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로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그룹의 산업도자 디자인과 예술유리(6)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과 디자이너들 - 디자이너 이반 바이스
글/김정아 스웨덴리포터 사진/로얄 코펜하겐 제공
1990년대 이후의 로얄 코펜하겐 디자인과
디자이너 이반 바이스
1990년대 이후의 로얄 코펜하겐 디자인은 장식과 응용미술의 시대로 부를 수 있다. 1997년 로얄 코펜하겐이 로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그룹으로 통합되면서, 로얄 코펜하겐 디자인은 기존의 전통적인 양식 즉 유럽식 상회청화백자 라인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현대 디자인을 도입하기로 한 듯하다. 즉,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가지의 생산라인이 가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라인은 일상생활을 위한 매우 대중적인 아이템들이 제시되었으며 이 새로운 라인을 위한 체계적인 연구와 디자인 개발 또한 뒤따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제품디자인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표현과 예술성을 인정하는 실험들이 격려되어지고 있다. 로얄 코펜하겐 디자인의 이러한 두 가지의 생산라인은 기업의 역사와 덴마크 도자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이 시대의 도예가와 디자이너들에게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산소 같은 역할을 하고, 이에 더해 다른 나라의 도자산업체들에 대한 강력한 도전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16세의 이반 바이스가 로얄 코펜하겐을 위해 일을 시작한 1960년대는, 2차 대전 이후 전 유럽의 다른 도자 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로얄 코펜하겐 역시 사회재건과 민주정치를 위한 기능성과 대중성을 가진 실용적 디자인들이 고려되어지기 시작한 중요한 과도기였다. 젊은 디자이너 이반은 이러한 실험적 과도기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사회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산업체 도자의 본질을 체험하며, 국제무대에 있어서의 덴마크 도자와 디자이너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보여진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얄 코펜하겐은 덴마크 최고의 시각 미술가들에게 여러 형태의 커미션을 주어 그들이 가진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을 제공받기 시작했다. 비욘 뇌르가르드, 아르네 하우겐 쇠렌센, 피에테르 브란데스, 토르벤 에베센, 리세 말리노브스키, 마야 리사 엥겔하르트, 도리스 불름 등의 도예가들과, 로얄 코펜하겐의 풀타임 디자이너 스텐 뤼케 마드센이 참가했다. 당시에 이미 로얄 코펜하겐의 풀타임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던 이반 바이스는 거칠고 육중한 초대형 도조작업과, 감탄이 나올 만큼 칼로 종이를 오려낸 듯 정확하며 종이처럼 얇은 자기질 오브제 작업들, 세련된 감성이 묻어나는 산업도자 디자인 등 그의 끝없는 상상력과 다양성을 조합시켜 폭넓은 접근 방법과 개방성으로 실질적인 1990년대 이후 로얄 코펜하겐 디자인을 논증해왔다.
16세에 상회 장식공으로 시작한 디자이너 이반 바이스
도예가이자 산업도자 디자이너이며 산업도자 표면 장식가인 이반 바이스(Ivan Weiss)의 이력서에는 교육배경이 없다. 그는 나이 16세 때 로얄 코펜하겐에서 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의 상회 장식공으로 도예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굳이 구구한 뒷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아직 학교에 다닐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공장 일을 시작해야 했던 이유가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힘든 추측이 아니다. 이러한 그가 지난 수십 년 간의 외롭고 피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오늘날 덴마크의 가장 대표적인 도예가중의 하나로 확고한 위치를 설립한 것은 인간승리의 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가 성공하게된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관능적일 만큼 감각적인 작업으로, 이는 풍부한 경험과 산업체에서 얻은 살아있는 체험 그리고 노련함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반 바이스는 그의 디자인을 통해 공간과 형태, 움직임과 색채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전체라는 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그가 디자인한 접시와 사발들이 놓여진 식탁은 마치 하나의 멋진 연극무대처럼 우리의 눈을 변화시킨다. 자유로운 필체로 쓰여진 서예체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그릇들은 매우 자유분방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서로 아주 근사한 유사성을 가지며, 식탁과 한 몸으로 일체가 되어 강렬한 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물이 흐르는 듯이 정지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창출해낸다.
청결하고 개운한 맛을 가진 그의 디자인은 마치 사용자가 새로운 무대장면을 연출하는 연출자 같은 기분으로 그의 자기질 그릇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반 바이스는 1946년 생으로 올해 56세이다. 16세가 되던 1962년부터 1966년까지 로얄 코펜하겐의 상회 장식 공으로 근무했으며, 1966년부터 1970년까지 도예가 이며 화가인 닐스 토르손(Nils Thorsson)과 협력하여 로얄 코펜하겐의 디자인 공동작업을 했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일본에서 일본도예를 공부했으며, 1972년부터 현재까지 로얄 코펜하겐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년 간 덴마크, 폴란드, 미국, 프랑스, 스코틀랜드, 러시아, 네덜란드, 독일, 일본, 벨기에, 이태리, 스웨덴에서 18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35차례의 그룹전에 참가한 바 있다. 1974년에 이태리의 화엔자에서 라벤나 상(Ravenna Prize)을 받았고, 1978년에는 덴마크의 공업협회에서 주는 미술-공예가 상(Artist-Craftsman Prize)을 받았다. 이반 바이스의 작품들은 이태리의 화엔자에 있는 국제도자박물관과, 스웨덴의 국립 박물관을 포함하여, 네덜란드, 덴마크, 미국 등 9개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1973년이래 6개의 정부, 공공, 사립 위탁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이반 바이스는 그의 도예작업과 산업도자 디자인에서 현격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작가라는 오해를 하기가 쉽다.
이러한 예로, 1999년에 덴마크의 뇌르비 화랑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들 수 있는데 이 전시회에서 그는 전형적인 일본풍의 그릇들 주로 다기류를 선보였다. 점토연구에도 관심이 있는 이반은 이 전시회에서 석기질 점토와 자기질 점토를 혼합하여 자기질 점토가 주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표면 광택과 작업에 있어서의 폭넓은 유연성을 석기질 점토로부터 구했다. 상회장식가로서의 오랜 경험으로부터 얻은 다양한 표면장식기법과 일본에서 2년 동안 공부하며 익힌 각종 나무재 사용기법은 그의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