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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월호 | 전시리뷰 ]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사물의 진동
  • 육상수 우드플래닛 대표, 전시 총괄
  • 등록 2024-06-28 17:27:02
  • 수정 2024-07-15 13: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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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도哀悼 : 공예적이거나 혹은 미술적이거나>
  • 5. 9. ~5. 31. 윤현상재 STAGE 2


<애도>전은 공예와 미술이 동일체를 이루어 사람과 사물에 스며든 슬픔을 기꺼이 떠나보내는 일련의 행위를 표면화한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애도가 부재한 경우가 없었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애도의 시대’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공예가와 미술가 42인이 한자리에 모여 애도의 형편을 보살피고 떠나보낸 후 작가 스스로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도 있었다.

‘애도’는 구석진 방의 침대 시트에서부터 세상을 호흡하는데 이르기까지 일상의 공기 속을 떠돌아다니다가 우리를 급습하는 몹쓸 놈의 비물질로 규정했다. 애도를 경험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언제까지 예외일 수도,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도는 밤의 습기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우리 스스로를 애도의 대상으로 삼는 비정한 슬픈 체액이다.



자기애自己愛를 근거로 낭만적 대상체를 만드는 작가,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 애도는 생소한 대상이자 뻣뻣한 재료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이 되는 순간 자신 또한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 대상 또한 애도다. 애도는 가까이할수록 늪에 빠져드는 모호한 난제이며, 자기 몸에 적당히 맞춰 봉제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다. 애도는 외면할 수도 없지만, 애도를 외면하고 상실한 시대는 이기적 평화로 위장한 짐승의 시대와 다름없다. 

세상을 마주하고 자기 세계관을 재생하는 예술가들에게 애도는 호기스러운 주제이면서 한 번은 건너가야 하는 검은 담즙의 땅이다. 예술가는 우리들 몸의 오른쪽 아래 비장이 썩기 전에 신선한 혈류를 공급하는 외과의사의 치밀한 수술을 감당해야 한다. 2024년 5월 9일 <애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기만의 위패와 비문을 조각해 애도의 바다에 빠져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미술도, 공예도 그 밖의 어떤 경계도 없다. 오로지 애도를 빙자한 무궁한 자유만 있을 뿐이다.



공예가 저잣거리에 한정된 기물이지 않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디자인해야 하고, 미술은 에고Ego가 난무하는 고립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애도의 정서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애도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전시는 메마른 땅을 굽어살피고, 리비도의 정염을 정화하고, 상실한 소녀 시대를 추모하고,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어루만지고, 고독의 냉기를 다스리고, 무명인의 무던함을 기억하고, 사물을 귀하게 여기고, 적막의 실타래를 풀어 내고, 퇴고 이후의 후유증을 지각하고, 자연의 맥락을 구분하는 등 열한 가지의 애도식을 치르고 있다.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6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과월호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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