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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월호 | 칼럼 ]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2] 백자 투각 청화동화 안상무늬 벼루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 등록 2024-08-30 16: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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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文房四友에 속하는 벼루硯는 기록을 남기는 도구로서 붓을 이용한 서사작업과 함 께 발전하였으며 한민족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기의 벼루는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전한시대 의 돌벼루이고 삼국시대부터는 다양한 재질의 벼루들이 출토되는데 돌벼루, 도기벼루, 도자 기벼루 등이다. 삼국시대 벼루의 모양은 대부분 원형이거나 원형에 다리가 달린 형태로 평 양 정릉사터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기벼루, 연 천 호로고루산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기벼 루, 몽촌토성과 사비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녹유벼루 파편, 부여 부근에서 출토된 백제 벼루 등이 있고 신라시대에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도기벼루가 남아 있다. 남북국시대 후반부터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풍자연風字硯이 유행하며 조선시대는 모양과 형식이 다양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벼루의 재질 은 돌벼루로 고려시대는 청석을 즐겨 사용하 였고 조선시대는 충남 보령의 남포석, 장산곶 의 해주연, 평북 압록강변의 위원석이 유명하 다. 특히 위원석은 시루떡의 단면처럼 두 가지 층으로 된 자색紫色과 백색白色인 돌의 특성 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조각을 한 일월연日月 硯으로 유명하였고 위연단계석渭原端溪石으 로도 불렸다. 벼루는 먹墨이 잘 갈리고 갈아진 먹 고유의 색이 잘 드러나야 한다. 먹을 가는 연당硯堂의 표면은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좋은 벼루라 할 수 있 다. 봉망의 강도가 너무 강하면 먹빛이 좋지 않고 너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기벼루의 강도가 대부분 돌처럼 단단하다. 다만 먹의 강도를 돌벼루에 사용하는 먹보다는 연하게 하여 잘 갈리도록 하였을 것이다. 도자기 벼루陶磁硯는 현존하는 유물이 매우 희소하고 실제 사용한 것과 장식용 혹은 부장용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사용한 도자기 벼루는 먹을 가는 연당 부분의 유약을 제거해서 태토의 거칠한 부분에 먹이 갈리도록 하였고 부장품으로 보이는 도자기 벼루는 연당 부분의 유약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먹을 가는 기능은 없고 다만 형태만 벼루로 만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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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8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과월호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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