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09.05월호 | 해외 ]

기器,うつわ,U-Tsu-Wa
  • 편집부
  • 등록 2009-07-11 13:54:37
  • 수정 2009-11-12 13:30:07
기사수정

 Lucie Rie, Jennifer Lee, Ernst Gamperl

2009.2.13~5.10 일본 동경 21_21DESIGN SIGHT
| 장재녕 자유기고가

봄꽃이 피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렸지만, 이내 따사로운 봄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이른 사월의 어느 날, 평소 신세를 지고 있는 일본인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낯익은 작품사진과 작가의 이름이 쓰여 있는 전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눈에 익숙한 작품은 루시 리Lucie Rie의 것이었고, 루시 리 이외에도 2명의 작가가 함께한 전시로 <기器,うつわ, U-Tsu-Wa>라는 타이틀이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루시 리의 전시를 볼 수 있게 된 필자는 흥분되는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미술관의 위치를 확인한 뒤, 벚꽃이 활짝 핀 따스한 봄날 동경, 록폰기 미드타운에 위치한 21_21DESIGN SIGHT 미술관을 찾았다.

21_21 DESIGN SIGHT라는 다소 생소한 미술관 이름은 ‘20/20 Vision(Sight) 또는 Perfect Vision(Sight)’ 즉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체를 구분하는 힘을 우수한 통찰력(시력)’을 의미한다. 이를 모토로 ‘미래를 내다보는 디자인 발신發信의 장’이라는 이념을 표출하기 위해서 21_21 DESIGN SIGHT라고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21_21DESIGN SIGHT미술관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여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안도타다오安藤忠雄의 건축물로 지상1층과 지하1층의 구조이며,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이세이미야케三宅一生의 디자인 문화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장인과 엔지니어, 회사, 일반인들까지 디자인을 인식하고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미술관이라는 느낌보다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일종의 디자인을 위한 연구센터, 디자인에 대하여 생각하는 장소, 디자인 발상의 현장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곳에서 2월 13일부터 5월 10일까지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와 제니퍼 리Jennifer Lee, 목공예가 에른스트 간펠Ernst Gamperl 3인의 <기器,うつわ,U-Tsu-Wa>전을 선보이고 있었다.
반으로 접은 듯한 거대한 철판 지붕이 지면을 향하는 모습이 독특한 구조물에 들어서니 외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두 개의 갤러리와 일본에서 가장 긴 복층유리 구조가 공간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는 세 작가의 작품 100여점과 영상자료가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 영국 BBC에서 촬영한 루시 리의 영상자료가 무척 흥미로웠다. 항상 쓰고 있다는 쇠침으로 조금의 흔들림 없이, 선을 긁어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80세의 할머니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무엇인가를 초월한 듯 한 그녀의 작업속의 집중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또한 루시 리가 영국으로 망명한 후, 한스 쿠퍼Hans Coper와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던 단추제작소에서 제작한 2,000여점 이상의 단추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다양한 칼라의 단추 제작을 경험한 루시 리의 재료학적 지식은 훗날 루시 리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하의 제1갤러리 입구에는 에른스트 간펠Ernst Gamperl의 작품 중 하나가 흰 조약돌 위에서 밝은 조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얇은  발鉢모양의 목기木器는 마치 도자기가 가마 안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휘어진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빛을 스며내고 있었다. 50여점의 작품을 면밀히 관찰하는 동안 그의 작업이 대개 쓰러진 나무나 물에 흘러 떠내려 온 나무덩어리로부터 그 본질적   형태를 파악하여 물레로 깎아내는 기器작업임을 알 수 있었다. 기교가 많은 여타의 목공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부드러운 물레의 곡선이 여실히 드러나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어지는 제2갤러리에 들어서면 제1갤러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정적한 나무숲을 거닐다가 탁 트인 드넓은 호숫가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들릴 듯 말 듯한 물소리와 함께 수면위에 디스플레이된 루시 리와 제니퍼 리의 작품 70여점은 공간이라는 프레임안에 그림처럼 들어온다.
루시 리의 작품 하나하나는 지난 한 세기, 거의 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도예에 몸담고 살아온 그녀 인생의 결정結晶 그 자체였다. 모더니즘modernism, 조형미造形美의 극極이라 불리어야 마땅한 그녀의 작품은    섬세하게 갈고 닦아 어느 한 곳 넘치거나 부족한 곳 없는 형태로, 아름다움과 동시에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도자기의 소재감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심플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겸비한 작품은 그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따스함과 정겨움이 더해져 은은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함께 전시된 제니퍼 리의 작품은 고대문명의 기 형태에서 비롯되어진 형태로, 세련된 선사시대의 토기를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금속산화물을 첨가한 점토로 성형하며, 성형 후, 오랜 시간의 연마를 통해 그 견고함을 표현하였다. 또한 섬세한 색채나 안개가 피어나는듯한 율동적인 그녀만의 형태는 자연의 움직임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루시 리와 제니퍼 리의 신선한 감성은 공간연출에 의해 보다 효과적으로 관람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전시실내에 거대한 수반을 만들어 그 물 위에 작품을 띄우고, 흐르는 물이라는 여백을 사이에 두고, 그 조용함과 움직임 사이에서 아름다운 기와 대치하는 것을 유도하였다. 그럼으로써 관람자들은 작품을 통해 그것을 만든 작가의 마음과 조금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플함 속에 대담한 수법手法과 표현을 사용하여, 현대 도자기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진 루시 리, 조용하고 추상적인 조형 속에 독특한 자연관을 투영한 제니퍼 리, 물레를 사용해 쓰러진 나무나 물에 떠내려 온 나무를 소재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에른스트 간펠, 다양한 기器들의 풍윤豊潤한 조형세계를 전개시킨 3인은 전통과 시대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구애없는 현재를 숨쉬면서 독자적 작업세계를 이루었고, 지금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진정한 예술가들이 아닐까 되뇌어 본다.

 

 

 21_21 DESIGN SIGHT
 주소 9-7-6 Akasaka,Minato-ku, Tokyo
 전화 81)03-3475-2121,  www.2121designsight.jp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월간세라믹스
전시더보기
작가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