것은 위에서 언급한 예술가들의 무한한 자유의 표현으로서 현대미술이 생각하는 ‘의미’로서 보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화가가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듯 작가는 볼이라는 물감을 선택해 추상적인 방법으로 캔버스에 그리고(붙이고)있다. 「조화와 균형」, 「시간의 흐름」 등에서 볼의 색은 흑과 백의 색상이 주를 이루고, 그에 반해 캔버스는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색채의 조화를 꾀하고 멀리서 보면 색면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입체적인 볼은 조명에 의해 캔버스에 그림자를 형성함으로써 감상자에게 폭 넓은 미감을 체험하게 한다. 미니멀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텍사스Texas 마파 프로젝트Marfa Project에 설치한 작품이 자연채광에 의해 색상의 변화 및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이게 했던 것처럼 김지아나의 작품은 빛에 의해 다시 점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에서 간접적으로 사용한 빛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설치작품이 있다. 재료에 의해 표현의 변화를 확연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이 사라진 자리에 전광판 광고에 주로 사용되는 발광 다이오드LED 조명 매체를 활용한 「빛의 움직임」, 「떠오르는 달」, 「개기일식」이다.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바탕에 사용된 재료는 볼에서처럼 슬립캐스팅으로 제작한 백색의 도자기로 잘게 부스러진 파편들이다.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빛의 움직임」은 4가지 색상의 원형 조명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시켰고, 「떠오르는 달」은 노란색 원형 조명이 먼 산에서 달이 떠오르듯 배치하고 있다. 「하늘 창문」, 「하늘 창 밖」은 2개의 박스형태로 바닥에 설치, 드라이 아이스dry ice를 비치하여 작품을 감싸듯이 뿜어져나가게 연출하였는데, 이는 미국에서 공부한 작가가 비행기를 탔을 때 기내에서 창밖을 바라본 운해가 가득한 풍경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벽면에 도자기 파편을 작은 점이 찍히는 붓자국처럼 긴 띠를 이루며 설치하거나 단일 파편만 한 쪽 벽면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전시 주제 <점으로부터 점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볼, LED 빛, 도자기 파편이 점으로써의 오브제인 것이다. 한정된 전시 공간에 점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사용했지만 표현되는 양식과 매체의 다양함이 집중적인 감상을 감소시키는 부분도 있다. 작품에 대한 왕성한 의욕과 타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가에게서는 이러한 작품전개 양상도 협소할 수 있겠다. 다만, 광의적인 의미가 부여된 ‘점’이 작가의 개인적인 미적표출에서 벗어나 동시대 미술에 있어 새로운 표현양식으로 자리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