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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월호 | 특집 ]

특집Ⅰ. 가업으로 지켜 온 문경의 요장들
  • 편집부
  • 등록 2024-07-01 14:47:52
  • 수정 2024-07-01 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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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요, 김정옥 사기장

손과 몸에 체화된 기예로 한국미의 원형을 보살피다

-김정옥 사기장님께선 1991년 대한민국 도예명장 1호에 이어, 199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셨습니다. 사기장님께 ‘국가무형유산’이라는 명칭은 어떤 의미였는지 전해 듣고 싶습니다.

-1960년대부터 문화재 제도가 설립된 이후 도자 예술에서는 어떤 인물이 국가무형유산이 되는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던 1987년에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백자 사발을 문화재위원들이 보시고 3일 만에 요장에 찾아오셨고, 10년간의 시간을 거쳐 1996년 지정 통보를 받게 됐습니다. 그 지정서를 가지고, 조상님들의 산소에 찾아가 천복을 올렸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실보다는 긴 역사 동안 전통의 대를 보존하신 선대 사기장님들의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혼자 잘한 것이겠습니까. 지정 이후 국가를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심했고, 첫째는 우리의 도자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 둘째는 가문과 후학에게 이 가치를 온전히 이어주는 것이라고 여겨 현재는 이런 일들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사기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문경 도자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문경은 지리적으로도 외진 곳이라 이천, 김해 같은 지역에 비해서 현대도자 기법 같은 것들이 잘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우리는 ‘전통’을 이어나가자라는 뜻을 함께하여 기록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옛것의 미학을 지키고 있습니다. 1730년부터 1대 김취정 사기장님부터 도자기를 빚어 왔고, 5대 김운희 사기장님과 6대 김교수 사기장님이 사옹원 분원에서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왕실용 도자기를 만들었던 사옹원 분원의 전통을 지켜 온 후손, 후학들이 지금의 문경 도자를 만든 것입니다.



②묵심도요, 이학천 사기장

무결점의 한 점을 위한 생애

-이학천 사기장님께서 가업을 잇게 되신 서사를 전해 듣고 싶습니다.

-선대 도공 1대 이명태, 2대 형범, 3대 종현 조부 때까지 안동에서 도공 일을 하시다 4대 괴연 조부께서 문경으로 이주하셔서 5대 만걸, 6대 정우, 7대인 저까지 이어진 것이고, 현재는 8대 은비와 은비 조카딸들이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선친께서는 1975년경부터 전국 각지의 옛 도요지를 찾아다니며 답사하시고, 매번 근처에 움막을 짓고 작고하실 때까지 그릇을 지으셨습니다. 저 또한 선친의 뜻을 이어 견문과 기술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공 일을 수행으로 삼았고, 1997년부터는 고향 문경으로 돌아와 작도作陶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공의 길을 걷는 것에 큰 자양분이 되었던 선친 이정우 선생님의 가르침이 궁금합니다.

-선친께서는 배움에 있어서 어디서든 고개가 부드러워야 한다고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그 공손함을 익히면 평생의 답답함은 없을 것이라고요.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부끄럼 없이 산다면 법도 필요 없다고 하시며 그 훈유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 흔한 전시회도 평생 안하시고, 도공의 도리로서 늘 연구에 매진하시고, 견문을 여러 도공과 나누셨습니다. 효자 소리 듣기 위해 효를 하는 사람은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도리부터 하지 않고, 명예부터 좇는다면 훌륭한 도공이 될 수 없습니다.



문경요, 천경희 도예가

꺼지지 않은 검은 빛

-천경희  도예가님에게 ‘문경’이란 어떤 곳입니까?

-개인적인 의미로 문경은 2, 30대에는 도망치고 싶었던 곳, 40대에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곳 그리고 50대에 들어서는 도망칠 수 없는 곳입니다. 2, 30대에는 늘 엄격하신 선친 밑에서 기술을 익히는 것이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보니 관두고 싶기도 했죠. 그러다가 40대에는 조금씩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작업이 손에 익어 나름의 요령도 생겼어요.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2021년 천한봉 사기장님의 작고 이후, 천경희 도예가님 그리고 문경요의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도 홀로 작업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가마 서너 칸을 제 작품으로만 채우고, 번조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그래도 늘 아버지와 긴 시간 동안 반복해 온 일이라서 그런지 수월하게 홀로 서게 된 것 같습니다. 매년 새로운 주제로 도천도자미술관의 전시를 기획하고, 저만의 작품을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6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과월호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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