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 YOUNG ARTIST]
유희송 작가는 물레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도예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순간적이거나 즉흥적으로 이뤄진 작업 방식이 아니며, 다년간 그녀의 삶과 정신에 켜켜이 쌓인 경험과 깨달음의 결과이다.
대비되는 이질감에서 고요한 균형을 찾다. 유희송
글. 한정운 경기도자미술관 큐레이터
작가 유희송(b.1991)은 서울대학교 도자공예전공 학사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각자의 자리>(2020)를 비롯해 단체전 <동기>(2021) <공간과 사물>(2020), <손과 머리로 서다>(2019), <차와 도구>(2018), <또 하나의 양구백자>(2017)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제18회 한국공예대전 입선(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파이널리스트(2019), 제73회 독일 뮌헨 국제박람회International Trade Fair Munich, 탈렌테(2021) 등을 수상한바 있으며, 현재 창작연구소 쓸모 입주작가와 물레성형수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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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작업은 원심력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원심력으로 만들어지는 도자기들은 특별한 장식과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는 거의 유사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두 사람이 같은 질과 양의 흙으로 동일한 물레 작업을 하여 만든 두 개의 항아리는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도예를 잘 안다’ 하는 도예 관계자들도 전시장에서 본 달 항아리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고, 작가명을 알아내는 일은 대부분 명제표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연유로 작가들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물레 작업과 구별될 수 있는 요소들을 자신의 물레 작업에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전통장식을 한다거나 코발트 선이나 흥미로운 드로잉으로 물레 작업의 면을 분할하고 장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유희송 작가 또한, 물레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도예가로서 그녀만의 차별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물레가 가진 통상적인 제작 방식의 편의성과는 대비되는 꽤나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왜 어렵고 번거로운 방식을 선택했을까? 그건 순간적이거나 즉흥적으로 이뤄진 작업 방식이 아니며, 다년간 그녀의 삶과 정신에 켜켜이 쌓인 경험과 깨달음의 결과로 기인한 것이다. 유희송 작가가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파악하려면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녀는 일찍이 자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예술에 특화된 학교에 진학하였고 예고를 거쳐 미대에 진학하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전공으로 단번에 ‘도예’를 선택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자신만의 소신과 사고에 단호함이 있었던 그녀는 대학에 와서 만들게 된 도자기 작업 시에도 분명한 기준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능적 유용성이다. 공예가 가진 기본적인 성질인 기능성을 배제해서는 도예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논리였다. 지금은 우스게 소리로 예쁜 쓰레기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지만, 대학시절 그녀는 예쁘기만 하고 기능성이 없거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심각한 도예는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만들었던 작품들을 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실용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그가 현재 작업을 하고 있는 공간 또한 ‘쓸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만든 곳은 아니지만, 그의 단호한 작업 철학과 미션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게 된 곳이다. 이러한 그녀가 ‘유용성’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는데, 대학원 시절 다녀온 미국의 아치브레이 레지던시를 통해서였다. 아치브레이 레지던시는 도예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글로벌한 레지던시인데, 그녀는 그곳에서 일전에 그녀의 지도교수가 ‘한국처럼 대학교 물레가 좋은 곳은 없어. 예전에 내가 유럽에서 작업했을 때~’ 라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하듯 읊조리셨던 말씀을 가감 없이 체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물레 대신 선택한 차선책이 핀칭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손가락의 감각에 집중하여 그곳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대칭이 아닌, 보다 유연한 대칭성을 보이는 자유로운 형태의 조형물을 대량으로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녀를 물레로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대칭성’을 지향하는 방향성과, 오직 손의 감각에만 집중하는 작업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 그녀는 물레로 만든 형태에 이중의 대칭성을 부여할 새로운 수단을 고안하게 되었다. 물레로 만든 형태를 일부 잘라내고, 그것과 상이한 형태의 조형을 이어붙이는 확장된 방식으로서 말이다. 이 과정은 꽤나 까다롭고 복잡한데, 흥미롭게도 작가는 다르게 만든 이질적인 두 형태를 붙이는 것보다 물레라는 작업을 통해 작품의 기본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작업의 형태를 미리 스케치하거나 예상하고 만드는 방식이 아닌 물레를 차며 흙을 손으로 감각하면서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도자기를 만드는데 혁신적인 편의성을 제공했던 물레의 본질과는 매우 대비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비성은 그의 작업과 삶, 인생철학을 관통하고 있다. 그녀는 고요한 강과 바다의 광활한 풍경을 좋아한다. 잔잔한 한강의 물결은 하루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게끔 하는 교통체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한다. 반면에 익스트림 스포츠와 친구들과의 격렬한 수다도 좋아한다. 클라이밍과 친구들과의 시간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어려움이 없지만, 작업 중에는 자신에게로 침잠한다. 그러다 지치면 친구들을 만나는 식이다. 그녀는 물레의 편의성을 잘 알고 이용하지만, 자신의 손이 주는 감각이 그 편의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 이 오래된 믿음은 결코 내가 잘 해낼 것이라는 낙천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이 오랫동안 꼼지락거리며 많은 것을 만지고 느끼며 만들어냈던 경험, 그 경험치가 켜켜이 쌓인 손이 내가 무언가 알맞은 형태를 찾는 것을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다. ‘유용성’과 ‘쓸모’에 대한 그의 고집은 비단 작업에만 적용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삶의 원칙으로서 기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예 작업의 효율을 지향하는 물레라는 방식을 그녀가 채택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또한, 그녀는 효율을 지향하면서 즉흥성은 배제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릴 적부터 많은 과정과 시험을 거쳐 왔다. 그런 그녀에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란 없었고, 자신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주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단호한 결단과 소신에 근거한 삶과 작품에 대한 고집, 거기에 안정적 변화와 고요한 도전은 그녀가 갖고, 또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쉽게 얻어진 적이 없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그녀의 삶의 철학은 물레를 기본으로 만든 하나의 조형에 다른 과정으로 만들어진 조형요소를 접합한 형식의 작업으로서 구현된다. 작품을 구성하는 상이한 조형요소들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데, 이는 각각의 조형요소들이 조화될 수 있도록 한 영리한 계획에 기인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계획이란 ‘대칭성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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