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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월호 | 작가 리뷰 ]

꿈과 예술혼의 결정체, 도벽/조무호 Jo, Moo Ho
  • 편집부
  • 등록 2009-06-08 16:08:31
  • 수정 2015-05-12 0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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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연주 본지기자

 

도자에 취하고 그림에 취하고
작가 조무호(72)의 도자인생은 1960년대 부산에 위치한 대한도자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그릇에 그림을 그려넣는 일로 시작되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6·25전쟁 후유증으로 가마터가 파괴되고 사라져 온전히 구워진 도자기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당시에 생활자기에 색안료를 사용해 장식하는 기법과 디자인은 획기적인 시도였고 무지그릇, 커피셋트, 홈셋트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그의 자긍심은 도자인생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에는 직장생활을 마치고 서울 성수동에 공방을 차려 전업도예가로서 첫 출발을 시도하게 됐다.
그는 1968년 경기도 여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석봉요를 설립하고, 청자·분청사기·백자 등 전통 청자와 백자의 숨은 미를 찾아 자신만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서울반도호텔, 조선아케이드 등에 도자갤러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전국적으로 도자공방의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게 됐다. 그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신념과 철학으로 다른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졌다. 현실에 대한 자각이 전통도자의 재인식으로 이어졌다. 주변생활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한 그의 스케치는 도벽에 의해 구현되었다.
도자벽화는 환경도예의 하나로 예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건축세라믹이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시작해 흙을 구워 만든 기와로 지붕을 축조했고, 3·4세기에는 벽돌을 구워 벽체를 구상하거나 다른 구조물에 장식하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중기이후에는 무늬와 조각에 있어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그 중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묘전의 표면을 장식한 벽면 등이 대표적이다. 그 후 고려시대의 청자도판인 청자상감모란문판은 고화도 고급자기로 뒷면을 대칼로 긁어낸 흔적과 모래가 붙어있는 모습은 벽에 부착하기 위한 장식도판으로 현대 타일 형태의 도판류로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조선조로 이어지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며 그 맥이 단절됐다. 이 후 개화의 물결을 타고 기계문명이 도입되면서 근대에 이르러 전통적인 수공업 건축기술은 퇴보를 거듭하며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조무호는 “1980년대에 미국 소더비경매장에서 수십억에 거래되었다는 청자도판화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청자상감모란진사모란문문자판 등 다양한 도판들이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세월 속에 자꾸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한다.
환경도자조형물인 도자벽화는 대부분 부조형태의 저화도 도기질로 제작되어왔다. 그는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부조 형태와 충격과 외부환경에 민감한 저화도 자기질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대중적이기 위해 현대의 도자벽화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이 담긴 초대형크기의 도판
작가 조무호는 도판제작에 필요한 점토, 안료, 유약 등 원자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한 공정Process단계를 가진다. 태토를 직접 채석하고 걸러내 백자도토를 발로 밟고 손으로 펴 표면을 고르게 만들어 일차적인 도판작업을 완성한다. 이것을 바람이 통하지 않는 그늘에서 약 한 두 달 정도의 건조기간을 가지고 약 870도의 온도에서 18여 시간동안 초벌번조를 한다. 초벌되어 나온 도판은 표면을 매끄럽게 손질해 그림을 그리는데 안료역시 특수조제해 사용한다. 그는 이 모든 공정을 본인과 그의 아들 조원혁(47)이 함께 직접 맡고 있다. 아들은 크고 작은 업무를 도맡아 노고가 많음에도 불평 한마디 없다.
그는 대작도판을 주로 작업한다. 백두산 설경 도벽, 단양사인암 도벽, 금강산삼선암 도벽,  십장생도벽, 세종대왕 어진 도벽 등 가로, 세로가 수 미터씩 되는 대형도판전체를 그림으로 가득 채워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힐 듯 한 긴장감을 전해준다.「일월오악도」의 경우 도판 한 개당 크기가 가로 243cm, 세로 910cm으로 다섯 개의 펼쳐진 산봉우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버린다. “초대형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대자연을 함축하기엔 모자란 크기”라며 자신이 완성한 도판결과물에 남다른 애정을 전한다.
회화는 주로 자연적인 내용이지만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도벽화 속에는 해와 달, 구름, 바위, 나무, 꽃, 조약돌, 바위에 부딪혀 튀어오르는 물방울, 백로, 사슴, 천도복숭아, 송이 등 수많은 소재들이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자신만의 감각적인 붓터치로 화면에 생기를 더하고 우리의 산과 들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들이 신선감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사실을 중요시하면서 정밀한 자연 관찰과 수학적인 방법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을 표현했다. 백자 도벽화를 보면 2차원의 평면도판 위에 상감기법을 이용해 나뭇잎 하나하나를 음각과 양각으로 조각칼로 파낸 후 각기 다른 안료를 채워넣어 원근감 및 3차원적 입체감을 나타낸다.
그의 그림에는 천일야화보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 지루하지 않다. 1994년도에 가장 큰 접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춘하추동 사계대명」은 4계절의 분위기와 색채를 섬세하게 나타냈는가 하면 「백로대명」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염원으로 제작해 자신의 느낌에 따라 대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전하고 있다.

도판 위의 붓질에는 꼿꼿한 정신담아
1997년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석봉도자기미술관을 건립 등록하고 2001년 강원도 속초로 이전 재개관하였다. 전통 도자 제작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2점의 테라코타, 청자백자를 비롯한 수많은 전통도자 제작, 202점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자판화를 제작하는 등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왔다.
그는 쉴 새 없이 작업에 열중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품구상 및 작업에 매진하는 자신을 보면서 ‘일복이 타고났다’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석봉도자기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은 지난 해에는 「불멸의 미」 자판화연작 202점을 선보이고 수개월간 제작한 설악산을 주제로 90cm가 넘는 대명을 새로 선보이는 등 쉼없는 그의 작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공작처럼 화려하다가도 참새처럼 소박하며 장미처럼 우아하나 연꽃같이 단아하며 벌처럼 날카롭다가도 나비처럼 부드럽다. 가장 최근 연작인 불멸의 미는 꽃과 새, 풀과 벌레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온갖 화조와 초충이 등장해 다양한 소재들이 백자도판 위에 살아숨쉬는 듯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담겨져 있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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