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前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추천도서
잔잔한 감동의 시와 그림
넉 점 반
나는 시보다는 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시가 주는 즉각적인 감응이 있지만 그런 시는 내게 몇 점 되지 않는다. 시집을 별로 안 읽었으니 그럴 거라고 나무라면 할 말은 없다. 윤동주 의 ‘서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으면 나도 가슴이 찡하다. 그러나 그런 시는 누구에게 나 고전이라 오히려 익숙해진 감동은 내게 부담이었다. 또, 시는 소설에 비해 너무 짧아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다.
이런 내게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진 책, ‘넉 점 반’은 나를 다른 차원으로 안내했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아련하게 퍼져나가는 물결을 내 가슴에 남긴다. 어느 늦가을, 울창하던 녹음이 물러나고 나뭇잎마저 거의 다 떨어진 냇가에서 홀연히 바람이 불면 이는 그런 물결 말이다. 그냥 시만 읽었으면 나는 그저 빙그레 웃는 정도였겠다. 그런데 시구에 그림이 더해져 이 책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 책은 작곡가가 좋은 시에 곡을 붙이듯 누가 먼저랄 거도 없다.
´넉 점 반’에서 그림을 그린 작가는 시인과 대등한 관계로 보인다. 뒤바꿔 보자면 오히려 시가 그림을 설명하는 듯하다. 아기와 영감님의 표정, 댓돌에 고양이가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고 성냥, 사탕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늘어놓은 가게 풍경, 닭과 개미, 잠자리와 붓꽃, 심부름 마치고 돌아온 아기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길, 그리고 개구쟁이들이 한 방 가득 밥 먹는 모습, 어느 하나 시구와 어울리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소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을 봤다고 자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