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홍 열 번째 개인전
11. 6. ~11. 11. 인사아트센터
기록에 의하면 1969년 서울의 미국공보원에서 미국의 현대도예가 로버트 아네슨의 초기작 전시가 열렸는데, 우리 도예계의 반응이 무덤덤했다 한다. 막 대학에서 도자전공 학과가 출범하기 시작하여 무언가 기본기를 다져야 하는 시절이었기에 이해가 간다. 어쩌면 내심 불경스럽고 불온해 보이는 것들에 감흥이나 공감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불과 20년 뒤, 89년에 대규모로 개최된 ‘현대도예비엔날레’에서 엄청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7, 80년대는 그야말로 실험과 비약의 시대였다 해도 무방하다. 물론 지금은 더 다양하고 다층적이지만 변화의 속도라는 점에서는 비교 불가인 것 같다.
회고해 보건대 ‘현대’라는 개념과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우리 도예가들은 크게 세 가지 스탠스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동시대가 수용하는 한 그 무엇도 ‘현대’의 범주에 있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미국 중심의 도자적 현대미술을 수용하여 양식적 구색을 표방하는 입장이다. 셋째는 외형의 형식보다 내재적인 것, 즉 미적 가치와 질서를 철저히 우리 전통 혹은 현실로 환원시키는 입장이다. 어찌 보면 이 역시 변증법적인 역사적 추이와 맞아떨어진다 할 수 있다. 지난 세기말의 포스트모던 논쟁도 결국은 모던의 ‘자기 성찰’을 변증법적으로 수행하였던 것과 흡사하게, 현대도예도 또 다른 깊이의 ‘자기 발견’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결론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요한 것이 경쟁력이며, 도자 특유의 심미와 표현의 자율성을 천착해가는 것이 바로 그 첩경이라는 것이다.
「윤회 Series-0803」 44×16×44.5cm | Raku번조ㅣ2008 《제9회 한길홍 도예작품전》
이렇듯 격렬했던 우리 현대도예의 변증법적 도정에서 기억해야 할 작가가 있다. 현대도자 운동에 앞장선 선구자들은 다수 있다. 그 가운데 반 세기 넘는 세월 동안 도자의 내재적 가치를 탐구 하고 극대화시키는 데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가 있다. 바로 한길홍이다. 도예 60년 동안 일관된 창작의 신념과 자세, 열정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심미적 성취가 도예 범주를 넘어서는 밀도와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작가이다. 전통적이고 정형적인 기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조형 일반에서는 도조라 부를 수도 있지만, 소위 레거시 장르를 중심으로 놓고 그 아류로 보려는 관행 때문에 다소 저항감이 들 수도 있다.
‘도예’ 바로 그것을 두고 많은 우회로를 기웃거려 봤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역시 작가 작업의 핵심에 닿는 가장 합당한 이름은 ‘도예’인 것이다. 덩어리나 형태로 결정되는 조각이나, 혹은 평면 위 표면만을 활보하는 회화에 대해서는 허다한 담론들이 쏟아진다. 이와 달리 도예가들의 무의식에 담겨 있는 본질과 소중한 가치들을 우리 비평이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도 생각된다. 한길홍은 이 대목에서 대단히 심각하고 진지하다. 도예만의 가치를 말로서가 아니라 작업을 통해서 구현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는 평상시 호방한 성격과는 달리 의외로 섬세하고 신중해진다.
「관토 Series-2404」 54×16.5×25.5cm | 2024
사람의 정신과 흙, 불이 상호작용하여 구현되는 심미적 결정체로서의 도예라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심금을 울린다’는 따위의 신파조新派調 아포리즘이나 자기최면식의 찬사 따위는 경계 한다. 그 어떤 매개 없이도 직접 보고 만짐으로써 교감되어 쾌와 만족을 주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무수히 반복적으로 고뇌하고 희구했던 작가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의 작업은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직관을 즉각적으로 자극한다. 잡다한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우리 내면에 울컥하듯 무언가가 꽂히는 게 있다. 그것은 작가가 전체와 부분, 요소 등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조율해 내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외적이고 우연적인 조건이나 타이밍 등을 절묘하게 제어하거나 도입하는 역량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소위 도자 특유의 심미적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아울러 크기의 열세를 완성도와 밀도 등의 질적인 우위로 극복함으로써 선입견과 차별에 단호히 맞섰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 심미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르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는 바로 ‘우리’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하며 증폭된다는 사실을 작가의 작품이 입증한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구성미가 있는 구조 위에 전통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수묵의 유앙상블에서 ‘우리’의 진면목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상징성이 풍부한 오묘한 구조에 펼쳐지는 선 禪이라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경험시켜주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관토 Series-2415」 36×90×43cm | 2024
작가의 도예작업이 정형성을 벗어나기 시작한 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추구해 온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생生’, ‘합合’, ‘윤회輪廻’, ‘관토觀土’.
세계의 본질에 대한, 다분히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작품마다 서정성과 유려한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80년대 초 ‘생生’ 연작에서는 공간적으로나 형태적으로 기器의 근간에 표현적 요소들을 비례적으로 결합시키는 절충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초기 현대도예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는 생의 활력과 내면으로부터 발원하는 기운생동의 경험들을 투영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器 구조의 근간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고, 또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사진. 작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1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