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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월호 | 칼럼/학술 ]

[에세이 ESSAY 6] 그릇이 된 생각들_ 쌀독 모심
  • 이현배 옹기장이
  • 등록 2025-07-02 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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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독 모심」가로38x세로48cm, 가로27x세로27cm, 가로27x세로15cm


이팝꽃이 한창이다. 그 풍경 그대로 모내기철이다. 이팝꽃이 반가우면서도 옹기일과 농사일의 때가 같아 거의 옹기일이 우선이다. 더욱이 농사일에 서툰 이 옹기장이는 덜컥 겁이 난다. 그런데도 ‘농農의 가치’를 입에 달고 산다. 어쩌면 그거 오기일 수 있다. 그러니까 고1 때였다. 중3때 기술 교과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산업화 일꾼 양성 공업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봤지만 떨어지고 후기로 면청소재지의 종합(농업, 임업, 인문) 고등학교로 인문계로 진학했다. 유신독재시절이라 공부하라는 소리를 ‘공부 못하면 니 애비처럼 농사꾼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농사꾼이 어때서요’ 했다. 그 당돌한 말대꾸가 교무실에 돌았던가 보다. 다른 일로 매를 맞다가 그 일이 보태졌다. ‘공부도 뭇하는 놈이~’라는 말에 ‘공부를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가 매를 더 벌었다. ‘공부를 안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까지 했으니 어쨌거나 농農을 붙들어야 하는 인생이 되었다. 

나고 자란 곳이 산촌이지만 농토가 없는 가정이라 농사 경험이 없었다. 다만 어려서는 토끼를 키워 봤고, 그 당시 집에 염소가 대 여섯 마리, 소가 한 마리 있었다. 소는 엄두가 안 나고 염소라면 키울만하겠다 싶어 농촌지도소 다니는 사촌 누님에게 상담을 했더니 염소는 수가 많아지면 병이 심하다며 안될 일이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요즘 문제가 되는 항생제가 없었나 보다. 그 일이 고2때였고 어영부영하다가 졸업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서야 그렇다면 농업대학을 가면 길이 있을까 싶어 느닷없이 재수를 하였지만 농업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로 ‘농업의 가장 완성된 형태는 음식’이지 싶어 식품조리를 전공하였다. 

그것도 아니어서 그 오기가 저쩌고 하다가 옹기가 되어(?) 옹기일을 붙들었다. 옹기장이임을 자임하면서 옹기의 사전적 정의,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우르는 말에서 ‘질그릇의 시작 = 농경의 시작’. 옹기장이로의 정체성은 ‘농사꾼 못된 옹기장이’였다. 옹기를 문화적으로 해석하자면 전통문화는 곧 농경문화이고, 농경문화의 꽃 심은 도작稻作(벼농사) 문화다. 그러니 당연히 쌀을, 밥을 모셔야 했다.

쌀을 모시는 쌀독을 지으면서 곤쟁이젓독을 기반으로 하였다. 젓독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새우젓독이다. 새우젓독은 종이컵처럼 수납성 때문에 밑이 좁다. 젓독을 소금과 함께 배에 태워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야 하기에 수납성을 우선으로 한다. 나고 자란 곳이 산촌이지만 새우 젓독은 흔하게 봤다. 그만큼 일반적이라는 반증이다. 곤쟁이젓독은 서울 인사동에서 골동으로 봤다. 옹기일로는 곤쟁이를 모르고 꽃병으로 지었다. 그러다 곤쟁이가 해안가에서 잡히기에 거의 일자형이라는 것에서, 그게 요즘 말로 모던하기에 쌀독의 기반으로 삼았다. 특히나 쌀이 주방과 거실 사이에 놓이는 경우가 많기에 곤쟁이젓독의 모던함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상수가 모신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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