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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1월호 | 특집 ]

한국 도자 전통문양의 조형성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2:27:36
  • 수정 2018-02-20 17: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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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 전통문양

한국 도자 전통문양의 조형성 글/임영주 한국전통공예미술관 관장

 한국 도자기의 제작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도예기술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의 청자기술의 유입에 자극 받아 9∼10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단색조의 바탕에 민무늬 도자기가 특징을 이루었고, 11세기말에서 12세기 초엽에는 음각, 양각으로 세심하게 새겨 놓은 무늬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른바 고려 비색(秘色)이라 일컫는, 맑고 투명한 유약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청자는 대개 상형청자가 특징을 이룬다. 상형은 주로 인물, 사자, 어룡, 용, 기린, 원숭이, 거북, 오리 등 동물 형상과 연꽃, 죽순, 참외, 조롱박, 석류 등 식물 형상을 교묘하게 본 뜬 주전자, 향로, 정병(淨甁) 등이 만들어 졌다. 12세기초에 새로운 시문기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상감 기법이 성행되면서 그 동안 민무늬〔素文〕 청자는 점차 사라져가고 다시 무늬가 새겨지는 시대가 돌아왔다. 고려 상감 청자의 상감기법은 청동기의 금속 입사기법(入絲技法)에 자극을 받아 촉진되었는데 12세기 전반에는 동양도자사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업적을 이룩하였다. 청자의 무늬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유형이 특성을 이룬다. 첫째, 자연 경관을 소재로 한 무늬. 둘째, 동물의 모양을 소재로 한 무늬. 셋째, 식물의 모양을 소재로 한 무늬. 넷째, 인물을 소재로 한 무늬. 다섯째, 기타 여러 가지 장식 무늬 청자 상감기법의 발달은, 11-12 세기경 불교의 흥성과 더불어 기술적으로 발전을 보았던 청동 은입사 기법과 나전 칠기의 무늬 놓기 방법과 연관되며 고려 시대 공예 문화의 특성을 대표한다.

상감 청자를 비롯하여 청동 은입사 정병, 청동 은입사 향로, 그리고 나전 경함 등에 공통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무늬 소재로서, 가을철 강변을 배경으로 수양버들과 물새들이 있는 풍경 무늬[蒲柳水禽紋] 또는 갈대와 물새들이 한가로히 노니는 풍경 무늬[葦蘆水禽紋] 등은 특히 한국적인 정취를 뚜렸 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들판에 핀 들국화를 소재로 그린 것과 대나무가 있는 풍경, 깊고 푸른 하늘에 오직 한 마리 학과 한 점의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정경을 새겨 놓은 운학 무늬 등은 고려 시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젖어 있는 유유자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무늬 소재야 말로 종교와 신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민족적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그 무늬는 대개 고려자기, 고려 청동정병과 향로, 고려 불화 등에서 나타나는 소재와 일치하는데, 당초문. 국화문 등이 매우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국립박물관 소장품에 나전칠기포류수금문함(螺鈿漆器蒲柳水禽文函)은 마(麻)의 줄기로 짜여진 함 표면을 옻칠로 장식한 것으로, 그 무늬는 나전과 묘금(描金)으로 그려 수양버들, 단풍, 갈대 등이 있는 물가 풍경이다. 하늘에는 물새들이 날아오르고 잔잔한 물위에도 쌍쌍이 헤엄치는 물새가 회화적으로 묘사되었다. 도자기에 묵란(墨蘭) 묵매(墨梅) 묵죽(墨竹)을 소재로 하여 시문되기 시작한 것은 대개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의 일로 생각된다. 청자 매병이나 편호 등의 넓은 지면(地面)에 흑상감(黑象嵌)하여 그려진 이러한 고려 시대의 화훼문(花卉紋)은 당시 문인화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묵죽을 잘 그렸던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 정 서(鄭敍), 이 인로(李仁老), 안 치민(安置民), 정 홍진(丁鴻進), 김 군수(金君綏), 이 암(李巖) 등의 문인 화가들이 있는데, 당시 중국 북송(北宋)의 소동파(蘇東坡)와 문동(文同), 그리고 원(元)나라 조 맹부의 영향이 크게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도자기의 대나무 그림은 대개 주악선인(奏樂仙人) 등의 인물과 연화, 국화, 매화, 그리고 학, 들새 등이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자연의 경관(景觀)을 이루고 있고, 간혹, 흑상감한 대나무와 백상감한 군학(群鶴)을 같이 구성하여 매우 평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인물과 연 죽문이 함께 그려진 예로는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청자 상감 연죽 주악 선인문 매병(靑磁象嵌蓮竹仙人紋梅甁, 12세기 전반, 높이 39.0cm)을 볼 수 있다.

 전면의 하단(下端)에는 괴석(怪石)을 중심으로 몇 줄기의 대나무와 연꽃 줄기가 위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들국화가 산개되어 있는데, 그 아래 두 선인이 마주 서서 퉁소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이 있고, 그 인물 사이에는 1마리의 학이 학무(鶴舞)를 추는 듯하다. 커다란 연꽃 송이와 들국화는 백상감하였고, 대나무와 하엽(荷葉: 연꽃의 잎) 및 괴석은 흑상감하여 마치 선계(仙界)의 신비를 보여 주는 듯 조화롭다. 또한, 뒷면과 양 측면에도 두 인물이 두루마리의 그림을 펼쳐 감상하고 있거나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미국 뉴욕 미술관 소장품인 청자 상감 화훼 학문 매병(靑磁象嵌花卉鶴紋梅甁, 12세기 후반, 높이 41.3cm)에서도 학을 중심으로 파초(芭蕉), 버드나무, 매화, 대나무 등이 구성된 문양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흑백 상감 기법으로서 전체적으로 한적한 자연의 경관을 조화롭게 구성시키고 있는데, 2면에는 학, 매화, 대나무를 그려 넣었고, 다른 2면에는 파초, 버드나무, 매화를 그려 넣었다. 또한, 대나무와 학을 주제로 한 문양은 일본 개인 소장품인 청자 상감 죽학문 매병(靑磁象嵌竹鶴紋梅甁, 12세기 후반, 높이 29.2cm)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길게 뻗은 서너 줄기의 대나무와 그 주위에서 유연하게 노니는 장면을 4면에 상감하여 그려 넣고 있다. 이 역시 학은 백상감하였고, 대나무는 흑상감하였는데, 학의 다리와 부리는 흑상감하여 청록색의 푸른 지면에 잘 조화를 이루어 매우 세련된 극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의 청자 상감 학죽문 매병(靑磁象嵌鶴竹紋梅甁, 12세기 후반, 높이 31.1cm)은 전후 양면에 대나무를 배치하고 그 사이의 다른 2면에는 한적하게 노닐거나 날아 오르거나 나무에 앉은 학의 무리를 배치하여 또 다른 대나무 숲의 풍경을 문양화하고 있다. 3줄기의 대나무가 높이 뻗었는데, 바람에 날리 듯 왼쪽으로 쏠리고 있어 좀더 생동감을 느끼게 하고 또한, 학들도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공간에 어울리게 배치시켜 전체적으로 시원한 전원(田園)의 풍치를 느끼게 한다. 이 밖에 미국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의 청자 상감 매죽 수금문 매병(靑磁象嵌梅竹水禽紋梅甁, 14세기 후반, 높이 40.6cm)과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품 중 청자 상감 유죽 수금문 표형 수주(靑磁象嵌柳竹水禽紋瓢形水注, 12세기 후반, 높이 35.5cm), 또한 일본 개인 소장의 청자 상감 매죽 수금문 도판(靑磁象嵌梅竹水禽紋陶板, 12세기 중엽, 폭 20.4cm), 청자 상감 죽조문 합(靑磁象嵌竹鳥紋盒, 12세기, 높이 3.7cm, 둘레 9.6cm) 등 등의 대나무 문양은 당시의 독특한 회화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를 소재로 한 문양은 고려 시대 12세기 중엽부터 상감 청자에 나타나기 시작하나, 오늘날에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소나무를 독자적으로 문양화한 것은 없으나, 신선(神仙) 도인(道人) 등의 인물 산경문(人物山景紋) 속에 배경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송하탄금문 매병(松下彈琴紋梅甁, 12세기 중엽, 국립 중앙 박물관)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자기는 주지하다시피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14세기경부터 그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간 제작되어, 서민들의 소탈한 정서나 관청용의 정형화된 형식을 담아냈던 도자기다. 분청 사기에서의 물고기 그림은 여러 주제가 되는 무늬 중에서도 가장 운동감이 넘치는 필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그 속에서 해학적인 멋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물고기 그림들은 분청 사기의 각 기법의 특성에 따라 표현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물고기가 나타나는 것은 상감 분청, 박지 분청, 철화 분청에서이다. 상감 기법으로 주로 수병(水甁)과 매병(梅甁) 등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분청 사기 상감 어문 매병(粉靑沙器象嵌魚紋梅甁, 15세기, 높이 30cm, 국립 중앙 박물관)은 고려말의 여맥을 그대로 이은 형태로서 이에 따라 무늬에서도 그 잔여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몸체의 4면에는 백상감된 구슬띠무늬(連珠紋)와 이중 원곽이 둘러지고, 그 안에 흑상감으로 물결을 헤치고 노니는 1쌍이 물고기를 새겨 넣고 있다. 꼬불꼬불 잔잔한 물결을 흑상감하고 그 속에 지느러미, 아가미, 꼬리 등이 흑상감으로 가미된 2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엇갈려 배치되어 마치 회전하는 듯한 동감(動感)을 느끼게 한다.

 박지문, 조화문 기법에 의한 어문은 편병(扁甁)에서 가장 특성있게 나타나고 있고, 수병(水甁) 등에서 간간이 부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편병에서의 선조문(線彫紋)으로 나타나는 물고기의 구성 형식은 각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문은 편병의 편편하고 둥근면에 그려진 것인데, 대개 1쌍 또는 3마리가 새겨지고 있다. 물고기가 위로 향해 배치된 것, 아래를 향한 것, 또 옆으로 비스듬히 배치된 것, 그리고 2마리가 서로 교차된 모양 등이 있는데, 굵고 혹은 가는다란 단조로운 선으로 자유롭고 활달하게 그려진 물고기의 묘사는 매우 회화적인 감각을 보여 주고 있다. 분청사기 어조문 항아리(粉靑沙器魚鳥紋壺, 16세기, 높이 32.4cm, 는 동부(胴部) 전체에 백토를 바르고 조화 박지문 기법으로 어조문을 새겼다. 물고기는 앞뒤에 그려졌는데, 그 사이에는 오리를 새겼다. 그리고 분청 사기 철화 어문 병(粉靑沙器鐵畵魚紋甁, 16세기, 높이 29.7cm, 국립 중앙 박물관)은 계룡산계(鷄龍山系)의 특징인 흑갈색의 짙은 철채로 대담하게 그려졌다. 뾰족한 입에는 당초 줄기를 물고 있고, 몸에는 철채점(鐵彩點)으로 비늘을 표현하고 있으며, 등과 아가미 옆에는 날카롭고 대담한 필치로 지느러미를 표현하고 있어서 회화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꼬리 부분에는 연화줄기가 그려져 연지(蓮池)에서 수초(水草)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형상은 상감분청이나 조화분청에서의 민물고기 형상이 아니라 날치 같은 고기의 모습이어서 강직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분청 사기 철화 연지 어문 장군(粉靑沙器鐵畵蓮池魚紋장군, 16세기, 높이 15.5cm)에서는 밑에는 파상(波狀)의 물결이 있고 양옆에 연화 줄기와 당초를 배치하였으며, 가운데는 물총새가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는 매우 민화적(民畵的)이고 해학적인 멋을 풍기고 있다. 역시 계룡산의 자기이다. 분청 사기 인화 철화 어문 항아리(粉靑沙器印花鐵畵魚紋壺, 16세기, 높이 27.0cm, 호암 미술관)는 인화문과 상감문, 철화문 기법을 병용하여 매우 특색있는 무늬를 이루고 있다. 물고기 몸에는 작은 소원권(小圓圈)을 연속시킨 문양대를 연속하여 압인한 인화문 기법을 사용하였고, 지느러미에는 태토색 위에 철화로 대담하게 그렸다.

 순백(純白)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백자는 백색에 대한 조선인의 미감(美感)을 철저히 반영한 도자기였다. 조선 건국이래 세종 연간까지는 왕실 전용 자기였으나 그 후로는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온 백성의 생활자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왕실 백자에 문양을 그려 넣는 일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직업화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전해 오는 최상품 청화백자의 문양을 보면 모두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예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임진왜란 후 17세기에는 청화백자가 거의 제작되지 않았으나 17세기 후반기부터 소량 생산되었고, 18세기에 이르면 중국의 청화백자가 대량 수입되어 민가에까지 퍼져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풍조가 만연되어 검약한 생활을 했던 영조연간의 왕실과는 대조적으로 사가(私家)에서는 화려한 생활을 했다. 청화백자를 비롯한 진사백자, 청화진사채, 진사채, 청화채 등 화려해진 조선 도자기가 그것을 말해 준다. 15세기경 분원 관요(分院 官窯)시대에 접어들면서 왕실용 자기는 분원에서, 기타 용도의 자기는 분원 관요가 아닌 민요에서 제작되었다. 특히 분원 관요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 가마에서 대량생산된 백자는 조선 도자기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고 분청사기는 백자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기 위하여 분원 관요가 운영되었다. 시대와 지방에 따라 백자의 색과 질(質)에는 차이가 있어 눈같이 흰 설백색(雪白色), 회백색(灰白色), 청백색(靑白色), 유백색(乳白色) 등을 띠는 백자가 있다.

그리고 태토(胎土), 유약, 제작수법 등에 있어서도 정교한 것에서부터 거친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이다. 백자의 장식의장 또한 아무 문양도 없는 민무늬의 순백자를 포함하여 음각·양각 및 투각(透刻)의 문양으로 장식된 순백자(純白磁), 고려 청자의 시문기법을 계승한 상감(象嵌), 철회(鐵繪), 진사(辰砂) 등의 백자 등 다양하다. 도자기(陶磁器)의 의장 무늬는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기법이 구사되었다. 청자에서 일변하여 새로운 형태와 양식으로 이루어진 분청사기(粉靑沙器), 그리고 고려시대 백자 계통을 이어 받은 초기 백자와 원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발전한 조선 백자가 있으며, 다시 흑유(黑釉), 철채(鐵彩), 철유(鐵釉) 등의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청화는 서역에서 아라비아 상인을 통하여 들어온 「회청(回靑)」 또는 「회회청(回回靑)」이 그림 재료이다. 15세기경의 조선 초기 청화 백자에 나타나는 무늬 소재로는 매화와 새 무늬·소나무와 대나무 무늬 등이다. 이러한 꽃과 새 그림은 능숙하고 세련된 솜씨를 보이고 있는데, 조선 초기 15세기 중엽의 회화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된다. 음양각문, 투각문, 상감문, 극소수의 인화문, 철회문, 진사문 등 고려시대부터 친숙했던 문양으로 장식된 순백자(純白磁), 상감백자(象嵌白磁), 철회백자(鐵繪白磁), 진사백자(辰砂白磁) 등과 달리 청화백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선시대에 전혀 새롭게 등장한 백자의 한 종류이다. 조선 전기의 중국 원(元)·명(明) 도자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청화백자는, 초기에는 중국 도자를 모방한 문양과 구도를 보이지만, 15세기 중엽 이후에는 중국식에서 탈피하여 곧 한국적인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는 분원 관요를 설치하면서 조선 특유의 청화백자를 생산해낸다. 초기의 예들은 그릇 표면에 당초문이 빈틈없이 꽉 들어 찬 중국자기의 모습이지만, 한국적으로 바뀌어진 예들은 대체로 매화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와 나무 아래 들국화를 사실적인 회화수법으로 묘사하여 적당한 여백을 가진 한 폭의 그림 같은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대표적인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로는 호암미술관소장 백자철회청화삼산문산뢰, 중국 양식을 지닌 오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소장 백자청화보상화문접시와 호(도 1), 호암미술관 및 호림박물관소장의 한국적인 백자청화매죽문호, 간송미술관소장 [鄭軾]명청화백자완, 동국대박물관소장의 [弘治二年]명백자청화송죽문호 그리고 국립박물관소장의 국보 170호 백자청화매조문호 등이 대표적이다. 청화백자 송죽문 홍치명 항아리 (靑華白磁松竹紋弘治二年銘壺, 1489년 제작, 전남 화엄사)의 경우 소나무, 대나무와 죽순, 지표면 등의 표현 수법과 문양의 구성에 있어 다분히 한국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한 점과 당당한 기형 그리고 뛰어난 필치의 문양장식으로 보아 이 청화백자 항아리는 왕실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보 170호 청화백자 매조문 항아리는 매화와 새를 부각시키고 나무 아래 들풀까지 그려 넣은 한적한 분위기를 표현하여 그림이 빽빽하게 들어 찬 [홍치]명 호에 비해 한층 여백의 미를 강조하였다. 조선시대 초 청화 백자에는 매(梅), 죽(竹), 송(松) 등이 등장하는 산수화풍(山水畵風)의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그 후 18∼19세기경부터는 십장생 무늬의 유행으로 장생물(長生物)의 하나로 등장하는 소나무 그림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조선 초기의 송죽문 홍치 2년명 항아리는 소나무를 주제로 한 회화적인 문양 소재가 처음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나타나는 그림은 세필로 윤곽과 내부에 세밀한 묘사를 하였는데, 마치 남송(南宋)의 원체화(院體畵)의 영향을 받은 원 말(元末)과 명 초(明初)의 북송화법(北宋畵法)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 도자기에 그려진 무늬의 섬세함이라든가 무늬 구성의 짜임새 등을 보아 아마도 당시 어느 화원의 특별한 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밖에 십장생무늬에 그려진 소나무를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그 일례로서 청화 백자 진사채 장생문 항아리(靑華白磁辰砂彩長生紋壺, 19세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는 청화로 윤곽선을 그리고 내부는 진사로 그린 소나무 줄기와 도식화된 잎을 그린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은 다분히 민화적(民畵的)인 그림이라 하겠는데, 당시의 각종 공예품에서 이러한 장생무늬를 찾아볼 수 있으며, 매우 민속적이고 서민적인 문양 형식의 하나라 할 것이다. 조선 초기의 꽃과 새 그림, 사군자 그림 등의 수묵 주조로 이루어진 속되지 아니한 정취 속에 한국적인 감각을 정립시킨 조선 초기의 화원들의 화풍과 순정적인 시취(詩趣)를 느끼게 하는 풀꽃 벌레와 여러 가지 꽃을 그린 초충도(草蟲圖)와 또 은은한 자연의 멋이 풍기고 꽃나무와 새 그림은 조선 초기 청화백자에서의 소담한 감각의 세계와 상통한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의 백자에서는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산수·장생·물고기와 조개, 새우 등 물고기·문방구· 연꽃· 포도 무늬 등이 주로 그려져서 그 시대의 사대부와 선비들의 취향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 중기에도 산수 인물 무늬 뿐 아니라 새와 짐승·꽃과 새· 먹으로 그린 대나무와 매화· 포도 무늬 등에서 한국적인 화풍이 유행되고 있으며, 또 조선 후기의 공예에서는 산수 장생· 물고기· 칠보 등의 소재가 많이 그려진다. 선비가 주로 많이 쓰는 필통(筆筒)을 비롯하여 벼루, 연적 등 문방 기물에는 고요하게 구름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휘영청 둥근 달이 중천에 뜨고, 그 아래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넘어 잉어〔鯉魚〕가 튀어 오르고 있는 무늬가 새겨졌다. 이 그림은 어변성룡(魚變成龍), 즉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 파도 위로 힘차게 뛰어 오르는 잉어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약리도(躍鯉圖)라고도 하였는데, 이러한 그림이나 무늬는 다남(多男), 즉 아들을 낳아 크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특히 출세하기를 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부 졸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 전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전통공예미술관 관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경기도 문화재위원 좥청자상감모란문 편호좦 고려 20.5×9.2m 좥청자상감국화 절지문병좦 고려 33.5×7m 좥청자철화당초문배병좦 고려 24×6.1m 좥청자백자목단문화좦 조선 25×16cm(좌), 조선 25.3×14cm(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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