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생 이바우(1993, 04)
옹기집 막내 이바우, 이바우는 새로운 일로 옹기일을 붙들었을 때 찾아왔다. 위로 오빠가 ‘물’이고, 언니가 ‘솔’이다. 그래 태어나기도 전에 ‘바우’였다. 딸이면서 ‘바우’를 이름으로 얻었다. 당시 산아제한정책이 있었고 세 번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집에서 낳아야 했다. 그때 애비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나무를 잘라 구멍을 내고 줄을 끼워 문고리에다 매달아 산모가 힘쓰기 좋게 하는 거였다. 아! 손잡을 대나무에 불로 달군 쇠젓가락으로 “바우를 기다리며 1992. 05. 05”라 새기기도 하였다. 나름 마음의 힘을 보탠 거였다.
몇 해 전, 통계청에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변화에 대해 문의를 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장독의 크기는 거의 어머니들의 명치까지다. 그 크기가 어느 시대에 정립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 인구의 변화를 통한 가족단위의 규모 형성사를 추적하고 싶었다. 답변이 놀라웠다. 국가차원에서 인구통계를 잡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고 하다가 ‘둘도 많다’고 했다가 이제는 안낳는다고 성화를 부리는 모양이다. 아무튼 이바우가 셋째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사회문화 환경은 그랬다.
이바우가 태어났을 때는 일을 배울 때라 강보에 싸여 멀리 전남 벌교에서 경북 문경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전북 진안으로 이사를 했다. 그날도 서울에서 전남 벌교로 일 배우러 내려간 날과 같은 4월 5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전북 진안으로 이사왔을 때 4월인데도 눈이 그렇게 많이, 그렇게 여러 날 왔다. 살 집을 구해놓고 이사를 한 것이 아니라 마을회관에다 이삿짐을 부려놓고 언덕 위 빈집을 살 집으로 정했는데 구들이 내려앉아 불이 들지 않았다. 그래 다섯 식구가 모두 감기에 걸렸다. 그래도 오빠와 언니는 눈이 온다고 좋아하는데 어린 막내는 찢어진 문구멍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해야 했다. 그 눈빛을 담아 단지를 하나 빚었다. 그리고 ‘바우단지’라 이름했다. 그 단지를 모본으로 삼아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바우단지(1993지음) - 가로 18.5cm 세로 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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