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 ~1. 23. 토포하우스 제2전시실
달항아리 탐닉記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입구에는 이용순 작가의 보름달 같은 백자 달항아리가 떡하니 관람객을 먼저 맞이 한다.
예로부터 해외시장에서 화려하게 대접받던 고려청자나 청화백자와 달리 17~18세기 조선에서 등장한 청초하고 마음씨 고아 보이는 백자 대호는 주목받지 못한 채 어느 틈에 사라졌다. 그러나 21세기, 박물관의 전유물 같던 백자 달항아리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대한민국의 힙한 예술품으로 미술품 애호가는 물론 젊은 층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필자의 달항아리 탐닉은 1956년에 발행된 일본의 『삶의 수첩_暮しの手帖』 이라는 여성 잡지에 실린 일본의 근현대 작가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1889~1962의 수필 『이조부인_李朝婦人』에서 시작 되어 이용순 달항아리 전시 기획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로 사이세이의 달항아리에 대한 표현을 빌려오자면, “부드럽게 부푼 몸통은 보름달처럼 아름답고, 질감은 여자의 피부처럼 섬세하며, 유백색 유약의 몽환적인 옅은 연둣빛은 꿈결처럼 희미한 황갈색의 광선처럼 보인다.… 하얀 항아리의 입을 보아 그녀는 누가 봐도 뛰어난 미인이었고, 영롱하고 청아한 이조부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밤 낮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또한 이조백자는 투명감이 풍부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경지에 이르는데, 이는 그 특유의 은은한 향을 뿜어냄에 있다.”라며 달항아리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그려냈다.
실제 무로 사이세이는 종전 후 가루이자와에 있는 고미술점에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영국, 중국의 넘쳐나는 골동품들 사이 한쪽에 꽃이 꽂혀있는 백자 대호를 만나게 되고, 그 거리를 오가며 매일 마주치는 백자 대호를 짝사랑하게 된다. 일본이 패전한 직후인 지라 글을 쓰던 작가의 원고료는 넉넉할 리 없었다. 사이세이는 고미술품점 주인과 몇 차례의 흥정 끝에 11년 만에 가까스로 달항아리를 집안으로 들이고 매일매일 정성스레 닦고 빛을 내며 인격체로 다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달항아리를 어떤 자세로 바라봤을까. 참담한 역사적 배경을 가져서일까? 따져보면 조선백자 대호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기에 쓰임새조차 정의 내리지 못했던 우리는 일본의 미술사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일본 지식층의 감상이나 정리된 글을 통해 백자 대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달항아리가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 되는 데에는 이러한 매개자들과 또 그들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며 영국박물관에 조선의 백자 대호를 당당히 앉힐 수 있게 했던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의 한몫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백자 달항아리 1」 44×47cm
사진. 토포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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