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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월호 | 작가 리뷰 ]

김진홍, 간섭과 상호작용의 효과를 아우르는 인연의 확장
  • 안준형 여주시청 주무관, 문화행정가
  • 등록 2024-08-01 1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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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홍 <인연을 담는 찻자리>
  • 7. 15.~7. 20. 갤러리 인사아트
  • 8. 8. ~8. 15. 명성황후 생가 감고당

작가 김진홍(b.1987)은 3대를 이어 온 성월요의 계승자로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세라믹아트공학과 최고기술자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대한민국공예품대전, 경기도공예품대전 등 유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현재 경기 여주에서 삼정공방을 운영하며 수작업 다기 제작에 집중하는 작가는 차와 도예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진홍 작가의 개인전 <인연을 담는 찻자리>를 앞두고 글을 준비하며 처음 마주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국도자재단에 근무하던 때이니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경기생활도자미술관의 <전통과 현대의 만남 모자母子전> 전시 작가로 미술관을 찾았던 것인데 내 예상과는 달라도 한참이나 다른 모습이었기에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편견 혹은 선입견이기는 하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한 다기 작품 사진을 먼저 접했기에 이토록 젊고 해사한 청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전시 기간 내내 전시관을 지키며 관람객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차를 내어주는 모습이나 마신 찻잔을 가져가도록 하는 것 역시 흔히 보아 왔던 도예가들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다. 여주시청으로 직장을 옮긴 이후에는 더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글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수락한 이유는 작가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의 부제는 ‘10년의 만남과 인연,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가 도자기 가업을 이어받아 많은 인연을 쌓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6년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갈무리하는 전시를 통해 미래를 응원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김진홍 작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도예가 집안에서 나고 자란 과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형 도자 공장에서 기술상무를 역임한 김진홍 작가의 조부인 성월盛月 김형록 선생은 여주에 정착해 성월요를 설립했다. “우리 도공은 흙이 쌀이다”, “흙을 퍼먹고 사는 사람들은 흙을 귀하게 여기고 한 톨도 버리면 안 된다”는 말씀을 달고 사실 정도로 도예인으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이 대단하셨다고 한다. 대를 이어 도자기를 업으로 삼은 부친 석성奭成 김정과 모친 금향錦鄕 이순자를 보며 자란 작가에게 도자기는 일상 그 자체였다. 어깨너머로 어른들이 도자기를 빚는 모습을 보고 자라며 학교에서 미술대회가 열리면 어설프게나마 빚은 도자기를 출품해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의 소개로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 조선소에서 1년여 일하고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작가는 다시 삼성중공업을 찾아 4년을 더 커다란 배를 만드는 일에 일조하며 살았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조선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고향인 여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도자기에 매달려 고생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저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전국 각지의 박람회와 축제를 나가는 것부터 거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당시를 떠올리며 “도망치고 싶었으나 운명처럼 여주에 남았다”라고 했다. 작가의 말처럼 운명에 순응한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아버지께 도자기를 빚는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부친인 김정 선생은 “도자기는 무기화학”이라며 “형태가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고,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돌과 흙으로도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옛 방식대로 산에서 흙을 가져와 갈고 채 치고를 반복하며 연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역 도예인들에게 물어물어 여주 강천면과 오학동 싸리산을 올라 흙을 채취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좋은 재료를 찾아 실험을 거듭한 작가는 그 결과물로 ‘고백자’ 차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왜 차 도구를 만들었냐는 질문에 작가는 역시 인연, 우연,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저 차가 좋아서이기도 하고 차 도구를 만드는 과정의 섬세함에 매력을 느꼈다고도 했다. 다시 성월요를 부흥시키겠다는 마음에 잠을 줄여가며 도자기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점차 기술적 숙련도를 쌓은 작가는 차 관련 행사에 나가 차 도구를 판매하며 세상에 자신만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7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과월호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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