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연 《서체, 바디와 내러티브 Typeface, Body and Narrative》
1. 13. ~2. 28.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대학교 사우스갤러리
재미 도예가 전신연의 전시 《서체, 바디와 내러티브 Typeface, Body and Narrative》가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대학교의 사우스갤러리에서 2025년 1월 13일부터 2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현재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칼리지에서 도자를 가르치고 있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톨레도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재직시 완성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최근 5년여 동안 발전시켜 온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2021년부터 계속해서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하나의 모티브로 이용한 도자기 오브제를 만들어 오고 있던 작가는 특히 2023년부터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활용한 인물 도자기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영어와 한국어 간의 시각적 대화를 탐구하고 있다.”고 부연한다. 도자, 조각,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들을 이용하여 “역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자” 했 던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특히 “전통적인 인물도자를 현대적이고 교차문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다.”고 그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여섯 항아리 Six Containers」 2024
한국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화를 배우고 미국에 이주하여 타우슨대학교에서 도자를 전공한 후 20여 년 가까이 미국 대학에서 강의를 해온 작가에게 이분법적 이원성은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테마였다. 그 간의 꾸준한 작품활동은 이중언어와 다문화에서 발생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며, 이를 극복하고 받아들여가는 여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순의 충돌과 혼란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소재와 주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재료와 도구, 또한 예술의 테크닉적 면에서도 때로는 보다 선명하게 때로는 다소 은유적으로 항시 존재했었다.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에서의 경험과 미국에서의 경험이 비슷해진 이즈음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잘 버무려지고 적절히 익어진 예술가로서의 아이덴티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세계적인 호기심과 관심이 비등하고 있는 요즘, 도자예술에 한글 모티브를 채용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영어와 한국어 간의 이중언어적 경험을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 형식과 내러티브 구조로 탐구” 하면서 발전시킨 일련의 작품 중에 이번 전시의 주제 ‘서체typeface’를 가장 잘 시각화한 작품으로는 「여섯 항아리 Six Containers」가 있다. 뚜껑이 있는 여섯 개의 항아리가 볼링핀을 배열하듯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얀 도자기 몸체에는 짙은 색의 글씨체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먹으로 그린듯한 자유로운 필력이 돋보이던 조선시대 철화백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금분과 철분이 함유된 유약으로 칠해져 빛을 받으면 신비로운 금빛이 어두운 색을 뚫고 아른거린다. 먹빛 같은 글자와 단어들이 구불구불 리드믹 하게 쓰여있어 춤추는 듯 혹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조각도로 글씨의 테두리를 음각한 후에 서예 붓과 유화 붓을 사용하여 음각된 글자 테두리 안에다 서예처럼 글씨를 쓰기도 하고 혹은 공간을 메우듯 색칠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중요 장식기법인 음각기법과 철화기법을 글자체 부분에 동시에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박지기법처럼 배경 부분을 긁어내었는데 칼자국을 남겨서 매끈한 글자체와 투박한 배경표면 간에 질감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가장 앞줄에 놓인 항아리에는 작품의 핵심 문구라 할 수 있는 단어 ‘가족’이 한글로 쓰여있고, 구체적인 가족을 통해 느끼는 추상적인 감정인 ‘희망’, ‘기쁨’, ‘안전’, ‘마음의 평화’ 등의 단어들이 다음 줄에 늘어선 항아리들에 적혀있다. 뚜껑 손잡이도 가족의 이미지인 인물들과 거기서 파생된 상징적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다. 마치 태항아리 같기도 하고 술항아리 같기도 한 여섯 개의 항아리들은 지난 시간의 기억으로 꽉 차있을 수도 있겠고, 혹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를 담고 텅 비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접시」 2024
「여섯 항아리」와 마찬가지로 그릇, 즉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Container로서의 도자기 본연의 실용적인 기능성을 예술 표현의 방법으로 접목한 작품으로 「접시」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주제인 인물의 ‘바디Body’를 표현하고 있다. 청화백자 등에 보이는 연꽃 이나 당초 덩굴 등의 전통 문양 디자인이 프린트된 전사지를 바닥이 깊은 접시의 안쪽 측사면에 옮겨 장식하였다. 음식을 다 먹으면 접시 바닥의 디자인이 드러나듯이 깊은 접시에 담긴 짙은 초록색의 물 밑으로 세 명의 인체 드로잉이 언듯 언듯 보인다. 접시 입구 가장자리를 빙 두른 선명한 검은 선의 꽃문양은 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이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전통 문양에 기반한 기성의 상업 디자인이다. 반면 물 속에 감추어진, 혹은 물이 비워져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바닥에 음각된 인물들의 이미지는 작가의 스케치북에 있던 인체 드로잉을 음각으로 옮긴 것이다. 접시의 두 장식 모두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차용한 것이지만 프린트되어 다소 경직된 꽃 디자인과 크로키 같은 자유롭고 유연한 인체 드로잉은 스타일에 있어 대조를 이룬다. 또한 전통과 현대, 공공성과 개인성, 익명성과 개성, 기능성과 표현성 등 상반되는 이원적 가치의 공존을 하나의 「접시」 안에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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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신연은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도미하여 매릴랜드주에 위치한 후드 대학과 타우슨 미술대학원에서 도자예술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 MFA in Studio Art를 받았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지난 18년간 조교수, 방문 조교수, 도예 전임강사 등의 직위들을 섭렵하고 현재는 몽고매리 대학과 후드 컬리지에서 다양한 도예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 shinyeon.com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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