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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6월호 | 작가 리뷰 ]

도예가 명지혜
  • 편집부
  • 등록 2003-03-18 18:48:12
  • 수정 2018-02-19 09: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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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명지혜

박물관에서 본 ‘분청사기 철화어문병’

도예에 빠져든 근원 “작업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변화한다

작품은 연속되는 작업의 한 장면” 이라고

 수많은 도예가들이 제각각의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흙, 불, 유약, 안료 등으로 표현하는 도예의 기법과 표현방법이 다양하고 다른 영역으로의 확대나 접목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도예가 명지혜(42)씨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뒤늦게 도예의 이런 매력을 알게 돼 도예가가 됐다. 홍익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하고 그림을 그리며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 도자기를 배운곳은 안양의 수리산 도예연구소이고 그곳에서 단국대 박종훈 교수와 인연이 닿아 박종훈 교수가 운영하는 서울 세곡동의 나눠요에서 작업을 익혔다.

 그는 “작업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변화한다. 작품은 연속되는 작업의 한 장면”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기억할 때 형태나 색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만들어낸 기억법이다. 도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박물관에 전시된 ´분청사기 철화 어문병´을 보고 그 작품이 주는 감동에 빠져들어서이다. “그 작품을 바라보고 어쩌면 저렇게 편안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 병의 작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왠지 나와 같은 생각과 감성을 지닌 사람일 것 같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기를 바라게 됐다.”고 말한다.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마음을 감상자가 읽어낼 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좋은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완벽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릇이 갖는 쓰임외에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공간은

사용자와 공감대 형성

 홍익대에 공예과가 하나로 운영되던 시절 1,2학년때 도예를 접해볼 기회가 있었는 데 당시엔 그 작업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작은 체구에 그때는 몸도 많이 약한 편이어서 도예는 감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졸업 후 도자기를 다시 시작하며 그때 도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늦게나마 도예를 시작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는 현재 작업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줄 학교 은사가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이 도자기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여러 도예가들을 은사로 모시고 있다.

 명지혜씨가 도예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릇들은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여백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용이한 그릇인 접시를 주로 작업했다. 그는 주로 물레를 이용해 기(器)를 만들며 “공예는 쓰임을 가질 때 더 아름답다”는 말을 강조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그릇으로서의 쓰임에서 장식의 쓰임으로, 혹은 작가와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오브제가 갖는 쓰임으로 확대되어 갔다. 때문에 명지혜씨의 도자기들은 그릇이 갖는 일차적인 쓰임 외에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고 사용자들에게 장식적인 욕구의 충족과 작가와 사용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릇이라는 제한된 형태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기에

사용자와의 통로를 여는 다양한 표현가능

 지난 2000년 서울 인사동에서 가졌던 그의 첫 개인전은 ‘지혜접시’라는 제목으로 접시 위에 화장토와 산화철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접시를 테마로 잡은 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림 그리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린 접시는 2001년 프레엑스포 공모전에서 입선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업에 점점 익숙해 가면서 그릇이라는 제한된 형태 안에서도 표현할 수 있는 게 그림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보다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레로 빚는 그릇이 반드시 정형화 돼 있을 필요는 없다. 물론 도예를 포함한 공예라는 분야가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기는 해도 좋은 작품은 사용자에게 작가의 의도를 잘 전해줄 수 있다” 그의 이런 생각들은 전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물레가 돌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잡아 빼거나 삐뚤 하게 빚어진 그릇들로 형상화된다.

“화랑토의 흰 빛은 내가 뭔가를 표현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다.”

“화장토의 흰빛은 무명천 색 같다요. 비어 있는 캔버스처럼 내가 뭔가를 표현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흰빛은 우리 민족과 우리 자연에 잘 어울리는 색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줄 것 같아서 인지 마주 대하는 사람에게 여유로움을 준다.” 분청 작업을 좋아하고 분청작업을 주로 하는 그의 작업실 전시장에는 화장토를 바르고 산화철이나 코발트로 그림을 그린 그릇들을 비롯해 화장토로 그림을 그린 작품들, 화장토를 바르고 긁어내 시문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그 외에도 화장토의 농도를 수묵화의 먹처럼 다양하게 조절해 장식한 작품과 무광흙유로 시유하고 유광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은은함이 베어있는 작품들, 산에서 캐온 약토를 화장토에 섞어서 바른 작품들도 눈에 띠었다. 화장토에 약토를 섞어 사용하면 번조 후 철이 피어 흰 바탕에 자연스런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봄에 진달래가 핀 산에서 캐온 흙으로 실험한 결과물이 맘에 들어 그 흙에 ‘진달래 1호’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있는 주변환경에 순화되어

바람따라 느낌따라 자연과 인간 표현

 그가 작업하고 있는 경기도 군포의 속달동은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면서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 둘러 싸인 호수’가 있고 이름 모른 새소리가 들리는 마을이다. 이곳의 자연경관은 그의 풍부한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고 그의 작품에 산과 나무, 물고기, 새 등으로 표현된다. 자연이 주는 감흥에 젖어들 때면 형태를 지니지 않은 자연현상과 공기의 흐름, 바람의 향기까지도 자신의 작품에 담고 싶어진다. 그의 접시와 그릇들에 담긴 물고기, 새, 나무들은 잘 그리려 애쓴 흔적보다는 재미있는 표정과 편안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그의 감각이 살아있다.

 오는 가을 2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명지혜씨는 자신의 작품을 어떤 한정된 범주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그릇이라는 기물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업이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의 느낌이 흘러가는 대로 느끼며 작업하고 있다. “물레 앞에 앉아 마음을 비우고 손이 가는 대로 기물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기물을 보고 떠오르는 다음 기물을 성형하기도 한다” 분청기법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유약도 대부분 투명유와 분청유 등의 유약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비교적 정적인 방법으로 작업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버리고 과한 욕심을 비우려 한다. 한편으론 자신의 작업에 몰두돼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발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고 싶어서 다른것들에 빠져들기도 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도예가가 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프로 정신이다”

 명지혜씨는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작업만 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힘든 일이다. 특히 결혼한 여성이 작업한다는 건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아 여러 곳에 자신이 분산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예가가 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성도예가들이 프로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남성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 게 프로다운 자세라고 생각한다. 프로라면 힘든 상황 자체도 즐길 줄 알아야 된다. 게다가 그릇을 만드는 일은 그것을 직접 만지고 사용하는 여성이 더 잘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며 후배 도예가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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