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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월호 | 작가 리뷰 ]

이시대의 청자, 고현 조장현
  • 편집부
  • 등록 2020-07-20 09:51:15
  • 수정 2020-07-27 13: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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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청자
고현古現 조장현

글. 박진영  객원 에디터 사진. 이은숙 포토그래퍼

고려의 멸망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가 1970년대 말에야 재현되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우리의 찬란한 전통 예술을 대표하는 유산이다. 모든 유산이 그렇지만 이를 그대로 전승하는 일은 후대의 과업인데, 이와 더불어 지금의 삶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도 지속해야 한다. 도예가 조장현은 청자로 이 일을 하고 있다. 고려청자의 전통에 작가의 지금 생각과 고민을 담아 새로운 유형의, 이 시대의 청자를 만들고 있다.

조장현 작가를 만나러 찾은 전라남도 광주의 무등도요. 넓 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는 전시장이, 다른 쪽에는 건물 몇 채로 구성된 작업장이 자리한다. 작가가 먼저 안내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고고한 빛을 내는 각양의 청자들이 전시돼 있고, 가운데 유리장 안에는 각색의 청자 편들이 가득하다. 이 전시장은 조장현 작가의 아버지이자 고려 청자 재현에 큰 업적을 남긴 고故 조기정 선생의 작품들이 자리한 공간이다. 유리장 안의 도편들은 선생이 수년간 천 여 개의 가마터를 답사하면서 발굴한 것들이다. 청자의 유색을 내는 원료 연구에 몰두했던 선생은 이 도편 분석을 바탕으로 고려청자 재현에 성공했고(1978년),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청자기능 보유자 제 10호이자 광주광역시 지정 한국 최초의 전승자기 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 5호로 지정되었다. 이 도편들은 지금도 청자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쓰인다. 선생이 오랜 시간 축적하고 이룬 이 귀한 유산은 선생과 외모와 성격이 가장 많이 닮은 막내아들, 조장현 작가가 물려받았다. 그의 호, 고현古現 역시 아버지에게서 내려온 것이다.

조장현 작가는 원래 미국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순수 미술의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보니 결정을 못 내렸어요. 한국에 와서 반 년 정도 있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는데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아예 들어 오게 되었어요.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국에서 작업한 포트폴리오를 싹 다 태웠어요. 그때는 그래야만 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독한 다짐으로 돌아온 20대 말 의 조장현 작가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여기 무등도요 작업장에서 도예가로서 새길을 밟아 나갔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을 때면 며칠간 퇴원해 같이 지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작업한 적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틈틈이 작업한 것을 보여드리면서 뭘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해주셨어요. 저쪽 책 있는 곳을 가르키시면서 그 책 다 보면 얘기해줄게, 이런 식이었어요. 아버지도 스승 없이 독학하셨으니 저에게도 그걸 바라셨어 요. 그때는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옳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혼자 작업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구하고 실험하고, 그러면서 저만의 데이터를 만들게 되었 어요. 아버지에게는 도예가로서의 태도와 정신을 더 많이 배우고 물려받았습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만드는 청자
청자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매끈한 형태와 신비로운 비색翡色에 복잡하고 세밀한 전통 문양이 상감된 보물. 박물관의 유리 상자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고려청자는 ‘우리 문화가 이뤄 놓은 독보적인 아름다움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만큼 이 시대와, 지금의 우리 삶과는 멀어져 있다. “아버지는 고려청자 재현 작업을 충실히 하셨지만 내가 그걸 똑같이 따라하는 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 시대의 청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옛날에는 생활 터인 물가에서 쉽 게 볼 수 있는 동식물을 주제로 문양을 만들어 넣었다면 지금은 우리 주변의 건물이나 자동차를 주제로 작업하는 거 에요. 청자 유색도 과거에 최고라고 여겼던 걸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이 시대에 우리가 좋아하는 유색은 없을까, 찾아서 표현해 보는 겁니다.” 그의 작업을 언뜻 보면 이전의 전통 청자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가 추구하는 동시대의 청자는 무엇인가? “재료나 기법 등은 모두 전통에서 가져오지만 시대를 뒤섞어 작업합니다. 지금 우리 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두 시대를 섞거나 원하는 시대로 뛰어넘을 수 있어요. 조선시대의 덤벙 기법으로 청자를 만드는 식이죠. 여기 이 긴 청자 꽃병을 예로 들면, 흙과 유약은 기존의 청자와 같은 것을 쓰지만 매끈함을 추구하는 전통 청자보다 거칠고 투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겁니다. 태토로 거친 흙을 쓰고 그 위에 가장 고운 청자 흙을 입히면 안에 있는 거친 흙의 흔적과 표면의 유약이 대비되면서 새로운 성질이 나오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간단한 기법인데 이렇게 시대를 뒤섞고 거스르는 작업을 한 작가가 없었어요. 이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건 전통을 고수하기보다 다른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청자가 지닌 아름다움의 핵심은 옥을 닮은 유색에서 비롯된다. 깊은 물색처럼 빛에 따라 달라지고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깊이 있는 비색. “내가 만드는 청자의 유색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성기 때의 청자 유색이전으로 회귀해서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시대에 좋아할 수 있는 청자 유색을 찾으려고 합니다. 안정적이지 않고 변화가 많은 유색, 좀더 서민적인 유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내가 만드는 유색이 더 아름답다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최고로 꼽은 청자의 유색 이외의 다른 유색,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 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사라진 유색을 다시 불러들이면 어떨까, 그 안에 이 시대의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찾아나가는 겁니다.” 장식에서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면, 양각흔적을 따라 다시 한번 얕게 양각합니다. 그리고 아웃라인을 따라 뚜렷하지 않게 선을 그어주면서 양각이 잘 인식되도록 합니다. 이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오래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데 청자 유약의 특성을 잘 활용한 새로운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 우리 시대의 도자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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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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