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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월호 | 해외 ]

포르투갈의 두 파랑 1
  • 편집부
  • 등록 2018-04-10 18:00:46
  • 수정 2018-04-11 09: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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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4

 

포르투갈의 두 파랑 1
Blue & Blue in Portugal 1
김선애 도예가

파랑은 전형적인 하늘색이다. 파랑이 만드는 궁극적인 느낌은 휴식이다. 파란색이 거의 검은 색으로 가라앉으면, 그것은 거의 인간이 아닌 슬픔을 울린다.
Blue is the typical heavenly colour. The ultimate feeling it creates is one of rest. When it sinks to almost black, it echoes grief that is hardly human.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Dish with warrior 」 중국, 명 숭정년간1627~1644, 경덕진,
47.3×10.2(h)cm,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2「Plate with Geese in a Lotus Pond 」 중국, 명 만력년간 1573~1620, 경덕진, 36.2 cm,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3「Bowl」 중국, 명,

14.6×5.4(h)cm,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4 , 2016.4.25.~9.5,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최근 플라워클래스를 듣고 있다. 시각적 즐거움과 향 기를 즐기기만 하던 꽃을 직접 ‘다루게’ 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손으로 꽃을 오래 잡고 있으면 꽃이 금새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빠른 손놀림 또한 필수적이라고 한다. BLUE 시리즈를 기획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Blue&White 도자기를 다시금 바라보니 접시 위의 꽃 장식이 마치 내가 손에 땀을 흘리며 장식하던 꽃다발 처럼 보인다. 청화백자는 화려함을 추구했던 당시 사람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이상적인 색, 파랑에 담긴 최상급 럭셔리 아이템 중에서도 T.O.P 이다. 하얀 여백은 마 치 꽃을 감싸는 포장지와 같고, 꽃다발을 받았을 때 그 기분처럼, 청화백자를 선물로 받았던 사람의 환한 미 소를 떠올리게 된다. 파랑의 여정은 포르투갈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포르 투갈은 도자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이 다. 파랑은 이제 넘실대는 파란 파도와 하늘 결을 따라 포르투갈 해변에 정박했다. 1498 년,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 일행 은 인도에 도착한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에 접해있었 기 때문에 대항해시대를 열기에 지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포르투갈의 원래 목적은 인도에서 후 추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배는 1517 년 처음 중국에 도착해 통상을 요구했지만, 교역을 거부당했 다. 하지만, 40년 후 마침내 이들의 배는 공식적으로 중국의 마카오 조차권을 얻게 된다.1 그 사이에는 밀 무역으로 교역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예는 알바레스 Jorge Alvares bottles 꽃병을 통해서도 잘 확인할 수 있다. 청 화백자 병에 거꾸로 알파벳이 쓰여 있는데, 현재 영국 Victoria&Albert Museum 에 진열되어있다. 알파벳 의 아래위를 모른 징더전의 도공들 덕분에 이 청화백 자 병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 이처럼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청화백자는 유럽에 전해지게 된다.
교류의 시작
중국과 포르투갈Sino-Portuguese 관계는 중국 명나라로 올 라가는데,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중국무역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20년대 에는 대략 4만~6만 점의 중국도자기가 수입된 것으로
1 미스기 다카토시 저, 김인규 역 『동서도자교류사: 마이센으로 가는 길』 눌와, 2001, p.141

추정된다.2 지금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지만, 징더전 청 화백자 접시 260여 점이 붙어있는 산토스 궁전 천정은 중국 수출자기로 장식된 것으로 유명하다. 한동안 중국 수출자기에 열을 올렸던 포르투갈은 이후 에는 유럽에 중국 도자기를 팔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유럽 상권을 장악했던 네덜란드에 있다. 이 당시 동방무역에 관해서는 주로 포르투갈과 네덜 란드가 경쟁하였는데 두 나라 배는 만나면 으르렁거 리며 싸울 정도였다고 한다. 네덜란드가 이러한 상황 에서 포르투갈의 중국 자기 독과점을 그냥 보고만 있 을리 만무하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 가 설립되고 네덜란드가 도자기 무역을 장 악하기 시작했다. 파랑으로 인한 전쟁이다. 1602 년과 1604 년에 포르투갈 상선 산타리나호와 카타리나호 가 네덜란드에 나포된 것을 계기로 중국 도자기의 유 럽 수출에 관한 주도권이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 상인 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3 카락에 실려온 아이템들은 옥 션에서 팔려나갔고, 이를 통해 유럽인들의 도자기 열 풍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 왕 앙리 4세를 비롯한 유럽 의 왕족, 귀족이 중국 자기를 손에 넣으려고 광분했다 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4그 이후에 포르투갈인들은 리스본에서 후추 등의 향신료를 취급하는데 만족하고 굳이 자기를 교역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추측할 뿐이 다. 네덜란드의 파란도자기에 관련해서는 다음에 자 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234
Blue No.1 크락자기 Kraakporselein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8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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