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⑤ │ 근대기의 백자 생산
글. 엄승희 한국 근대 도자사 전공, 미술사학자
근대기에는 조선 말기에 이어 지속적으로 백자가 생산되 었다. 분원의 민영화를 거치면서 과거 왕실 위상을 상살 한 백자의 품격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지방백자와 특별 한 구분이 없을 만큼 하향평준화 되었지만, 백자는 여전 히 생산성을 유지하며 전국에 수요 공급되었던 필수 요 업품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백자 생산은 그 생산량 이 현저히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실태는 이전 시 기와 다를 바 없이 호전되지 못해 침체되었다. 강점 초기 부터 단행된 조선총독부의 도자정책들은 식민지적 요업 쇄신을 촉구했지만 전통백자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은 극히 일부였으며 이에 따라 생산 자체에 특별한 변화 가 없었다. 오히려 외세의 영향력으로 백자 양식은 외래 적 요인이 절충된 모호한 양식을 추종하거나 양산(量産) 하여, 백자 본연의 가치와 전통성에 혼란이 야기되었다.
사진1 「백자청화초문병」19세기말~20세기초 ㅣ 철안시립박물관 소장
사진2 「백자청화초화문항아리」19세기말~20세기초 ㅣ 양구백자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백자 가마의 분포는 전국에 걸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대다수 백자 생산지는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간지대 지방가마를 중심으로 분포된 편이며 매우 소략 적인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는 조선조로부터 이어져 온 곳도 잔존했지만 새롭게 개요(開窯)한 곳들이 현저히 증가하였다(사진1). 양식적인 측면에서는 외부의 침입이 어려운 외곽으로 갈수록 백자 고유의 미감이 제 대로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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