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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월호 | 해외 ]

이리나 라주모브스카야
  • 편집부
  • 등록 2020-07-20 09:58:53
  • 수정 2020-07-27 13: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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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영국 도예가 인터뷰 시리즈④
영국에서 구소련을 기억하다
이리나 라주모브스카야

글. 신은정  영국 통신원 사진제공. 이리나 라주모브스카야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러시아혁명의 본거지이자 모스크바 다음으로 손꼽이는 문화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이리나 는 어려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역사와 미술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술에 흥미를 느껴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서 순수미술과 도예를 전공하게 되었지만 그는 러시아에서 의 대학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러시아의 획일적인 예술교육이 성이 차지 않았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몇 백년전 작품들을 재현하는 테크닉에 대해 가르쳤다. 6년 동안의 학부 및 석사과정을 통해 도예 테크닉에 관해서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예술가로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훈련받은 것은 아니였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과거의 것을 반복하는 러시아의 교육과정은 작가로서 이름을 내건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갈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리나는 러시아의 예술교육환경이 도예작가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데 벽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수업만으로 자신의 창작욕구가 충족될 수 없자 수업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작품을 개인스튜디오에서 제작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도예 작업을 하며 나는 도예작가로서의 앞날이 밝지 않았다. 현대도예에 관한 관심이 러시아에는 아직 많지 않기에 작품 판매를 통해 작가로서 생계유지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대학생활 중 내가 개별적으로 작업한 작품들을 가지고 외국 여러 곳의 레시던시에 참여하고 전시하면서 나는 러시아가 아닌 넓은 국제무대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특히 영국은 도예교육에서 예술가로서의 창의성을 크게 생각하며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 또한 러시아에 비해 현대도예 시장이 상당히 큰 편이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고 그는 말하며 영국으로 오게된 계기를 설명했다.

런던에서 발견한  러시아인으로의 정체성
이리나는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기 바로 직전인 1990 년에 태어났다. 그래서 구소련 출신이지만 실제로는 구소련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 덕분에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미술사 교육 프로그 램에 자주 참여하고 예술대학에 입학했지만 그가 러시아 를 떠나 영국에서 도예를 전공하기 전까지 그는 구소련 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나는 러시아에서 자라면서 구소련에 대한 향수나 궁금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내 작업에도 구소련과 관련한 무엇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런던으로 유학을 오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구소련시대 건축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며 그는 왜 자신의 작품에서 구소련 건축물들을 표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아는 구소련에 관한 모든 것은 부모님들에게서 전해들은 기억이기에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 내가 경험한 것은 없지만 내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살아온 그 시간들을 나는 알고 싶어졌다. 런던에서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구소련시대 건축물 들이 그리워졌다. 건물들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낡아갔지만 건축물 마다 기억하고 있는 구 소련시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까지 담고 있다. 내가 러시아에 살면서 궁금하지 않았던 러시아 역사의 한 부분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 큰 부분이였음을 영국에서 깨달았다.”고 작가는 이야기했다.
“나는 나의 작품이 직설적으로 무언가를 분명히 내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건이나 건축물이 개개인에 따라 다른 기억과 의미가 있듯이 나의 작품도 보는 이에 따라 자신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낡고 겉이 벗겨진 느낌을 주기위해 나는 유약을 여러 번 덧바르는데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유약과 흙이 가마에서 서로 반응하며 모습을 만들어 가기에, 내가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가 어떨지를 계획하 더라도 결국은 작품이 스스로 가마에서 최종적인 모습을 결정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역사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개개인이 기억하는 역사는 다르며 우리는 완전히 그 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러시아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답답하게 생각했던 테크닉에 중점을 둔 교육이 지금은 런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도움이 많이 되듯이 내가 러시아에서 살면서는 아름답다 여기거나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던 구소련 건축물들이 런던에 와서 나만의 작업을 만들어가는데 큰 영감을 준다. 그래서 지금은 구소련 건축물과 관련된 작업들을 계속해가고 있다.”며 그는 영국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러시아교육과 구소련건축물에 대한 가치를 되짚어보았음을 이야기했다.

“몇년 한국을 전 방문했을 때, 나는 서울의 건축물들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직선이 많이 사용된 근현대 의 콘크리트 건물들은 러시아를 생각나게 했는데 낡고 퇴색한 콘크리트 건물들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며 작가는 서울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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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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