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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월호 | 작가 리뷰 ]

끊임없이 흐르기를 고집하는 작가
  • 편집부
  • 등록 2007-09-03 16:07:18
  • 수정 2018-01-22 17: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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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Hee.Gyun정희균

끊임없이 흐르기를 고집하는 작가
글 윤두현 독립큐레이터

 

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작가 정희균은 조형도자 작업을 통해 주로 활동했었다. 그 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는 조형도자가 아닌 청화백자 작품을 선보였다. 유학 중이었던 만 4년 동안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그는 조선의 백자를 작품제작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제 그의 작업 전반에 걸쳐 면치기, 상형, 조문 등의 기법과 더불어 청화 안료에 의한 북어, 굴비, 포도문 등을 소재로 삼은 백자가 중심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작가적 퇴보 혹은 타협인가?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선 정희균의 작업여정에 대한 척도를 마련하는 것은 바로 조형도자를 하던 작가가 왜 조선백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마도 작가의 행보 변화는 당시 한국 도예계의 현실에 비춰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90년대는 한국 현대도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조형도자가 그 방향성을 상실한 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시기였다. 조형도자는 적절한 숙성의 과정을 채 거치기도 전에 강박적으로 수용 혹은 이식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한계를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90년대는 앞으로의 작업방향을 고민하던 젊은 작가들 나아가 도예 전반에 걸쳐 반성적 회의에 따른 자아비판이 먼저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단 도예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감당하고 제어할 수 있는 속도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야기되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총체적으로 직면한 것이다.
작가 역시 이러한 혼란의 중심에 자리해 있었으며, 이의 대안을 찾기 위해 그는 다소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유학을 선택했다. 가깝고도 먼 타국 일본에서 그에게 요구된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장인적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몸의 언어였다. 구거작소鳩居鵲巢라는 말처럼 남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아버렸던 일본 도예가 그에게 준 가르침이 이른바 ‘자신의 뿌리를 공고히 하라’ 였음은 역설적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이는 작가로 하여금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조급하게 밀어붙임이 아니라, 오히려 한 발 물러난 후 저 아래 뿌리로 내려가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데 있음을 확신하게 한 계기였다. 즉 흙(역사가 내재된) 안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생각과 선택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몸의 언어를 가다듬는 장인적 수련은 결국 부실한 허리(근대화의 실패)의 근력을 회복하기 위한 기초체력 키우기이자, 도예 자체를 원점에서 고민하는 자기대면의 과정이다. 이쯤 오면 시야를 흐리던 안개가 슬슬 걷힌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작가의 심연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전에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도예에 대한 작가적 인식의 줄기를 좀 더 세밀하게 더듬어보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상상하는 것은 그 안에서 그 작품이 어떤 구실을 맡고 있는 어떤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 정희균이 조선백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먼저 근대화의 문턱에서 끊어진 한국 전통도예의 허리를 다시 보듬고, 추슬러 도예를 본격적인 삶의 장으로 복권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그랬을 때라야 만이 풀죽은 현대도예에 새로운 숨결 즉 우리시대 삶의 형식을 불어넣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동시대 삶의 형식을 담아낼 수 있는 조형적 선진성이 백자에 담겨 있음을 이미 유학 전부터 발견한다. 그의 백자에서 보이는 면과 선의 조화는 이를 설득력 있게 가시화한다. 더욱이 그의 작업들은 고여 있기를 거부하고 삶의 강줄기가 그렇듯 끊임없이 흐르기를 고집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동경에 위치한 갤러리Gallery Shunn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그가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업들은 이전의 작가적 개성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청화백자들과 달리 보다 간결해지고 고도로 맑아진다.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문양들과 함께 굵고 풍만한 볼륨이 두드러지던 면과 선들이 점차 절제되면서 전반적으로 조형적인 순도가 높아진 느낌을 준다. 나아가 이는 작가의 치열한 여정이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반증한다. 끝으로 그가 작업을 통해 상상하고 담아내는 삶의 형식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인가를 검증하는 문제는 작가와 관람자의 유쾌한 과제로 남겨진다. 아무쪼록 가슴의 이끌림으로 확인하고, 대화하며 이로써 전해져올 쾌감을 함께 만끽하기를 권한다.

1  「백자다면취대호白磁多面取大壺」  30×30cm, 2007
2  「청백자석가탑형호」  2005
3  「분장백자접시」  2.5×30cm, 2005
4  「백자대호」  35×31cm, 2006
5  「백자사각작은발」  10×8.5cm, 2007
6  「청화백자새와포도문대합」  11×55cm, 2003
7  「청화백자면취찻주전자·수구·잔」  12.5×12cm, 2007
8  「청백자피처·잔」  17×13.4cm·8.3×7cm, 2006
9  「백자면취찻주전자·수구·잔」  2007

 

< 더 많은 자료를 보시려면 월간도예 2007년 8월호를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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