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6월 21일, 파리 패션 위크에서 공개된 디올 2025 여름 남성 컬렉션은 도자예술과 패션의 만남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디올의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저명한 도예가 힐턴 넬의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그의 예술적 세계를 패션의 언어로 재해석 했다. 이번 컬렉션은 단순한 의상 발표를 넘어, 도예라는 전통 매체가 현대 패션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힐턴 넬은 50년 넘게 점토와 유약을 다루며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해 온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고양이와 개의 토템적 형상, 그리고 다채로운 손그림 패턴으로 유명하다. 킴 존스는 넬의 작업실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자예술의 질감과 형태를 의상에 투영했다. 런웨이에는 넬의 고양이 도자상을 초대형으로 재현한 조형물이 자리 잡았고, 이는 관객에게 몽환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했다.
컬렉션 의상 곳곳에는 넬의 도자 모티브가 생생히 살아난다. 예를 들어, 섬세한 손자수로 완성된 델프트 블루 패턴의 재킷은 약 600시간의 공정을 거쳐 넬의 세라믹 질감을 재현했으며, 의류와 가방에 장식된 스터드 장식은 그의 도자 표면에서 영감을 받은 ‘sigils(상징 문양)’을 형상화했다. 또한, 킴 존스는 넬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동물과 자연 이미지를 니트웨어의 프린트와 세라믹 느낌의 클로저로 변형해 입체적인 텍스처를 구현했다. 액세서리에서도 도예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전통 작업화인 클로그clog는 너도밤나무와 송아지 가죽으로 제작되어 도자 같은 견고함을 띠며, 바이커 부츠와 더비 슈즈로 변형되었다. 특히,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가 케이프타운의 어스 에이지Earth Age와 협업해 만든 클로셰 모자는 남아프리카 장인들이 손으로 뜬 모자에 파리에서 세라믹 비즈를 더해 완성 되었다. 이는 도예와 패션 공예가 국경을 넘어 융합된 상징적 결과물이다. 킴 존스는 “힐턴 넬과 나, 그리고 크리스챤 디올은 모두 예술과 응용예술에 대한 헌신을 공유한다”며, “도자예술의 평생 작업과 패션 제작의 평생 노력이 이번 컬렉션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만났다”고 밝혔다. 이는 디올의 창립자 크리스챤 디올이 갤러리스트를 꿈꿨던 예술적 열망과도 연결된다. 이번 컬렉션은 도예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힐턴 넬의 작업이 세계적인 패션 무대에서 재조명되며, 도자예술이 단순한 공예를 넘어 현대 문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을 열었다. 월간도예 독자라면, 이번 협업을 통해 점토로 빚어낸 이야기가 어떻게 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지를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