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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월호 | 작가 리뷰 ]

지유선_ 삶을 빚는 손, 일상을 수용하는 마음
  • 정두섭 양구백자박물관장, 문학박사
  • 등록 2026-01-29 11:36:26
  • 수정 2026-01-29 12: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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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놀이-기억의 숲」 가변설치 | 도자, 실 | 2013


삶과 작업의 경계에서 태어난 조형 언어

강원도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 지유선은 흙이라는 물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직조해 온 작가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적 오브제로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살아가는 일’ 자체의 시각화에 가깝다. 결혼과 육아, 그리고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인한 상실의 경험은 그에게 일종의 전환기를 가져왔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삶의 굴곡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언어를 재정립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는 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실과 손뜨개로 마음의 결을 엮는다. 석사 연구 주제인 『일상의 수용 受容을 표현한 도자 조형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과제가 아니라, 삶의 굴곡 속에서 발견한 철학의 기록이자 작가의 존재론적 선언으로 읽힌다. 그에게 도자란 단단히 구워진 흙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통과 성장, 단절과 회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 그 자체이다.

지유선의 조형세계에는 극적인 표현이 없다. 대신 담담함과 절제된 형태, 그리고 내면을 비추는 고요한 울림이 있다. 그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묘사 하기보다 감정의 잔향과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여성적 섬세함의 발현이라기보다, 삶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다시 만들어가는 인간 본연의 태도, 즉 ‘수용’의 미학으로 귀결된다.


「울림 그리고 울림」 도자, 자연재료 | 2009


상실 이후의 손 ― 재료의 확장과 감성의 재구성

그의 작품세계는 명확히 ‘화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의 작품들은 「울림 그리고 울림」, 「기억놀이」, 「Self-Soothing」과 같이 생명체적 유기성과 감각적 질감을 통해 자아의 감정을 탐색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흙의 물질성과 형태의 유연함, 그리고 감정의 리듬이 공존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0년의 화재는 작가에게 모든 것을 새로 쓰게 만들었다. 집과 작업실, 수년간의 작품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그는 창작의 물리적 터전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근거마저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흙 대신 손에 잡히는 실과 종이점토paper clay를 들었다. 이 시기 의 전환은 단순한 재료의 교체가 아니라, 삶을 다시 엮는 방식의 변화였다.

「엄마의 시간」(2023)은 그 변화의 상징적 작품이다. 작가는 아이의 그림을 작품의 중심 모티프로 삼고, 자신이 직접 손 뜨개로 엮은 집 형태를 함께 설치했다. 실로 엮은 집과 부조 형태의 여성상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하는데, 이는 작가가 느꼈던 모성의 책임감과 예술가로서의 자아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손에 쥔 실은 가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선들은 다시 공간 전체를 잇는다. 이것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반복되는 노동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창작의 생명선’을 상징한다.

지유선이 실과 뜨개를 재료로 선택한 이유는 단지 작업 환경의 제약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 뜨개는 ‘시간의 축적’과 ‘관계의 인과성’을 담는 행위였다. 한 땀 한 땀의 반복은 일상의 루틴을 닮았고, 그 단조로움 속에서 그는 내면의 질서를 회복했다. 이는 곧 ‘수용’의 물리적 구현이자, 도자 조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그저 가만히」26×18×14cm, 13×16.5×19cm, 10×11×19cm | 석기질 태토, 화장토 | 2024


이후의 작품들―「그저 가만히」, 「머무름」, 「잡고 싶은 순간」, 그리고 「비울 용기」(2024)―에서는 형태가 더욱 단순해지고 색조가 절제된다. 하얀 표면과 부드러운 윤곽선, 흐르듯 녹아내리는 조형은 화려한 기술보다 정화淨化의 감정을 앞세운다. 도자와 타 재료의 결합은 경계의 해체이자, ‘비우며 채워가는’ 삶의 역설을 표현한 장치다. 그는 재료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수용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치유한다.


「 머무름」22.3×18×19cm, 14×8.5×11.5cm | 석기질 태토, 안료, 테라시질라타 | 2024


인간과 동물, 포용과 관계의 은유

지유선의 작품에는 자주 동물의 형상이 등장한다. 그것은 특정 종種의 재현이라기보다, 작가 내면의 자아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저 가만히」의 인간과 「머무름」의 동물은 고개를 숙이거나 덩이에 몸을 포개며 ‘위로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때의 포옹은 단순한 신체적 제스처가 아니다. 받아들이 고, 감싸 안고, 결국은 스스로를 수용하는 마음의 형상이다. 「엄마 Ⅰ, Ⅱ」나 「언젠가 사라진대도」에서 작가는 모성과 상실, 그리고 존재의 덧없음을 주제로 확장한다. 도자 표면에 테라시질라타terra sigillata를 입혀 은근한 광택을 주고, 불완전한 형태 속에 부드러운 긴장감을 남긴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외부로부터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은은히 새어 나오는 감정의 발광으로 보인다.

한편 「비울 용기」는 작가가 삶의 ‘물질적 소유’로부터 벗어 나려는 결심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그릇이 녹아내리고, 주방용품이 형태를 잃어가는 장면은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자, ‘비움의 미학’을 향한 찬가다.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은 그에게 ‘갖는 것보다 놓는 것의 자유’를 가르쳤고, 그 감정은 고요하고 순백의 조형으로 응결되었다.


  「비울 용기」가변설치 | 자기질 태토, 유약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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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유선은 산과 물로 둘러싸인 춘천에서 성장했다. 강원대학교 미술학과에서 공예를 전공하며 다양한 매체에 관심을 넓혔고, 도예와 설치를 중심으로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후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예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며 표현의 폭을 더욱 확장했다. 2009년 첫 개인전 《울림 그리고 울림》을 시작으로 총 다섯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는 작은 오두막 작업실에서 흙과 마주하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작가는 삶과 예술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6년 1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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