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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1월호 | 특집 ]

한국 도자 전통문양의 정체성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2:23:40
  • 수정 2018-02-20 17: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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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

전통문양 한국 도자 전통문양의 정체성 글/오근재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조형학부 교수

1. 정체성의 문제

우리는 흔히 두 가지 방법으로 개념을 정의한다. 개념적 정의와 계수적 정의가 그것이다. 개념적 정의란 어떤 개념을 정의할 때, 기왕에 알고 있는 보다 쉬운 개념들을 도구 삼아 얻고자 하는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는 방법이고 계수적 정의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것을 셈하여 얻어내는 정의 방식이다. 우리가 지금부터 논의하려는 전통무늬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을 계수하여 얻어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므로, 보다 쉽고 일반적인 다른 개념들을 도구 삼아 논의를 전개해나갈 수밖에 없는 성질을 띠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다든가 쉬운 개념이라는 것도 그것이 돌이나 쇠붙이와 같은 굳은형이 아니고 각각의 인간의 뇌 속에 머물러 있는 개별적인 개념들을 묶어 새로운 개념을 얻으려고 하는 한, 개념정의라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줌의 모래가 땅 위로 떨어질 때 어떤 알갱이는 멀리 날아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수북히 쌓이는 부분이 만들어지듯 개념적 정의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중심덩이(Norm)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1) 본질과 외형

관공서에 출입하거나 검문을 받을 때,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제시한다. 이 때 검문자는 얼굴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 특징의 관찰을 통해 그가 사진과 동일한 인물인가를 확인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경우는 가장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물성적 동일성의 확인절차를 거치고 있다. 선행상이나 우등상은 어떤 사람의 선행성과 학업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ID이다. 이 경우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내재된 본질적인 모습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체성이란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어떤 외형이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상계의 모든 존재물은 그 외형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속성, 성분, 정신활동)의 합치된 상태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어떤 것의 정체성을 논하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검토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전통의 통시성 문제

전통은 전승과는 달라서 어느 시대의 문화적 패턴만을 기술적으로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종축에 맥맥히 흐르고 있는 정신을 이어받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간의 절편 위에 놓여있는 문화적 패턴과 기술에 가치를 두고 이를 이어받고자 하는 것이 전승이라면,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 있는 정신활동의 주된 가치를 이어받으려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은 시간의 절편인가와 통시인가에 따라 각각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유용한 가치를 지녀야한다는 점에서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는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전통성이란, 특정한 과거의 시간대를 설정하고 그 시대의 특징을 정리하는 일에서 얻어지는 결과라기보다는 ‘지금’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를 과거의 시간의 종축에서 찾는 일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석쇠무늬가 벽사의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할지라도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의미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석쇠무늬의 사용은 과거로부터의 외형적 차용일지언정 그것의 재사용을 통해 전통성을 확보하는데 유용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한국 도자 전통무늬의 정체성

1) 전제되어야 할 사항 위에서 말한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인 검토 외에, 한국 도자 전통무늬를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첫째는 한국무늬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도자무늬는 결국 한국 무늬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지면의 제한상 이 둘을 동시에 논의할 것이다. 둘째는 도자기가 지니고 있는 외형적 특징이나 제작과정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기술적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한국 무늬와는 또 다른, 도자무늬만이 지니는 어떤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차례로 논의해 나가면 그 맺음말로서 도자의 전통무늬에 대한 정체성을 말한 셈이 될 것이다.

2) 한국무늬의 정체성과 도자무늬 한국무늬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소재들을 머리에 떠올려보자. 그러나 이들 중 어떤 것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늬라고 규정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사시대의 기하학적인 무늬로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는 팔메토형식의 당초무늬라든가, 완자무늬, 아라베스크적인 무늬들은 거의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무늬들이며, 우리 눈에 익숙한 십장생, 사군자, 각종 길상무늬들조차도 동양 삼국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지 한국만의 고유한 그것들이 아니다.1) 이같이 대부분의 무늬들이 문화적 교류를 통해서 오늘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지적재산이 되어버렸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다면, 무늬에 대한 자생성 여부나 소재를 가지고 한국 무늬의 정체성을 말하는 일은 타당한 논점이 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무늬들의 시각적 특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무늬의 범세계성이라는 개념 속에는 표현의 구체성까지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앙포라에서의 인물의 표현과 고려청자에 등장하는 동자상은 동일한 인물이라는 표현소재이지만 그 표현의 구체성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현의 구체성의 차이를 만들어낸 요인 중 어떤 것은 표현재료와 시문대상에 귀인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상당 부분은 시문자의 생각과 태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엄격히 말해 도자기 하나하나는 문화의 편린일 수 있어도 문화 그 자체는 아니며, 결국 제작자인 사람의 생각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 그것들을 배열한 다음 의미를 표현해야 비로소 도자문화가 형성되는 것처럼, 도자무늬를 포함한 한국무늬의 정체성을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발견하고 또 우리 선인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재 하나하나에서 찾으려 하면 외형도 잃어버리고 본질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어떻든 무늬는 이들을 시문한 사람들의 체험을 표상하는 것이므로 표현의 구체성이 다르다함은 결국 다른 체험세계, 즉 그것들을 생산한 사람들의 사상이나 생각의 세계를 나타낼 것임에 틀림없다

. 도자무늬를 중심으로 한 한국무늬의 통시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정체성을 말하려 한다면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오랜 동안 간직해온 사상으로서의 자연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자연관은 중국을 태생국으로 한 사상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 꽃을 피웠고 지금도 이러한 생각의 틀은 흐르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2) 거듭되는 이야기이지만,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지금 의미있는 것이야말로 정체성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준의 틀3)임을 거듭 상기해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관은 흔히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표현이 얼마만큼 자연대상이나 현상에 닮아있는가에 대한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거대한 우주의 생성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체험의 문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우리의 자연관은 자연에 대한 관념이지 그것의 구체성에 어느 정도 닮아있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자연관이라는 체험에서 출발한 서술체계의 몇 가지 특징을 도자무늬를 중심으로 논의해보겠다.

-자연의 위계성

하나의 선형축의 양극에 한쪽에 단순성을 두고 맞은편에 복잡성을 두었을 때, 무늬가 단순성 쪽으로 이동해 가면 범용성이 강화되면서 독자성은 약해진다. 그러나 복잡성 쪽으로 이동해 가면 독자성은 두드러지는 한편 범용성이 약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무늬가 단순한 형을 띠면 띨수록 우리가 논의하려는 정체성을 말하기 어렵게 된다. 원시무늬라할 수 있는 빗살무늬라든가 번개무늬, 톱니무늬, 점줄무늬 등에서 독자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도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무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위계성에서 오는 표현의 구체성이다. 즉 우리 인간도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자연의 일부이지 관리자가 아니라는 위계적 고백사상이 그것이다.

 손떨림을 허용하고 정확하지 아니한 눈의 측정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조각칼의 기계적이지 아니한 손맛을 존중한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즉 인간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주장하여 인간의 의지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허용오차를 인정하지 않고 기계적인 정밀성을 존중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상不祥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귀얄무늬 분청사기에서 이에 대한 가장 극적인 보기를 만날 수 있다. 회전하는 물레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태토에 귀얄을 가져다 데는 도공의 순간적인 동작과 평면 위에서처럼, 길이와 크기를 잴 수 없는 구형의 도자기 위에 무심하게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는 용기(?)는 그 자신을 전적으로 자연에 귀속시키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자유성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1> 이러한 시문자의 태도가 가져온 결과는 선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단위무늬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강력한 스트록 효과, 조각칼을 비롯한 도구가 남긴 흔적이 불규칙하게 남는 거친 맛이다. 만일 선을 일정하게 조정하고 단위무늬를 정확한 치수에 맞추며 스트록효과를 무시하고 블래킹을 하며 도구가 남긴 맛을 정리해버린다면 우리의 전통무늬는 한국의 국적을 버리고 세계의 익명성 속으로 잠입해버릴 것이다. 자연의 위계성 안에서의 또 하나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은 대관성大觀性이다.4) 말하자면 하늘, 땅, 산천, 동리, 가옥, 방, 가구, 집기의 크기 및 단위분할 등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모든 위계성을 우리는 자연에 대한 순응이라고 보았다. 도자무늬에서도 이러한 사상적 흔적을 광범위하게 목격할 수 있다. 주된 도자기를 종된 무늬가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절제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무늬는 위계질서상 도자기 형태의 다음에 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에서 비슷한 연대의 동양삼국의 도자무늬를 살펴보면 이러한 결과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2> 중국의 그것은 어느 시대의 것이라 할 것 없이 대체적으로 도자기는 도자기로서, 무늬는 무늬로서 서로 자기자랑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리의 여린 색채를 띠면서 자연스러움에 닮아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러움을 가장하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버릴 수 없다. 물론 초기에는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아 이들과 구별이 쉽게 되지 않은 도자무늬도 적지 않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이러한 성향의 독자성을 길러나갔다. 말하자면 일본의 그것들은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러움 그 자체에 맡기지 못하고 인위적인 연출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자연관은 우리의 자연관과 생각의 뿌리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비규정성

무늬는 일종의 자연대상이나 현상의 이차원적인 번역물이다. 그런데 자연대상물은 끊임없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을 고정시키지 않고는 대상의 어떤 면모도 잡아낼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시각을 고정하지 않고는 대상을 캡춰해낼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움직이는 운동선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원리는 이와 같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엄마를 그릴 때 어른들처럼 그리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고정된 엄마의 이미지가 관찰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자기들을 보살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미지는 이미 번역되어 그들의 내뇌에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관념적 이미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관념을 세우려는 본능과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씨에송링의 주장5) 이나 노동의 과정이 끝났을 때 나오는 결과는 노동의 과정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노동자의 생각 속에 관념적으로 존재한다6)고 보았던 마르크스의 생각도 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이같은 어린애와 같은 관념시를 오늘날 우리는 도자무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관념시의 결과로 무늬를 얻었기 때문에 카메라처럼 시각을 정지시킬 필요가 없었다. 말하자면 시각을 규정(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조차도 규정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은 불리불가능한 묶여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어디까지가 물고기가 노닐고 있는 물 속이며 어디서부터가 오리가 날고 있는 하늘인가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시간을 규정하지 아니한 관념으로 포착한 자연대상 및 현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간조차도 구분(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시공간의 비규정성은 무늬의 구어적口語的인 특징도 가져다 주었다. 즉 원근법에 상관없이 의미있는 것을 더 크게 그리고 의미가 적은 대상은 작게 그릴 수 있는 자유성까지도 허용하였던 것이다. 시각적 표현에 있어서 이 같은 시공간의 비규정성은 서양의 경우에는 20세기 초, 입체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도자무늬만의 독자적인 특징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무늬와 결부시킨 도자무늬에 대한 크게 두 가지로 묶여진 정체성을 드려다 보았다. 이것들은 도자무늬에만 국한된 독자적인 특징이나 속성이라고 단언할 수 는 없겠지만, 특히 도자무늬에서 가장 극적인 특질을 발휘하였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아마도 다른 경우보다 도자기 위에서의 작업이 훨씬 인간적인 감각을 더 요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선 구형이라는 형태가 주는 부담감이 작용하였을 법하다. 입지름과 장경부의 지름, 굽지름이 현저하게 다르고 어느 쪽에서 보아도 전체를 다 볼 수 없다는 구조적 제한을 넘어서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철화나 청화라는 안료가 가지고 있는 다소 뻑뻑한재질의 특징과 태토胎土의 흡습성도 시문자들을 어쩔 수 없이 좀 더 대담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불의 섭리에 도자제작의 나머지 공정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무늬의 시문에서보다 더 자연의 섭리에 귀의할 수밖에 없는 도자무늬의 독자적인 특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자기 제작과 시문상의 제한점이 한국의 도자기 제작에서만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전통 도자무늬의 정체성의 실체를 따로 분리해내는 작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앞 서 말한 바처럼 한국무늬의 가장 큰 특징인 자연의 위계성과 시간과 공간의 비규정성이 다른 어떤 무늬에서보다 도자무늬에서 극적인 특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정체성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전통성과 정체성 일반의 문제, 그리고 이와 결부된 도자무늬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의 문제들을 검토해왔다. 정체성에 관한 일반론은 우리들이 도자무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거해야할 여러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 상호 밀착되어 있어서 순도가 보장된 분리가 용이치 않음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눈에 확연히 드러난 어떤 독자성을 확보하는 대신 미세한 차이점을 발견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견점을 우리들이 확대하고 재생산함으로써 미래의 시간 속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정체성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원된 과거는 현재이며, 과거와 미래의 이동하는 접점으로서의 현재에 되살아온 과거들은 결국 미래 시간 속에서 전통을 다져낼 것임에 틀림없다. <주>

1)한국문화재 보호재단 전통공예미술관편저/한국의 무늬/한국문화재 보호재단 한국전통공예미술관/ 1995/ p.28 김영문/옹기문양연구/단국대학교 대학원/1979/ p.p.35-36 이은주/ 조선조 백자에 나타난 회화성/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1985/ p. 15 2)오근재. 최공호/한국 색채·형·문양 특성에 관한 연구/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통상산업부/ 1995/ p.p.17-54 3)탁선산/책세상문고·우리시대 001/한국의 정체성/책세상/2001/p.p.103-110 4)오근재. 최공호/한국 색채·형·문양 특성에 관한 연구/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통상산업부/ 1995/ p.p.53-54 5)씨에쏭링(謝松齡)/김홍경,신하령 공역/음양오행이란 무엇인가/연암출판사/1995/p.62 5)씨에쏭링(謝松齡)/김홍경,신하령 공역/음양오행이란 무엇인가/연암출판사/1995/p.22 참고문헌 김영문 著/ 옹기문양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1979 김홍경,신하령 共譯, 씨에쏭링(謝松齡) 저/ 음양오행이란 무엇인가/ 연암출판사/ 1995 오근재. 최공호/ 한국 색채·형·문양 특성에 관한 연구/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통상산업부/ 1995 유덕조 譯, 渡邊素舟(와다나베소슈)저/ 중국고대문양사/ 법인문화사/ 2000 윤용이著/ 한국도자사연구/ 문예출판사/ 1993 이은주 著/ 조선조 백자에 나타난 회화성/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1985 전충진 著/ 도자기와의 만남/ 리수/ 2001 탁선산 著/ 책세상문고·우리시대 001/ 한국의 정체성/ 책세상/ 200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통공예미술관 編著/ 한국의 무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전통공예미술관/ 1995 호암미술관·중앙일보주최/ 분청사기명품전도록/ 2001 久志卓眞 著/ 朝鮮の陶磁/雄山閣/ 昭和50 上條耳火之介 著/ 日本文樣事典/雄山閣/ 昭和56 永竹 威 著/ 東洋陶磁の美/ 河出書房/ 昭和43 필자약력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초대작가 및 동전시회 심사위원 역임 한국디자인학회장 역임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장 역임 저서/한국 문양의 전개(와전, 능화, 도자편) 역서/인간의 시각 조형의 발견, 디자인 디멘션 현,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조형학부 교수 <사진1> 분청사기철화당초문항아리/조선/16C/동아대학 박물관 소장 <사진2-1> 오채인물문접시(명/13대 신종조-1590년경) <사진2-2> 색채화훼문다완/강호시대(1603~1867)/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사진2-3>청자상감 당초문사발/고려(12C)/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분청사기백지철회연지조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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